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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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한다.하지만 어빈 얄롬은 '소설'이라는 사각을 이용해 동 시대에 존재했음에도, 만난 적이 없었을 니체와 브로이어를 한 데 엮어 놓았다. 니체는 실존주의의 선구자라 불리고, 브로이어는 프로이트의 스승으로 정신분석 영역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던 지성인이다. 실제로 니체와 브로이어는 만난 적이 없다지만, 19세기 말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만남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실제 그들이 만났으면 어땠을까..."하는 만큼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물론 브로이어는 정신분석영역과 신경체계를 연구한 의사이자 의학자였고 니체는 철학자였기 때문에 이 둘의 만남이 어떻게 그만큼의 호기심을 불러올 수 있는가 의아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실로 교묘하고도 독창적으로 그려낸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니체는 평생 편두통과 정신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과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발병된 니체의 '편두통'과 '정신질환'이 니체와 브로이어 만남의 계기가 된다. 브로이어가 아내와 함께 베네치아에 휴가를 갔을 때, 한 매력적인 여인이 브로이어에게 다가온다. 성의 없는 쪽지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브로이어에게 만남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루 살로메'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여왕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여성으로 브로이어에게 '니체를 치료할 것'을  부탁? 아니 강요한다. 니체의 연인이었던 살로메는 니체가 깊은 절망에 빠져있으며 자살을 고려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빠져있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1세의 아름다운 여성인 살로메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압도된 브로이어는 살로메의 부탁을 받아들여 '니체'의 치료를 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도 심지어 살로메의 청탁을 받아 치료하게 되었다는 그 치료 동기조차 비밀로 한 채 말이다. 한 때 연인이었던 니체와 살로메가 현재 좋지 않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니체의 친구의 도움으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니체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예리한 통찰력, 물 샐 틈 없는 논리와 함께 그 누구에게 콩 한 쪽이라도 빚을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니체를 치료하기 위해서 브로이어는 자신이 치료해왔던 수 많은 사람들과 다른 그 어떤 것을 도입해야했다. 이에 브로이어는 아직 미개척 분야였던 정신분석을 니체에게 실시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치료, 아니 그 이상의 둘 사이의 철학과 논리의 공방전이 시작된다.

 

자신의 치료 목적과 동기를 속여야만 하는 브로이어와,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번뜩이는 눈을 지닌 니체와의 치료 분석 과정에서의 심리적 공방과 논리의 대결은 수백 페이지 동안 계속되지만 진행되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이어나간다. 이 소설의 매력이 바로 이러한 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들켜선 안 될 것을 지키면서 '치료'라는 자신의 목적을 이뤄내야만 하는 브로이어의 치밀한 논리적 체계와 그를 유지하기위한 심리적 긴장. 그리고 그것을 직접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또 호락호락하게 브로이어의 목적대로 이끌려 가지 만은 않는 니체. 그러한 긴장감이 소설의 뒷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했다. 소설에서의 표현대로 그 둘의 대화는 긴장감 넘치는 한 판의 체스게임과 같다!

 

이 소설의 또 한가지 매력은 이 둘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이다. '관계'에 대한 서술, 삶에 대한 둘의 생각.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니체가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남들이 존경할 만한 브로이어의 삶. 명성을 떨치는 의사로 살아가고 있지만 평생 그것이 자신이 원해서 라기 보다는 니체가 지적했던  '인간은 욕망의 대상보다는 욕망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자신이 찾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이끌리는 '맹목적이고 겉보이기 위한 행복'을 추구했던 브로이어는 이 점에서 니체에게서 오히려 치료를 받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도 인생과 삶에 대한 니체의 진술에 고개를 끄덕였던 수 많은 말들. 그것이 이 책의 또 한가지 매력이라 할 수 있다.    - 실제로 니체가 브로이어의 정신적 치료를 하게 된 것은 브로이어가 니체를 자신의 철학적 스승으로 만듦으로써 니체가 간직한 비밀을 캐어 자신의 '치료'를 완성시키려는 브로이어의 계략이었으나, 나는 그 과정이 꼭 브로이어가 의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니체의 내면적 깊이, 철학적 고찰이 내면에 불안을 감춰든 브로이어를 자극해 만든 불가피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    

 

브로이어가 그렇듯 니체의 편두통과 그외 신체적 질환을 치료하는 사이 니체는 반대로 자신의 철학을 통해 브로이어의 삶에서 결부되어있는 허전한 공백을 확인시키고 찾아 나설 것을 종용한다. 그러한 상호적 작용을 경험하면서 니체와 브로이어는 서로의 모습에서 서로를 발견하며 우정을 갖게된다. 그리고 이 둘 간의 우정과 만남의 일련의 과정은 치료가 끝이날 때에 몇 십년 간 억압되어 있는 니체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니체의 눈물에는 여러가지가 영향을 미치지만 제 해석에서는 이게 큰 영향을 끼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글에 더하면 글이 심난해질까 적지 않았습니다^^;; 읽어보시면 다양한 원인을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니체의 눈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다. 왜냐면 첫 번째는, 그 과정에서 살로메와의 관계와 브로이어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눈물'이라는 것이 통상적으로도 여러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지독히 슬플 때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쁠 때에도 인간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그것이 '눈물'의 의미를 해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니체의 눈물이 어떤 계기로 흐르게 되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지금에서도 생각을 다시 해보게끔 만들어 답답하기도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바로 그러한 점에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배신에 대한 슬픔이냐 관계에 대한 확인의 기쁨이냐 아니면 그 둘 다인가 하는 그러한 질문들. 삶에서 내가 원하고 바랐던 것들 그리고 흐르는 눈물처럼 지금 나에게 나타나고 있는 지표들의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을 직시하고 의미를 파악하여 진정한 길을 걷게 하는 것. 그러한 치료 과정의 종용. 그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굳이 니체와 브로이어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치료의 과정을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어쩌면 어빈 얄롬은 니체와 브로이어 두 치료사를 통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치료 받을 수 있기를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아프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한다는 요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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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고상만 지음 / 청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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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르포가 없다고?

 

요즘 한겨레 21을 펼쳐들면 계속해서 눈에 띄는 것이 '제 1회 한겨레21 르포상 공모'다. 한국에 존경받는 르포 작가가 있습니까? 라는 다소 도전적인 말투의 이 공모 광고는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당시 활약했던 '존 리드'와 같은 르포 작가가 한국에는 없다며 한탄?한다. 현장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현장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진짜 르포 그것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내가 읽은 책은 어쩌면 '르포'가 아니다. 적어도 르포라는 것이 반드시 '존 리드'처럼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의 다큐멘터리적 문학 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니가 뭔데..."의 저자 고상만은 글을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이도 아니요, 더구나 문학적 효과를 고려해가며 글을 쓴 것은 더더욱 아니다 - 물론 이것이 내가 저자의 글쓰기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인권운동가 고상만의 글은 자신이 인권운동가로서 살면서 겪은 일들 사회의 부조리와 힘 없는 자의 서러움을 그의 가슴을 통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뱉어낸다. 의문사 유족들, 인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의 이야기를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려 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본 그의 사회에 대한 진술들은 말 그대로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생생한 르포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겨레 21 매 호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입해 보는 애독자지만 적어도 "우리나리에 훌륭한 르포가 없다"는 말은 '실언'일 수 밖에 없다.

 

평생의 약속

 

자신이 인권운동가의 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그의 대학생 시절의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학재단의 비리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 그는 당시 평생의 빚을 짊어 주는 한 선배를 만난다. '김용갑' 자신보다 4년 선배인 그는 사학재단의 비리에 맞서 투쟁을 하고, 총학생회 입후보를 하게 된다. 당시 학교의 재단은 지방의 폭력배를 동원해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을 억압했다. 때문에 입후보 과정에서부터 그 후까지 무수한 억압을 받게된다. 결국 김용갑은 총학생회장을 맡게 되었지만. 학교 측은 건달을 학교 교직원으로 임용해 김용갑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총학생회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차로 갈아버리겠다"는 위협과 함께. 그리고 얼마 뒤 위협은 단순히 위협으로 끝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된 김용갑의 시신만이 싸늘하게 돌아왔을 뿐이었다. 김용갑의 살인 사건을 추궁하던 그는 결국 학교에서조차 제적당하고... 가슴에 김용갑의 뼛가루를 묻고 다짐한다. "평생 형이 못 다한 꿈을 위해 살겠노라"고.

 

이 한 번의 약속을 고상만은 평생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후 10여 년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근 간사 등 수 많은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힘 없는 자들을 위해 한 달에 30만원 씩의 기부금만을 받으며 자신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와중에 많은 일을 겪었다. 민주화 대통령인 김영삼이 정권을 잡고난 후 벌어진 연대사태에서의 여대생 성추행 사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진 김훈 중위의 의문사. 그리고 사법부의 불성실로 인해 불거진 무죄인의 죄인 탈바꿈 사건 등. 그 모든 일들은 다 그들이 '힘 없는 약자' 였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묵인 받은 것이고 지금도 어디선가 은폐되고 있다고 고상만은 말한다. JSA에서 벌어진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의 경우 아버지가 쓰리 스타인 장성이었음에도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쓰리 스타마저 국가 앞에서 무능력한 마당에 그보다 약한 자들의 경우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모든 일들을 그는 현장에서 지켜보았고 약자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읽는 이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이 책의 제목인 "니가 뭔데..."는 그러한 두려움의 근원이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분개해 분신한 장애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주검마저 약탈해가려는 경찰에 맞서 병원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고상만이 경찰에게서 들었던 "니가 뭔데..."라는 한 마디는 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인권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가슴아프도록 정확하게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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