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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ㅣ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잔인한 추리소설은 그만!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유쾌상쾌 착한 미스터리 소설 !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본격 유머 미스터리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구축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기대 이상, 아니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가히 최고라 할만 하다. 완전 범죄에 고양이는 몇마리 필요한가를 통해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던 히가시가와 도쿠야. 다른 미스터리 소설과 다르게 유머로 무장한 그의 이야기는 매번 기분좋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동안 읽었던 서너편의 작품들이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오랜 시간 그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작가는 곳곳에 웃음이 묻어나는 신나는 미스터리 소설로 돌아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데, 이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요즘들어 우울한 내용의 책들을 읽느라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나서 그런가...마치 엄마친구의 아들 딸의 동생의 옆집 친구같은 친근하고 유쾌한 등장인물들의 활약이 귀엽기 그지 없다. 철은 좀 없지만 이만하면 착한 편이고, 사고도 치긴 하지만 그것도 뭐 이정도면 애교 수준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고등학생들만 있다면 그래도 살만할텐데 하는 우울한 생각도 잠시, 하루가 다르게 사건이 벌어지는 이 학교.. 이대로 괜찮은건가 심히 걱정스럽다. 코이가쿠보가쿠엔 고교는 학생도 선생도 평범하지 않아 보인다. 뭐 다그런건 아니겠지만 일단 탐정부 부부장 '키리가미네 료'와 지도교사 이시자키 선생님을 봐서는 그렇다.
벌어지는 사건들도 하나같이 수월하지가 않다. 빠져나갈 곳이라곤 없는 복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도둑, 별똥별을 관측하던 중 나타난 UFO(라고 믿는 건 이시자키 선생님 뿐이지만..)를 쫓아간 곳에서 발견한 쓰러진 사람과 발자국 없는 범인, 하늘에서 떨어진 학생에게 깔려 의식불명이 된 에이코 선생님 등등 의혹 투성이의 사건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진짜 탐정의 면모를 갖춰간다.
"선생님, 남자 육상부에서 아다치에게 살의를 가질 만한 인물이 있을까요? 짐작 가는 사람 없어요?"
"무슨 그런 바보같은 소시를 ...우리 육상부에 아다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어."
산생님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일순 나보다도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허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언젠가 꼭 한번은 패주고 싶다고 벼르는 애들은 있지. 스무 명쯤 될걸."
스무 명? 많잖아.
"육상부 정원이 몇 명인데요?"
"스물한 명이다."
P. 255
밀실시리즈의 히가시가와 도쿠야도 좋았지만 방과후의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한층 더 재미지다. 게다가 트릭과 구성은 단순명료하고 깔끔하나 결코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한점의 의혹도 남지 않는 명쾌함에 속이 시원한 동시에 이야기 곳곳에 녹아든 깨알같은 재미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무겁지 않다고 해서 구성이 허술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절묘하게 배치된 복선과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묘미까지 고스란히 갖춘 탄탄한 본격 추리소설이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기가 무섭게 뒷장을 넘기는 순간 새로운 사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잘못된 추리에 깜빡 속은 것도 모르고 웃느라 정신줄을 놓는 틈을 타 이때다! 하고 사건에 숨겨진 진짜 트릭을 들이미니 뒷통수를 맞은 기분에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그 뜨악하는 순간을 즐기게 만드는 게 바로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의 매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연작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가뭄의 단비같은 책이었다. 지루한 지하철 안에서 부담스러운 장편소설 대신 읽고 싶은 마음에 아껴두려 했지만 한번 잡으니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하긴 지하철에서 읽다가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 애먹었겠다...)
무겁지 않은 소재와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유머코드가 어우러진 책을 순식간에 읽고 나자 재미난 시트콤을 본 기분이었다.
생생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빠른 이야기 전개, 독특한 설정의 에피소드까지 뭐하나 나무랄 게 없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짧다는 것. 좀 천천히 읽을 걸... 재미있는 만큼 후딱 읽혀서 영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