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게일 - The Life of David G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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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대할 때에 외모나 첫인상만 보고서 그 사람을 평가 해서는 안되지만, 어떤 사람을 보고나서 '저 사람을 왠지 어떨것 같아...'라고 속으로 생각해 본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상학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아니지만, 희한하게도 깨나 썩 그 외모의 '이미지'와 '성격'이 일치한 적도 있을 거다. 내 경우에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어떤 사람을 보면 선입견 비슷하게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머리속에 스케치하게 되는데 100%까지라고는 못해도 아마 70% 정도는 나의 첫 스케치와 크게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이런 생각 자만이기도 하고, 위험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 확률을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가끔은 영화나 TV를 보며 등장하는 인물들에 이런 못된 장난질을 하기도 한다. (말한 바와 내 같이 추측이 맞는지 틀린지는 확인할 수 없음에도 무의식적으로 -_-;)  

그렇긴 하더라도, 뭐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노홍철 같은 사람을 보면  '평소에도 시끄러울 것 같아...' 라던가 알 파치노를 보면서 '왠지 화내면 굉장히 무서울 것 같아...', 혹은 제니퍼 러브 휴잇을 보며 '평소에도 귀엽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는게 전부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화면의 그 한 명에 대한 평가에서 그쳤는데, 좀 달랐던 경우가 있었다. 'Kevin spacey'가 바로 그 경우였다. 이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 모두에 대한 편견을 내게 남겨버렸으니까... -_-; (사실은 그렇게 믿을 만한 아주 주관적인 근거가 있기도 하다)

 케빈 스페이시를 처음 봤던 건 아마 '네고시에이터'를 통해서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98년 개봉작이니까 과자 한봉지에 벌벌떨던 초딩이 영화관에 가서 보진 않았을 것이고, 수능 끝나고... 쯤? 밖에 술먹으러 나돌아 다니다 지쳐서, 집에서 뒹굴거리다 우연찮게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본 영화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십 편은 될 테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물론 반전도 반전이지만서도 끊임없이 논리적인 말들을 뱉어내던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다. 인질 협상가로서 조근 조근 사무엘 L.잭슨에게 따져대는 케빈 스페이시의 모습은, 흠...뭐랄까? 솔직히 내가 인질범이었다면 짜증났겠다 싶을 정도였다 -_-;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나중에는 사무엘 잭슨이 말려들어서 대체 누가 누구를 설득하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게 처음 케빈 스페이시를 접한 후 잊고 지내다가 한참이나 뒤에,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출연한 작품을 찾아 보았다. '데이비드 게일'과 '유주얼 서스펙트' 두 영화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그의 차분한 표정과 냉정하고 논리적인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이거 연기 아닌거 같아 -_- 이 사람이라면 실제로도 말문을 막아버릴 만큼 멋지게 말을 뱉어낼 것 같아...'라고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다. 단지 그냥 말을 논리적으로 뱉어낸다기 보다, 농담인듯 시크하게 말을 꺼내 놓고서는 따끔하게 목을 졸라멜 것 같단... 생각말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억측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경험으로 증명?이 됐는데, 애꿎게도... 내가 아는 어떤 형이 그 증거물이 되어버렸다. 아직 그 형에게 얘기해주진 못했지만, 케빈 스페이시를 닮은 형이 있는데, 그 형이 가끔 농담인듯 말을 꺼내 놓고는 조근조근 말하면서 내 목을 졸라버리곤 한다. -_-a. 음...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아마 케빈 스페이시 사진을 보면 자신도 느끼지 않을까? 반쪽 짜리긴 해도 아마 용의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듯; 여튼, 케빈 스페이시와 그 형이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 추측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 저렇게 생긴 사람들 아마 조근조근 말하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일 거라고ㅋ  

 

 


                              이게 범인 몽타주다 -_-  =========>  

                                그리고 아래는 '케이트 윈슬렛'  

                                이 분 또한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다

 

 말은 이렇게 하긴 했어도 사실 이 배우,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다. 물론 침착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그의 외모도 외모지만, 그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 연기 또한 일품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의 불안한 표정의 절름발이의 모습, '데이비드 게일'에서 보여준 슬프면서도 비장하고 의연한 모습의 게일, '네고시에이터'에서의 냉정한 카리스마의 크리스 사비안까지 침착한 표정과 논리적인 말들로 영화의 긴장감을 더한다. (중간 중간 약간 망가지는 장면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마 케빈 스페이시의 이런 이미지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다 탁 터트려야 하는 '반전 영화'의 특성상 이 배우가 종종 캐스팅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이 영화들에 이어 비교적 최근 개봉한 '21'까지도 반전 영화인 것을 보면 뭔가 있긴 있나보다 -_-;)  

최근에는 연세도 좀 있으셔서 그런가 주연으로서의 활동이 뜸해 그의 조근대는 말투를 듣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겨준 '아메리칸 뷰티'를 보지 않고 남겨 놓았으니, 아껴 놓았다가 언젠가 귀 간지러울 때 봐야겠다. 아니면 그 형한테 전화나 한 번 할까...ㅋㅋ 

 PS. 케빈스페이시가 주연한 위의 세 영화는 추천하니 안 보신 분은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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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Scent of a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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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를 알고 있었다. 당 해의 아카데미 주연상 등을 싹 쓸었던 영화기도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편의점 새벽 알바를 할 때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영화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해주고 감동적인 장면을 실제로 음성만 틀어주는 그런 프로였다. 처음엔 무슨 영어 학습 프로그램인가... (오성식의 영어처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도 아닌 새벽 2시에 그런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 할 리 만무했다. 그 프로는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지고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새벽의 상담자’랄까? 나도 일하다 지쳐 카운터에 앉아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밖에서 벤츠 몰고 빵빵거리며 새벽에 여자 꼬시며 돌아다니는 애들도 많은데...”하는 따위의 투정을 하며 여성 진행자의 나른한 목소리에 취해 멍하니 앉아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된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도 기억하고 있는 영화는 이 것 하나뿐이다. 거기엔 물론 알 파치노라는 배우의 역할이 지대했을 것이다. 대부와 데빌스 에드버킷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영화를 잘 모르는 나조차 격이 다름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영화의 줄거리에 알 파치노의 연기는 보이지 않으니까. 난 그 영화의 일상의 누구라도 겪을 수 있지만 특별한 그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작게 빛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의 감동들도.

찰리(크리스 오도넬)는 하버드대학을 목표로 시골에서 올라와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고, 프랭크(알 파치노)는 수류탄 사고로 눈이 멀고 퇴역 장교가 된 마초적이지만 자신의 철학과 교양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갈 차비를 벌기 위해 사람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찰리는 조카가 휴가를 떠나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프랭크와 만나게 된다. 둘의 첫 만남은 정말 끔찍했다. 프랭크는 말년 병장이나 가질 법한 근거 없는 권위와 장님의 히스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끔 “후아!~”하며 혼자 짧게 웃는 것을 좋아 하는. 찰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프랭크 조카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주말을 같이 보낼 것을 승낙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퇴역 장교인 장님을 돌봐야 한다는 건 약간 특별할 수 있지만, 노인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는 미국에서는 흔하다니. 그러나 프랭크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 놓았었다. 뉴욕으로의 여행.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을.

이미 1등급 비행기편과 최고급 호텔 그리고 최고급 양복 등을 준비한 프랭크는 찰리에게 같이 죽음을 준비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강요한다.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존심 강하고 인생을 즐기길 원하는 프랭크에게는 너무나도 큰 절망이었을까. 프랭크는 뉴욕으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다.

그저 마초적인 줄만 알았던 프랭크는 전혀 색다른 모습을 지닌 인물이었다. 제목이 ‘여인의 향기’이듯 여자를 좋아하고 프랭크 자신 또한 여자들에게는 세련되고 열정적인 매력으로 여자를 끌어들일 법한 남자다. 사람 가득한 식당에서 처음 보는 미인을 꼬셔 탱고를 멋지게 출 수 있는. 여자가 탱고를 잘 추지 못한다고 하자 “스탭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에요”라고 여자를 설득하는 프랭크는 누가 봐도 작업의 고수다. 나도 이 장면을 보고 춤을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을 정도로 그의 춤은 멋졌다. 프랭크의 이런 새로운 매력과 진솔함에 찰리는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찰리의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생들에게 호되게 당해 자신의 차와 함께 페인트를 뒤집어 쓴 일이 있었다. 찰리는 친구와 함께 전날 그 사건의 주모자 3명을 목격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교장은 찰리와 그 친구에게 주모자를 불 것을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학을 당하고 주모자를 불 경우 하버드 대학으로 장학생 추천을 받아 갈 수 있다고 유혹과 협박을 한다. 하지만 찰리는 친구를 팔아먹는 비겁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프랭크는 이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충고 했다. 하지만 결말은 다르게 난다. 그 결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죽음을 위한 여행이 어떻게 끝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여인과 탱고를 추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비싼 술을 마시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빨간 페라리를 운전해보기도 한 프랭크는 이제 죽음을 준비한다. 최후의 만찬은 이제 끝난 것이다. 

찰리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프랭크는 자신이 가장 영예로웠던 순간인 장교 때의 복장을 차리고 죽음을 준비한다. 미리 프랭크의 죽음을 예견했던 찰리는 담배를 사려다 다시 돌아와 프랭크와 총으로 자살하려는 프랭크와 몸싸움을 한다. 프랭크는 자신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절규한다. 

그러자 내내 프랭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크리스 오도넬(찰리)의 명대사가 작렬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대보라며 프랭크가 묻자 찰리는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 탱고를 잘 추고, 누구보다 페라리를 잘 몰아요”라고 답한다. 맙소사! 적절한 농담은 언제나 현답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 말이 진심이었고 농담이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농담의 힘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프랭크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라고 묻자, 똑똑한 찰리는 예전 프랭크의 대사를 고대로 갔다가 써먹는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에요”라고. 휘청거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라는 선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찰리와 프랭크는 서로 친구가 되고 최후의 만찬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직, 찰리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제 학교로 돌아온 찰리는 교장이 마련한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히거나 친구를 옹호하거나 해야 한다. 전교생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연단에 선 찰리와 친구... 친구의 옆에는 부유한 그의 아버지가 있고 찰리는 혼자다. 그런데 집에 간 줄 알았던 프랭크가 와 연단에서 찰리의 옆에 앉는다. 

찰리의 친구는 청문회에서 애매한 말로 그 세 명의 주모자의 이름을 분다. “어두워서 확실하진 않지만 그들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이제 모든 것은 찰리에게 달린 것이나 나쁜 친구 녀석... 결국엔 찰리에게 몫을 떠넘기려던 것이다. 하지만 찰리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교장은 찰리를 나쁜 녀석, 학교의 명예를 더럽힌 녀석으로 몰아가며 청문회를 마치려 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두 번째 명장면이 등장한다. 프랭크의 변론.

“이아이의 영혼은 순수하고 타협을 모릅니다. 당신은 아시죠? 밝힐 수 없지만 누군가가 그의 영혼을 사려고 했어요. 그러나 찰리는 팔지 않았습니다.”... “난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난 언제나 바른길을 알았어요. 하지만 그 길을 뿌리 쳣어요. 왜냐면 그 길은 너무 어려워서죠.” 이렇게 프랭크는 찰리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감싸고 그의 침묵은 비겁하고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며 숭고한 정신이라고 변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교생의 기립박수. 여기에 감동한 배심원단?(결정을 내리는)은 찰리의 무죄를 선고한다. 찰리는 프랭크를 살렸고 프랭크는 찰리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의 제목을 배신하지 않고, 프랭크의 연설에 감동한 정치에 관심 많은 여교사를 프랭크가 꼬시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이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구성 된다. 그리고 그 두 줄기가 오묘하게 노인과 젊은이의 만남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눈이 먼 퇴역 장교의 삶에 대한 회의와 그에 대한 극복,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선 젊은이의 갈등. 나는 물론 후자에 많은 감동을 느낀 편에 속한다. 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에 할 수 있는 고민에 동감하기 쉬운 거니까. 때문에 프랭크의 연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내게 큰 과제로 다가온 것은, 프랭크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인생의 스승. 그것이 반드시 나의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꼭 나와 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내가 가진 신념을 같이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게 됐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살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협박과 유혹 둘 다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난 꽤나 우유부단한 편이다. 내가 믿는 것이라 하여도 전교생 앞에서 그것을 “이것이 나의 신념이오!”라며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 것이다. 

제목과는 꽤나 괴리가 있는 나의 후기이지만 신념과 그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경험이 많은 동반자, 그것이 영화를 보며 내가 부러웠던 찰리의 모습이고 또 닮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농담을 즐기고 탱고를 배워보아야겠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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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 Billy El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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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에 관한 나의 태도가 늘상 그랬듯,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도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지만(하는 것과 보는 것 모두) 3대 리그에 대해 -프리미어,프리메라,세리에- 빠싹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살지만 콘서트에 다니거나 음반을 사지도 않는다(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긴 하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는 걸 즐기긴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을 외우거나 평론 따위를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아는 감독도 몇 되지 않는데, 그 몇 명이란 길 가는 꼬마들도 알만한 ,스티븐 스필버그, 팀버튼,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다. 이렇게도 감독에 무관심한 이유는 아무리 영화를 봐도 스크린에 감독이 나올 때란 고작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름 한 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그 존재를 실감한 감독이 있는데, 그게 바로 Stephen Daldry 감독이다. <빌리 엘리어트>,<디 아워스>,<더 리더>의 감독으로, 내가 가끔 영화에 대해 좀 아는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_-;. 이 은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우선 나의 "군 입대"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데... 사실 이건 '영화'에 관한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다 -_- 

 

 

 

 

 

 

 

  -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연 케이트 윈슬렛과 스티븐 달드리 감독

 

 누구나 입대하기 한 달 전쯤에는 불안감과 조바심을 느낀다. 물론 몇몇의 무딘 친구들은 입대 당일 차가운 침상에 눕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라고 했지만,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사실은 내게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입대 전에 그 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해봐야 한단 압박감을 줬다. 대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상 그리할 수 없었던 나는 대신 고상한 척 [영화 감상]을 택했다. 소위의 그 [문화생활]과 가까운 것이란 점,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단(부끄럽지만 물론 어둠의 경로를 말하는거다) 점이 그 이유라면 이유였다. 

 영화의 선정은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참고했는데, 평점이 높은 영화 중 몇 년씩 지난 영화를 택했다(최신 영화는 알바님들이 열심히 서포트 한다기에...). 그 중 하나가 <빌리 엘리어트>였는데, 그나마도 '남자가 발레하는 이야기'라기에 재미 없을까봐 보지 않고 미루다 결국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어지고 나서야, 유통기한 지난 음식 맛보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봤다는 약간은 기구한 사연이 있다. 

 '빌리'라는 소년이 주위의 편견을 극복해가며 '발레리노'라는 꿈을 이루어 가는 내용의 이 영화는, 더불어 80년대 영국 탄광촌 파업의 시대상황과,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약간씩, 그리고 전혀 거부감 없이 다루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고, 감독의 존재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이유다. '편견'과의 싸움, 파업의 현장, 동성애를 그리자면 비장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되야할 것 같지만, 감독은 이 모두를 모아 휴머니즘적인 영화로 녹여냈다. 심지어 영화가 유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까지 말이다. 

 Daldry 감독은 이러한 휴머니즘적 승화를 세가지를 통해 가능케 했는데, 그게 바로<춤과 음악>,<개성 있는 캐릭터>,<장난 스러운 몇몇의 장면>이다. 특히나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인 <춤과 음악>은 영화 전반에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즐거움은 더하고 우울함은 전환해가며 영화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한다. 이런 노력은 발레 선생과 형의 다툼 이후의 장면과, 아버지 앞에서 발레에의 의지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지는데, 감독이 춤과 음악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하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조율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빌리'를 연기한 Jamie Bell의 공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연기도 연기지만 그의 춤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그의 현란한 스텝을 보며 나도 제법 발을 굴려 봤지만... -_- 리듬을 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Jamie Bell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각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리며 연기 했는데, 이 모두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가부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아버지, 반항적인 형, 치매에 걸린 할머니, 동성애자인 친구, 시종일관 담배를 뻐끔거리는 발레 선생님까지 독특한 인물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든다. 어쩌면 '정상'이라 불리는 기준과는 약간씩 '다른' 인물들이기에 더 거부감 없이 '진짜 이야기'처럼 짠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감독은 영화의 활력을 위해 이런 독특한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몇 개의 재미난 씬을 더했는데, 영화 중간 중간 미소 짓게 만드는 이런 장면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예를 들어, 길가에 서 있던 소녀가 차가 지나가고 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던가, 발레 학원에 가는 도중 야구공에 맞을 뻔하는 빌리의 모습, "나도 발레리나가 될 수 있었는데..."라며 나름 우아하게 포즈를 잡는 할머니의 모습 등 내용 전개상 꼭 필요하진 않아 조금은 생뚱맞게도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없어도 된다기 보다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그것들이 있기에 즐거울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런 장난스러운 씬들의 존재는 마치 영화를 통해 감독이 내게 '농담'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아마도 이 사람 굉장히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만들 정도다. 

 이런 몇 가지 노력을 통해 Daldry 감독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은 가볍게 전달하는데, 이게 바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까 한다. 긴장을 풀고 잔잔히 웃으며 영화에 집중하는 순간, [소년의 발레]와 [동성애자 친구]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웃고 떠들며 쇼핑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두 손 가득 물건을 사들고 가게를 나오는 것처럼. 방심하는 순간 이미 Daldry 감독의 화술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편의 영화, 2 시간 여의 유쾌한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 거 봐, 네가 '편견'을 가지고 있던 건 사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조용히 미소 지으며 넘겨줄 수 있는 거라구"라고 말하는 것이고, 마지막 빌리의 비행(발레)이 끝나고 영화에 동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스크린에 보이지 않던 감독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편견'에 대하여 계속해서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던 그의 존재를 말이다. 

 이러한 그의 화술에 매력을 느낀 나는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더 리더>까지 찾아 보았지만, 시나리오 자체의 성격이 달라서인지 전작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침묵'으로 쓴 서정시... 같다고 할까? 전작과는 반대로 침묵과 인물 표정이 두드러지게 느껴진 영화였던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도 감명 깊게 보았으며,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작을 기대하고 봤던 난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더 리더'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나의 눈썰미와 글솜씨로는 도저히 둘을 같이 묶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따로 써보도록 하겠다] 

 개봉 당시 홍보 부족으로 미미하게 시작됐지만, 이내 입소문 만으로 영국에서 무려 1년 동안이나 상영됐다는 이 영화는, 내년에 한국에서 뮤지컬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빌리'역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전국 오디션을 할 뿐 아니라, 선발되는 배우에게는 발레 유학코스까지 제공한다니 그 노력을 보아서도 기대할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배우보다도 감독의 역량이 빛을 발했던 이 영화를 얼만큼이나 따라갈 수 있을지는 역시나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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