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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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해 보이고 도도해 보이는 일명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과 그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한마디로 '책도 돈이 된다'는 다소 낯선 개념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물론 유명하고 희귀한 책, 특히 초판본이나 사인본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우리는 때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더 많다. 우리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사(正史)보다 야사(野史)에,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더 매료될 때가 많다. 책 역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책'이라는 결과물이다. 따라서 책 속에 담긴 우여곡절과 그 책의 운명, 작가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이 책은 그러한 독자들의 심리를 아주 잘 파고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원고를 높이 평가받지만 정작 위험하다는 핑계로 출판사를 찾지 못하다가 올랭피아라는 당시 성애물을 주로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출간된다. 결국 이 책은 올랭피아의 유일한 걸작이 되고, 출판사뿐만 아니라 나보코프에게도 강사 자리를 그만두고 집필과 나비 수집에만 몰두할 수 있는 막대한 부를 선사한다. 물론 이 책을 쓴 게코스키가 <롤리타>로 재미를 본 것은 뻔한 일. 그러나 올랭피아 출판사를 운영하던 지로디아스라는 인물은 돈벼락에 주체 못하다가 5년 만에 파산하고 말았단다.

이 책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거래했던 희귀 초판본과 그 책에 얽힌 '이력서'를 들려주고 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해리포터>가 출판사들의 문전박대로 열세 번째 출판사에서야 고작 초판을 500부 찍었다는 이야기(그래서 이 책의 초판본은 앞으로 무지 비싸고 희귀한 책이 될 거란다), 남편 사랑이 끔찍했던 아내의 실수로 리옹 역에서 그동안 썼던 원고들을 몽땅 잃어버린 헤밍웨이의 고단한 데뷔, 죽은 아들(존 케네디 툴)의 작품(바보들의 연합)을 살려낸 어머니의 노력 등 독자들에게는 신기하고도 유쾌하지만 작가들에게는 험난했던 이야기들은 왠지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한다(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작가들과 그 작가들의 책에 얽힌 뒷이야기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도 게코스키와 같은 용감한 인물이 나와 한국판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를 들려주길 기대해본다).

희귀 초판본 시장의 존재나, 희귀본의 천문학적인 가치, 위대한 책과 작가들의 이력서 등을 들려주는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잠시 딴 생각을 해본다. 그건 정작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서문에 실린 글귀 때문이다. "나는 유쾌한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안정적인 교수 생활(작가는 꽁생원 같은 생활이라고 한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히 떨치고 다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서 결국 성공한 그의 인생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장점과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노력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과 부(富), 그리고 명예 모두를 이룬 게코스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그 어떤 자기개발서보다 재미있고 훌륭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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