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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수많은 존재. 그 중심에 건축물이 있다. 이 책은 이땅에서 사라져간 건축물을 통해 누군가가 파괴하고 싶어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단순히 잘 지어진 건축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은 기억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닌 민족의 정신인 동시에 뿌리와도 같다. 건축물이 내포한 기억이 바로 그 민족이 거쳐온 세월인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나이를 가늠하듯 어느 장소에 어떠한 이유로 세워져 있는 것인지. 건축물은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말해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빈번히 일어난다. 일제시대를 거쳐온 우리 민족에게는 건축물 파괴가 낯설지 않다. 그 나라의 민족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식이 바로 언어와 건축물의 파괴였다. 한 나라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건축물은 토템적 성격을 띤 상질물인 것이다.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정복과 테러를 넘어서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9.11테러로 희생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나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 등 저마다 각기 다른 목적과 이유로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 건출물 중에는 재건에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겉모습이 복구가 되었다한들 온전한 모습을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그 속에 담겼던 정신까지 치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제는 건축물을 통해 감정이 아닌 역사를 조작하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을때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될 위험 또한 커진다.
P.347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건축물이란 문화유산을 통해 조작되는 집단의 기억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 혹은 그렇지 못한 사건들까지 심도깊게 다루고 있어 미쳐 생각치 못했던 부분들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각 나라마다 이 파괴행위에 대처하는 방식들이 달랐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지는 문화유산을 기억의 보존이란 측면에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번 사라진 예술의 특별한 소명은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
멸종한 어느 야생 조류의 노랫소리처럼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조지프 콘래드,<바다의 거울>(1906)
P.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