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업 Coming Up 1
기선 지음 / 북폴리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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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걸그룹을 꿈꾸는 소녀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라는 설정이 그다지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선호하는 희망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 되었고, 때 마침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우세로 TV만 틀면 가수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듯 우후죽순 생겨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식상하게 느껴지던 터라 이제는 웹툰까지 걸그룹 열풍인가 싶어 별로 흥미가 일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즐겨보는 웹툰이 동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한정돼 있던 내게 이 웹툰은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별 기대없이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는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들었던 나는 아이들이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샌가 이 네 소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최고의 락밴드가 되겠다는 꿈을 꾸던 아영,지향,지수는 몰래 야자를 빠지고 오디션을 보러간다. 화려하게 꾸민 겉모습과 달리 터무니없는 실력으로 오디션에 탈락하지만 우연히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프로듀서 오준오에 눈에 든다.
웃는 얼굴로 독설을 내뱉는 이 유명 프로듀서는 굴지의 기획사를 나와 독자적으로 신인그룹을 키우고자 하고 이 세명의 여고생에게 락이 아닌 걸그룹을 제의한다.  
 
"저기요. 그럼 대체 우리처럼 허접하기 짝이 없는 애들한테 명함은 왜 줬을까요?" 
"글쎄...남자의 감이랄까? 솔직히 나도 처음엔 왜 니네한테 관심이 가는지 모르겠더라고. 얼굴도 영 아니고 노래 실력도 형편없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한 게... 딱 동네 양아치 같은 분위기거든? 아주 친근하고 좋더라."
"칭찬이 아니잖아요!!!"
"근데 이상하게 재밌어. 얘네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까..무슨 행동을 할까 궁금하고 뭘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단 말야.
난 그런 걸 '스타'라고 생각하거든. 적어도 이쪽에 있어서 지금까지 내 눈은 틀린 적이 없어.
P.45~46 

 

고민끝에 제의를 받아들인 이들은 자신들의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노래실력은 알아주지만 뚱뚱하고 소심한 성격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초희에게 그룹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고, 초희는 예상과 달리 흔쾌히 받아들인다.
우여곡절 끝에 세 명의 불량 학생과 한 명의 모범생으로 이루어진 예비 걸그룹은 데뷔를 위해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한다.
 
본격 걸그룹 만들기 프로젝트란 소개답게 평범한 여고생에서 연습생 과정을 거쳐 마침내 데뷔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까지 실제를 방불케하며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웹툰다운 코믹한 대사나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지만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책 속에서 이들의 데뷔 무대인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상한 구성이 아니라 더욱 흥미를 유발했는데 실제로 이 구성을 차용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여고생이 진정한 꿈을 찾아가는 고군분투 명랑 스토리 커밍업! 뒷 이야기가 궁금해 연재중인 웹툰을 찾아볼 만큼 재미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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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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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추리소설은 그만!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유쾌상쾌 착한 미스터리 소설 !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본격 유머 미스터리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구축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기대 이상, 아니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가히 최고라 할만 하다. 완전 범죄에 고양이는 몇마리 필요한가를 통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던 히가시가와 도쿠야. 다른 미스터리 소설과 다르게 유머로 무장한 그의 이야기는 매번 기분좋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동안 읽었던 서너편의 작품들이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오랜 시간 그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작가는 곳곳에 웃음이 묻어나는 신나는 미스터리 소설로 돌아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이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요즘들어 우울한 내용의 책들을 읽느라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나서 그런가...마치 엄마친구의 아들 딸의 동생의 옆집 친구같은 친근하고 유쾌한 등장인물들의 활약이 귀엽기 그지 없다. 철은 좀 없지만 이만하면 착한 편이고, 사고도 치긴 하지만 그것도 뭐 이정도면 애교 수준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고등학생들만 있다면 그래도 살만할텐데 하는 우울한 생각도 잠시, 하루가 다르게 사건이 벌어지는 이 학교.. 이대로 괜찮은건가 심히 걱정스럽다. 코이가쿠보가쿠엔 고교는 학생도 선생도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뭐 다그런건 아니겠지만 일단 탐정부 부부장 '키리가미네 료'와 지도교사 이시자키 선생님을 봐서는 그렇다.

벌어지는 사건들도 하나같이 수월하지가 않다. 빠져나갈 곳이라곤 없는 복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도둑, 별똥별을 관측하던 중 나타난 UFO(라고 믿는 건 이시자키 선생님 뿐이지만..)를 쫓아간 곳에서 발견한 쓰러진 사람과 발자국 없는 범인, 하늘에서 떨어진 학생에게 깔려 의식불명이 된 에이코 선생님 등등 의혹 투성이의 사건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진짜 탐정의 면모를 갖춰간다.

 

"선생님, 남자 육상부에서 아다치에게 살의를 가질 만한 인물이 있을까요? 짐작 가는 사람 없어요?"

"무슨 그런 바보같은 소시를 ...우리 육상부에 아다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어."

산생님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일순 나보다도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허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언젠가 꼭 한번은 패주고 싶다고 벼르는 애들은 있지. 스무 명쯤 될걸."

스무 명? 많잖아.

"육상부 정원이 몇 명인데요?"

"스물한 명이다."

P. 255

 

밀실시리즈의 히가시가와 도쿠야도 좋았지만 방과후의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한층 더 재미지다. 게다가 트릭과 구성은 단순명료하고 깔끔하나 결코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한점의 의혹도 남지 않는 명쾌함에 속이 시원한 동시에 이야기 곳곳에 녹아든 깨알같은 재미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무겁지 않다고 해서 구성이 허술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절묘하게 배치된 복선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묘미까지 고스란히 갖춘 탄탄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기가 무섭게 뒷장을 넘기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잘못된 추리에 깜빡 속은 것도 모르고 웃느라 정신줄을 놓는 틈을 타 이때다! 하고 사건에 숨겨진 진짜 트릭을 들이미니 뒷통수를 맞은 기분에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그 뜨악하는 순간을 즐기게 만드는 게 바로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의 매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연작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가뭄의 단비같은 책이었다. 지루한 지하철 안에서 부담스러운 장편소설 대신 읽고 싶은 마음에 아껴두려 했지만 한번 잡으니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하긴 지하철에서 읽다가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 애먹었겠다...)

무겁지 않은 소재와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유머코드가 어우러진 책을 순식간에 읽고 나자 재미난 시트콤을 본 기분이었다.

생생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빠른 이야기 전개, 독특한 설정의 에피소드까지 뭐하나 나무랄 게 없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짧다는 것. 좀 천천히 읽을 걸... 재미있는 만큼 후딱 읽혀서 영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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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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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수많은 존재. 그 중심에 건축물이 있다. 이 책은 이땅에서 사라져간 건축물을 통해 누군가가 파괴하고 싶어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단순히 잘 지어진 건축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은 기억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닌 민족의 정신인 동시에 뿌리와도 같다. 건축물이 내포한 기억이 바로 그 민족이 거쳐온 세월인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나이를 가늠하듯 어느 장소에 어떠한 이유로 세워져 있는 것인지. 건축물은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빈번히 일어난다. 일제시대를 거쳐온 우리 민족에게는 건축물 파괴가  낯설지 않다. 그 나라의 민족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식이 바로 언어와 건축물의 파괴였다. 한 나라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건축물은 토템적 성격을 띤 상질물인 것이다.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정복과 테러를 넘어서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9.11테러로 희생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나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 등 저마다 각기 다른 목적과 이유로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 건출물 중에는 재건에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겉모습이 복구가 되었다한들 온전한 모습을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그 속에 담겼던 정신까지 치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제는 건축물을 통해 감정이 아닌 역사를 조작하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을때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될 위험 또한 커진다.

P.347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건축물이란 문화유산을 통해 조작되는 집단의 기억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 혹은 그렇지 못한 사건들까지 심도깊게 다루고 있어 미쳐 생각치 못했던 부분들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각 나라마다 이 파괴행위에 대처하는 방식들이 달랐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지는 문화유산을 기억의 보존이란 측면에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번 사라진 예술의 특별한 소명은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

멸종한 어느 야생 조류의 노랫소리처럼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조지프 콘래드,<바다의 거울>(1906)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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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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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할지 상상해보곤 한다. 소리없는 조용한 소멸이 될지, 처참한 고통을 동반할지 알 수 없으나 종말이란 단어는 참혹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지 늘 궁금했던 세상의 끝에 해답을 제시해 줄 것 같은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 뿐 아니라 저자의 가설과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미래의 모습들이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할법한 여러 추측을 벅절히 버무려 죽음이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즐겁게 풀어나갔다. 만약에란 가정만을 앞세워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오랜시간 연구해온 사실에 근거한 가설이었다. 이 책에 등장한 이야기들을 모두 재미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유였다. 단순명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작가의 글은 시종일관 흥미롭다.

 

인간 그 자체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를 넘어서 미지의 세계인 우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광범위한 주제를 아우르며 끝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얼핏 난해하거나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친절한 설명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지루하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많은 이들이 조심스러워하는 주제를 이토록 적당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싶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의 흐름이 3장 종말의 10가지 시나리오에 이르러서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핵폭탄, 바이러스 등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독자 스스로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나는 지구의 종말을 주장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이 틀렸다는 데 나의 전 재산을 걸 용의가 있다. 이것은 무조건 나에게 유리한 도박이다.

내 말이 맞는다면 나는 부자가 될 것이고, 내가 틀렸다면 세상이 사라질 것이므로 나는 잃을 것이 없다!"

P.109

 

어쨌거나 우리는 생각이 없는 물질보다는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마술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P.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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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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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유언장, 관 속에서 발견된 또다른 시신!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려 한다. 다만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쳤으며, 또 내막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어떤 이가 말하길 어느 모로 보나 <그리스관 미스터리> 야 말로 엘러퀸의 모험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흥미로운 모험이었다는 증언만을 전해둔다.
부디 즐거운 사냥이 되시기를

1932년 2월 J.J.맥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추리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신은 하나같이 비밀을 간직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죽음에 얽힌 이면에는 도둑맞은 물건이 존재한다. 잃어버린 것이 보석이 되었든, 유서가 되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단지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할 뿐이다. 탐정은 사라진 물건을 찾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사건의 내막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공식이 성립하지 않으면 추리소설은 결코 진행될 수 없는 것일까. 

새로운 추리소설을 접할 때 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러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일컫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관 미스터리에서도 도입 부분은 여지없이 사라진 유언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이 책 역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를 띤 식상한 이야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엘러리 퀸 시리즈는 식상함을 넘어서 고전이기에 가능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얼마전 읽었던 홈즈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처럼 이는 역시 '고전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치 못했던 결말과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 범인. 이러한 반전의 묘미는 추리소설을 위한 가장 큰 요소이다. 그리고 이같은 반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의외성타당성일 것이다. 제 아무리 놀라운 반전이라 하더라도 독자를 납득시킬 수 없으면 반전 그 자체만을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부자연스러운 결말에 불과할 뿐이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추리소설 중에서도 이렇듯 반전에 부담을 느낀 듯한 이야기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차마 추리라고 하기 민망한 결말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홈즈나 엘러리퀸 시리즈처럼 고전으로 인정받은 작품에는 이런 억지가 없다. 고로 이런 이유로 나는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작품들은 구성에 있어서나 결말에 있어서나 기대이상의 만족을 선사한다. 이 책 역시 오래전에 쓰여졌지만 그만큼 많은 미스터리소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혹여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상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감쪽같이 사라진 유언장의 행방을 쫓던 퀸 부자는 시신이 묻힌 관 속에 유언장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관 뚜꼉을 연다. 그러나 그 안에는 유언장 대신 두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원래 있던 시신 외에 새롭게 발견 된 또 한 구의 시신은 가볍게 생각했던 이 사건이 더이상 시시한 종이찾기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구의 시체로 인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심증이 가는 인물이 너무도 많다. 사건 현장에 있던 집안 사람들 모두가 용의 선상에 오르고 엘러리 퀸은 특유의 집요함으로 증언을 확보하고 알리바이를 확인해 나간다. 그러던 중 엘러리 퀸은 자만심에 사로잡혀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마는데 그 일 이후 의기 소침 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실수를 교훈삼아 신중하고 끈질간 자세로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마법이 아니라 논리입니다. 샘슨 검사님. 물론 저는 지나간 것들을 통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은 아닙니다....어쨌든 저는 이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압니다."

 

그리스관 미스터리는 줄거리 자체보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논리적인 상황묘사와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추론해나가는 가운데 독자의 예상을 보기좋게 벗어나는 용의자들과 마주하는 짜릿함이 있다. 내가 지목했던 인물들이 하나 둘씩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으로 밝혀진 이는 책을 읽는 내내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내 머릿속 리스트에 그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단서나 의혹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작가는 그가 범인임을 말해주는 계산된 복선을 여럿 깔아 두었다. 다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앞으로 돌아가 퀸이 제시한 증거들을 차분히 되짚어 보니 그제서야 왜 그가 범인일 수 밖에 없는지 납득이 갔다.

괜히 고전이 아니구나 싶다. 탄탄한 구성과 철저히 논리에 의거한 결말! 이것이 바로 엘러리 퀸 시리즈가 세월을 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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