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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작 출판사는 내게 SF 소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물론 그 전부터 배명훈, 정세랑, 듀나를 사랑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SF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아작의 힘이 크다. 뭔가 맛있는 쿠키를 먹고 싶은데 뭘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매던 내게 브랜드 별로 선물 포장한 쿠키들을 내게 안내해주는 느낌.
20세기 중반 SF의 황금기를 이끈 '빅 쓰리'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클라크, 그리고 여기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직 아시모프와 클라크를 읽어보지 못 했지만 이젠 당당하게 하인라인은 읽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흐뭇)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의 특별한 점은 외계인의 지구 침략기가 아닌 지구인의 외계로의 납치 및 여행기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20세기 발 SF 영화의 대부분은 외계인의 지구 침략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지구인들은 점령 당하고 짓밟히고 지구 행성 자체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진다. 뭐랄까 SF적 디스토피아다. 그도 아니라면 외계인과의 만남, 우정의 대서사시를 그리며 감동의 코드를 이끌어 내거나 할 것이다. E.T.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클리퍼드 러셀은 우주에 가고 싶다는 욕망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소년이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벤트에 응모해 우주복을 얻어내기까지 한다. 특유의 영리함과 지적인 베이스를 바탕으로 낡은 우주복 오스카를 수선해 입으며 언젠가는 달로 여행갈 것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날 우주복 오스카를 입고 밤 산책을 하던 클리퍼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우주선 두 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우주 해적에게 잡혀있는 상태, 여기서부터 클리퍼드와 앞서 잡혀있던 유명 과학자의 딸이자 영민한 소녀 피위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내게 있어 가장 스페이스 오페라 다운 소설이었다. 그동안은 외계인이 나온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벌레 머리라고 명칭되는 못된 외계인도 등장하고 엄마 생물로 명칭되는 온건한 외계인도 등장한다. 벌레 머리를 도우며 클리퍼드와 피위를 괴롭히는 인간(팀과 조크)도 등장하고, 그들과는 전혀 별개로 벌레머리와 인류를 심판하려고 하는 제 3의 외계 세력도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이 굉장히 넓다.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우주선은 인물들을 달>명왕성>베가행성>마젤란성운 등 여기저기로 이동시킨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우주 공간에 대한 지식과 수학적이며 천문학적인 계산이 탄탄하게 기반한다. 또한 주인공이 성인이 아닌 소년과 소녀 라는 점에서 소정의 성장서사의 역할마저 기대할 수 있다.
벌레 머리나 엄마 생물, 제 3 외계 세력에 대한 상상력은 굉장히 섬세하다. 그들은 하나의 종족으로써 스스로의 종족적 특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우주 재판의 과정에서 보면 그들의 재판과 판결이 종족적 특성에 따른 알력으로 인해 말미암았을 뿐임을 알 수 있다. 벌레 머리의 행성이 뒤로 돌게 되는 것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외계 사회에 대해 하인라인만의 상상력으로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소년 소녀의 서사가 그다지 극렬하지는 않다. 납치를 당했고 탈출을 해야 했고 엄마 생물을 구해내야 했지만 뭔가 힘이 좀 빠져 있는 느낌이 조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어 볼만 하다. 발표된지 60년이 지난 작품이긴 하지만 소설 속 상상력 만큼은 적혀 녹슬지 않았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클리퍼드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모험은 자연스러워진다. 이것이 하인라인의 매력일까.
코니 윌리스는 자신의 대표작인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하인라인에게 헌사를 남겼다.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에서 처음으로 내게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소개해준 하인라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말 한마디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는 충분하다. 소설을 읽다가 또 다른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책을 읽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확장되어 가는 독서. 나는 이렇게 스스로의 영역을 넓혀가는 독서를 좋아하며, 그런 독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니 윌리스를 좋아한다. 코니 윌리스는 내게 하인라인을 소개 했고, 하인라인은 제롬 K. 제롬을 내게 소개했다. 제롬 K. 제롬의 책이 번역된 게 있나 찾아 봐야 겠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독서를 넓혀 나갈 것이다.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