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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평점 :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읽는 내내 유쾌함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주로 이 책을 지하철 안의 이동시간에 읽었는데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안의 갑갑함은 책을 읽는 내내 잊혀졌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이 아이셔 같은 맛이라면 코니 윌리스의 소설은 뭔가 마이쮸 같다. 상큼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샌드라 포스터는 하이텍이라는 회사에 소속된 과학자다. 단발머리의 유행을 연구하며 그로 인해 유행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밝히고 싶어 하지만 연구는 진척이 없고 보조원인 플립은 사람을 황망하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 목장을 하는 빌리와 썸을 타고 있다. 샌드라는 플립의 우연한 배달 실수로 잘못 전달된 소포를 전해주고자 생물학부에 찾아 간다. 그리고 혼돈이론을 연구하는 베넷 오라일리 박사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 교류하며 친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플립 때문에 연구비 신청서를 잃어버리고 하이텍에서 나가야 할 위기에 처한 베넷을 돕기 위해 샌드라는 그들의 연구를 하나로 합치기로 하고, 함께 유행과 혼돈에 대한 연구에 돌입하게 되는데...
소설 속에서 샌드라는 수많은 유행들을 만난다. 유행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같은 가게를 자주 찾지만 갈 때마다 달라지는 메뉴라던가, 색깔의 유행이라던가 언어의 유행, 신문에 실린 개인광고, 이마에 새기는 문신, 바비인형, 흡연 혐오에 대한 유행이라던가 하는 것들. 유행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시작점은 알지 못한다.
양들을 이끄는 방울양이란 건 사실 별 게 아니다.
"난 방울양이 다른 여느 양과 똑같은데, 다만 더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배고파하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욕심스러운 거죠. 제일 먼저 먹고 싶어하고, 피신하고 싶어 하고, 짝을 짓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언제나 선두에 나서는 거예요."
방울양은 자신이 무리를 선동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무리의 양들도 자신이 선동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가 유행에 대해서, 유행의 시작에 대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샌드라가 니브니츠 기금을 받게 되고 베넷과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카페의 웨이트리스는 묻는다.
"그 플립이라는 모임은 아무나 가입할 수 있나요? 이미 라떼 치료 모임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엔 귀여운 남자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리고 이 순간은 깨달음의 순간이 된다. 무엇이 유행을 촉발하는지, 과학적인 돌파구는 어떻게 생기는지. 보이지 않는 방울양, 나비의 날개짓. 혼돈을 일으키는 키. 그렇게 두 사람의 연구는 방향성을 잡고 앞으로 이뤄나갈 연구의 시작을 예고한다.
물론 소설은 유행의 이유, 혐오 유행이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해만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플립의 [i] 낙인에 대한 평가가 어떤 과정을 거져 inspiration의 i가 되는지, 흡연 혐오 유행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 그려지는 지, 니브니츠 연구기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턴불 박사와 마찬가지로 니브니츠 연구기금을 자신들에게 유치시키려고 하는 회사가 어떤 입장으로 그려지는 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그 모든 것을 잇고 유지하는 것은 코니 윌리스 특유의 유머 감각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전혀 유행에 따르는 편이 못된다. 유행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외적인 차림에 대한 것으로 규정하였을 때, 이런 나를 소설 속 플립이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스왑!" 아마 플립이 보기에 나나 베넷이나 비슷한 류의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어쩌면 내 쪽이 좀 더 한심하게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유행의 작동 원리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나비효과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의 것이며 우연과 우연의 도미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행은 시작을 예고하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유행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은 이 때문이다.
"유행의 비밀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유행에 따르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과학이란 결국 그런 것이니까요. 다음 유행은 위험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은 나머지 양떼와 함께 절벽으로 달려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이텍을 그만두며 외치던 샌드라의 말. 유행이란 늘 멋지고 좋은 것만이 아니다. 요즘처럼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는 위험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이나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굉장히 리얼리즘적으로 독해하였다고 고백하겠다.)
우리는 이 유행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만 보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을 것. 휩쓸려 조롱하고 낄낄거리며 넘어가기 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볼 것. 상식을 생각할 것. 민족주의적 관점이나 지역주의적인 관점, 특정 성별과 젠더성에 치우친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관점으로, 한 인간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특정 성별, 젠더가 누리고, 빼앗긴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방울양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혐오의 유행을 즐기기 보다 혐오의 원인을 찾는 것, 나 스스로를 돌아볼 것. 스스로를 돌아보는 유행을 만들 것.
정리하자면 우리 모두, 생각하는 방울양이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