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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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청춘....이 반짝이는 두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쌍의 연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두 단어의 조합이 어딘지모르게 슬픈 분위기를 풍겨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며 책을 펼쳤다. 

 

마음먹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돌아보면 어린시절의 꿈이나 계획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고 있다. 어쨰서 그렇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아졌다고 밖에는. 철없던 어린 시절의 꿈을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찬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세상에는 안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삶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법을  깨닫기 시작했던 게...(포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야하나..) 어찌됐건 지금의 내 삶은 어린시절의 내 계획에는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마 책 속의 당돌한 소년 쓰시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어린시절 계획 속에서 자신은 훌륭한 음악가의 삶을 살고 있을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꽤 오랜시간 쓰시마는 그 계획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생이란 바다를 건너던 배가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나게 되고, 그 풍랑이 쓰시마의 꿈과 목표를 모두 망쳐버렸다. 잔잔한 바다를 아무런 고비없이 건널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다못해 무사히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풍랑만 만났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텐데...그러나 쓰시마는 이 풍랑을 불러온 이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원망하지 않는다.

  

쓰시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에 둘러싸인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일찍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쓰시마 본인도 피아노 치기를 즐겨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만큼 재능이 따라주지는 않아 피아니스트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고 할아버지의 권유로 새로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쓰시마의 생각에 따르면 바이올린처럼 가볍지도, 비올라처럼 수수하지도, 콘트라베이스처럼 둔하지도 않은 귀족적이고 스마트한 악기인 챌로를 익히며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다행히도 첼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예고입시에 실패한 쓰시마는 차선책으로 할아버지가 학장으로 있는 삼류 음악학교에 진학한다. 어릴 적부터 자의식이 남달라 어려운 책만 골라 읽을 정도로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며 살았던 쓰시마는 학교생활에 차츰 적응해나가고 나름 실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음악이란 공통분모 아래 모인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던 중 자연스레 첫사랑의 감정도 겪게되는 쓰시마. 첫눈에 반한 미나미와 교제 하며 발표회 준비와 레슨 등으로 활기차고 즐거운 생활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불행은 순식간에 그리고 한꺼번에 찾아오는 건지..쓰시마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풍랑이었다.

결국 그 일로 음악을 포기하기에 이른 쓰시마. 그의 인생에 더이상 음악은 없었다.

 

 

上 P. 353 

그 말은 격려가 되었다. 동시에 가슴 한쪽에 얼마간의 불만도 느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자신을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 '자신'이다. 자신이라는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조금도 미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확실히 미숙했다. 다다미 30조의 방에서 연습하는 내 첼로는 계속 거친 소리를 냈다.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청춘들의 이야기에서 어느 순간 상처받은 우울한 인간 내면으로 걸어들어가는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경험했다. 단지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인물의 이야기에 너무도 몰입이 되어 내 지나온 삶을 돌아켜 보고 나와 쓰시마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있었다. 나는 어땠나. 풍랑이 닥칠 때마다 겁부터 먹고 배에서 내리려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나선 버티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쓰시마가 음악을 포기했던 것처럼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커다란 꿈을 포기했었기에 이 소설이 더욱 가슴을 찔러왔다. 소중한 꿈을 실은 배에서 나는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배 위에 타고 있다. 이번만큼은 절대 꿈을 버리고 홀로 배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下 P. 315    

음악은, 인간이 인간을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다. 그곳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다가올 것이다. 최초의 음악을 만들어 낸 인간은, 여기에 없는 사람, 여기에 자신이 있다는 걸 모르는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플루트를 불고 있는 것이다. 오직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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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가쿠타 미츠요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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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별이 두려워 사랑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별이 준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받는 이들도 있다. 이 책에 실린 일곱가지 이야기는 바로 이별에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이 흔하게 느껴져 내용 역시 그다지 새로울게 없는 흔한 사랑이야기겠거니 생각했었다. 동명의 영화나 책 제목이 많은데다 사랑과 이별이란 주제 자체가 새로움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노래가사도 걸핏하면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데 소설만큼은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될텐데 싶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연작소설이라는 책 소개에 마음이 끌려버렸다. 여러 이야기들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길로 모이는 연작소설. 그 미묘한 흐름이 좋아 가끔 연작소설을 찾게 되는데 이 책 역시 연작소설이니만큼 제목의 식상함을 잊게 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 기대는 책장을 넘길 수록 선명해졌다.

 

이별의 주체가 뒤바뀌는 설정은 이 소설이 지닌 색다른 매력이었고, 독특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에 나는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충분히 식상함을 벗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책에서는 전편에서 이별을 고한 이가 마치 연작소설의 연결고리처럼 다음 편에 등장하다. 이처럼 동일한 인물이 연이어 등장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다보니 하나의 시각이 아닌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 또 느낌이 달랐다. 전작에서 쿨하게 이별을 이야기하고 떠난 남자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별을 당하는 입장에 처한다거나, 반대로 별볼일 없는 남자에게 차이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 하던 여자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남자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 참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처럼 누군가를 만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마음에 든 또다른 이유는 사랑을 지나치게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 사랑이란 감정에 취해있는 인물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잔잔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초반에는 쿨하게 이별을 말하고 돌아선 남자가 다른 여자와의 연애에서는 차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통쾌하기도 했고 약간은 고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별다른 동기도 없이 끌리고, 자신의 집열쇠를 내주는 모습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서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잊고 싶어 끊임없이 사랑하는 건 이미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어 보였다. 단지 중요한 건 곁을 지켜줄 누군가의 체온이었으니 떠나간 사람도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사랑이란 게 누군가를 탓할 수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너무 쉽게 한다고 그사람을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건, 외로워서건, 어느 쪽이던 간에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숨김없이 사랑했고 상대에게 충실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변덕스런 감정에 매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감정의 변화에 순응하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일곱가지 이별이야기는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P. 360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시작한 사랑도 있다.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사랑도 있고 너무 달라서 좋아하게 된 사랑도 있다.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시작된 사랑도,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해서 시작된 사랑도 있다. 다들 그 때 자신에게 필요한 상대와 필요한 사랑을 했다. 지키려고 발버둥 치기도 하고 결국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계는 끝난다. 필요하던 것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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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이 기적이 되는 순간 정진홍의 사람공부 3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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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사람이 기적이라는 말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때론 먼지처럼 작게 느껴지는 내가 누군가의 삶에 기적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혹은 내 눈 앞에 기적처럼 살만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기적을 만드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한 줄의 문구에 마음이 끌렸다.

 

사람공부라는 제목답게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목차에 실린 미야자키  하야오, 앤디 워홀, 이브 생 로랑, 앙드레 김, 워렌 버핏, 백건우 등의 이름을 보고 그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책을 읽어나갔다. 내가 그들이 대해 알고 알고 있던 사실은 프로필에 불과할만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임했는지, 그들이 이뤄낸 일들 뒤에 어떤 삶이 존재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 모든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 이 책은 너무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은 한두명의 깊게 사귄 친구가 아닌 그저 알고 지내는 수준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사람의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는 책 한권도 부족할텐데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당 고작 몇페이지에 압축해놓았으니 애초에 깊이있는 사람 공부를 기대한 건 내 과한 욕심이었나보다. 한사람의 자서전이 아닌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프로필에 살을 조금 붙여 해당인물의 삶을 두루뭉술하게 이야기 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역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간 기적같은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마치 희망과 긍정의 아이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자 조앤 K.롤링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정부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게 딸에게 읽어 줄 동화책이 없어 직접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는 글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에든버러의 낡고 허름한 임대아파트에서 우울증과 싸우며 완성한 해리포터 시리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스스로 기적을 만들었다. 5살 때 홍역에 걸린 토끼 이야기를 썼다니 그녀는 타고난 몽상가였나보다. 또하나 재미있었던 일화는 어린 시절 길을 걷다 뱀을 발견한 조앤이 엄마에게 달려가 뱀이 말을 걸었다고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해리포터 속 뱀의 이야기는 이런 작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만날 수 있었으면 훨씬 더 즐거운 사람공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희망과 긍정의 메세지를 전하는 사람공부. 스스로 기적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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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우먼
에일렛 월드먼 지음, 신정훈.이정윤 옮김 / 프리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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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표지속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점도 끌렸지만 표지 속 여인이 지닌 사연이 궁금해졌다. 책을 읽은 후 표지에서 느껴졌던 여인의 외로움이 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 게 되었다. 

 

직장상사인 잭을 사랑하게 된 에밀리아. 그러나 잭은 5살 아들이 있는 유부남이고 그와의 결혼은 잭의 아내인 동시에 윌리엄의 엄마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불륜임에도 사랑을 시작했던 그녀에게 잭의 아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족이 되면 자연스레 가까워 질 거라 믿었고 사랑이 해결해 줄 거라 믿는 듯 했다. 그러나 결혼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란 말처럼 에밀리아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윌리엄은 또래 아이들 답지않게 조숙하고 예민했다. 에밀리아는 부모의 이혼이 상처로 남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윌리엄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않다. 윌리엄은 에밀리아가 없으면 엄마와 아빠가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해 에밀리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윌리엄과의 씨름으로 하루하루가 힘든 일의 연속인 에밀리아에게 설상가상으로 닥친 딸 이사벨의 죽음은 그녀를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슬픔에 빠지게 만든다. 길에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인들의 모습만봐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에밀리아의 슬픔과 우울함이 책을 읽는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은 이제 더이상 그녀 곁에 없는데, 윌리엄과의 사이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잭과의 관계마저 서먹해져버린 에밀리아. 삶이 그녀에게 선물한 것은 시련과 외로움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에밀리아와 윌리엄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향해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서서히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듯 했다.

마침내 윌리엄은 친엄마의 재혼과 출산을 계기로 에밀리아에게 닫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고 소통불가능해 보이던 의붓아들과 엄마는 서로의 상처 앞에서 그렇게 회복되고 있었다.

 

이 책은 진정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우리의 일상을 보고 있는 듯해 현실적이게 다가왔고 우리가 처한 삶의 외로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사랑해서 결혼하고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다. 그러나 그 가족이란 울타리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해 작은 충돌에도 부서져버리기 쉽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그 사이에 한쪽의 아이가 있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 결혼과 이혼 만이 모든 갈등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우리 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가족의 이야기. 진정한 가족삶 속으로 파고드는 외로움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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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발걸음은 언제나 뜨겁다 - 택꼬의 205일간 리얼 아프리카 여행기
김태현 글.사진 / 더난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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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 때묻지 않은 야생을 가로질러, 걸음을 재촉하는 청춘의 모습이 스쳐간다.  

내게 아프리카란 범접할 수 없는 자연 그 자체였다. 밤이 되면 하늘을 뺴곡히 채우는 수많은 별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상상했던 내게 저자의 리얼 여행기는 다소 투박하게 느껴졌지만 그렇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는 라이온킹 만화 속에 존재하는 곳이 아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아프리카인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원시부족들의 터전이었다.

 

저자는 가까이서 보고 느낀 아프리카의 모습을 우리에게 가감없이 보여준다. 205일간의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듯 다른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그려보았다. 너무도 많은 자원을 가졌기에 오히려 가난한 나라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가슴에 남았던 것은 어쩌면 그들의 과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산골 마을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호주인 믹과 그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원주민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그들의 삶으로 들어온 호주인과 자본주의 기술로 인해 가난과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여행자의 물가대로 받은 요금을 원주민의 요금으로 계산해 값을 치르며 그 수익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사는 백인의 모습을 보며 누가 주인이고 누가 외부인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런가하면 순박한 아프리카 아이들이 보여준 그들만의 환영인사는 절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낯선 이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이곳을 찾은 이방인을 진심으로 반기고 신기해 하는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난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이 존재하지 않는 밤하늘이 이해가 가지않는 듯 놀라워하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온통 어둠만 가득한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인상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여행은 설레는 만남을 동반한다. 저자는 여행길에서 만난 또다른 여행객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진정 자유를 즐길줄 아는 아름다운 일본인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 뛰어난 작업 능력을 지닌 성인 비디오 감독과의 유쾌한 대화 등 그는 매순간 새로운 인연을 즐겁게 반기는 듯 했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조심해야 한다는 딱딱한 생각은 버리고 우연이 선사하는 반가움을 기꺼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진정 방랑하는 청춘이란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 모코로에 드러누워 노를 젓는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언제 행복하니?"

"Any time!"

"정말?"이라고 되물으면서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물론 가이드의 대답은 "Sure!"

P. 44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보며 살 수 없는 도시에서는

더 이상 춤추는 별과 같은 존재도 탄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해한 걸까.

아저씨는 내 설명에 수긍한 듯

"당연하지. 밤하늘에 별이 가득해야 아프리카지"하고 말했다.

P.108

 

책에 실린 다양한 사진 덕분에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글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멋스러움 대신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이런 솔직함이 책이라기 보다 여행지에서 하루하루 적어내려간 일기를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고 매 순간 보고 느꼈던 저자의 감정이 글에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친한 이의 여행담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투박함과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프리카라는 공간과 더없이 잘 어울린 청춘의 여행기. 이리저리 걷다보면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자 더 늦기 전에 나도 한번 방랑하는 청춘이 되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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