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 관 미스터리 ㅣ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희균 옮김 / 검은숲 / 2012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사라진 유언장, 관 속에서 발견된 또다른 시신!
.....자세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려 한다. 다만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쳤으며, 또 내막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어떤 이가 말하길 어느 모로 보나 <그리스관 미스터리> 야 말로 엘러리 퀸의 모험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흥미로운 모험이었다는 증언만을 전해둔다.
부디 즐거운 사냥이 되시기를
1932년 2월 J.J.맥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추리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신은 하나같이 비밀을 간직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죽음에 얽힌 이면에는 도둑맞은 물건이 존재한다. 잃어버린 것이 보석이 되었든, 유서가 되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단지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할 뿐이다. 탐정은 사라진 물건을 찾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사건의 내막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공식이 성립하지 않으면 추리소설은 결코 진행될 수 없는 것일까.
새로운 추리소설을 접할 때 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러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리고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일컫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관 미스터리에서도 도입 부분은 여지없이 사라진 유언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이 책 역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를 띤 식상한 이야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엘러리 퀸 시리즈는 식상함을 넘어서 고전이기에 가능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얼마전 읽었던 홈즈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처럼 이는 역시 '고전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생각치 못했던 결말과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 범인. 이러한 반전의 묘미는 추리소설을 위한 가장 큰 요소이다. 그리고 이같은 반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의외성과 타당성일 것이다. 제 아무리 놀라운 반전이라 하더라도 독자를 납득시킬 수 없으면 반전 그 자체만을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부자연스러운 결말에 불과할 뿐이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추리소설 중에서도 이렇듯 반전에 부담을 느낀 듯한 이야기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차마 추리라고 하기 민망한 결말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홈즈나 엘러리퀸 시리즈처럼 고전으로 인정받은 작품에는 이런 억지가 없다. 고로 이런 이유로 나는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작품들은 구성에 있어서나 결말에 있어서나 기대이상의 만족을 선사한다. 이 책 역시 오래전에 쓰여졌지만 그만큼 많은 미스터리소설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혹여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상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감쪽같이 사라진 유언장의 행방을 쫓던 퀸 부자는 시신이 묻힌 관 속에 유언장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관 뚜꼉을 연다. 그러나 그 안에는 유언장 대신 두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원래 있던 시신 외에 새롭게 발견 된 또 한 구의 시신은 가볍게 생각했던 이 사건이 더이상 시시한 종이찾기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구의 시체로 인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심증이 가는 인물이 너무도 많다. 사건 현장에 있던 집안 사람들 모두가 용의 선상에 오르고 엘러리 퀸은 특유의 집요함으로 증언을 확보하고 알리바이를 확인해 나간다. 그러던 중 엘러리 퀸은 자만심에 사로잡혀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마는데 그 일 이후 의기 소침 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실수를 교훈삼아 신중하고 끈질간 자세로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마법이 아니라 논리입니다. 샘슨 검사님. 물론 저는 지나간 것들을 통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은 아닙니다....어쨌든 저는 이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압니다."
그리스관 미스터리는 줄거리 자체보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논리적인 상황묘사와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사건을 추론해나가는 가운데 독자의 예상을 보기좋게 벗어나는 용의자들과 마주하는 짜릿함이 있다. 내가 지목했던 인물들이 하나 둘씩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으로 밝혀진 이는 책을 읽는 내내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내 머릿속 리스트에 그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단서나 의혹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작가는 그가 범인임을 말해주는 계산된 복선을 여럿 깔아 두었다. 다만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앞으로 돌아가 퀸이 제시한 증거들을 차분히 되짚어 보니 그제서야 왜 그가 범인일 수 밖에 없는지 납득이 갔다.
괜히 고전이 아니구나 싶다. 탄탄한 구성과 철저히 논리에 의거한 결말! 이것이 바로 엘러리 퀸 시리즈가 세월을 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