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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가쿠타 미츠요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별이 두려워 사랑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별이 준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받는 이들도 있다. 이 책에 실린 일곱가지 이야기는 바로 이별에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이 흔하게 느껴져 내용 역시 그다지 새로울게 없는 흔한 사랑이야기겠거니 생각했었다. 동명의 영화나 책 제목이 많은데다 사랑과 이별이란 주제 자체가 새로움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노래가사도 걸핏하면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는데 소설만큼은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될텐데 싶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연작소설이라는 책 소개에 마음이 끌려버렸다. 여러 이야기들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길로 모이는 연작소설. 그 미묘한 흐름이 좋아 가끔 연작소설을 찾게 되는데 이 책 역시 연작소설이니만큼 제목의 식상함을 잊게 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 기대는 책장을 넘길 수록 선명해졌다.
이별의 주체가 뒤바뀌는 설정은 이 소설이 지닌 색다른 매력이었고, 독특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에 나는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충분히 식상함을 벗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책에서는 전편에서 이별을 고한 이가 마치 연작소설의 연결고리처럼 다음 편에 등장하다. 이처럼 동일한 인물이 연이어 등장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다보니 하나의 시각이 아닌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 또 느낌이 달랐다. 전작에서 쿨하게 이별을 이야기하고 떠난 남자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별을 당하는 입장에 처한다거나, 반대로 별볼일 없는 남자에게 차이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 하던 여자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남자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 참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처럼 누군가를 만나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다가왔다.
이 책이 마음에 든 또다른 이유는 사랑을 지나치게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 사랑이란 감정에 취해있는 인물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잔잔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초반에는 쿨하게 이별을 말하고 돌아선 남자가 다른 여자와의 연애에서는 차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통쾌하기도 했고 약간은 고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별다른 동기도 없이 끌리고, 자신의 집열쇠를 내주는 모습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서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랑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사실을 잊고 싶어 끊임없이 사랑하는 건 이미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어 보였다. 단지 중요한 건 곁을 지켜줄 누군가의 체온이었으니 떠나간 사람도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사랑이란 게 누군가를 탓할 수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너무 쉽게 한다고 그사람을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건, 외로워서건, 어느 쪽이던 간에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숨김없이 사랑했고 상대에게 충실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변덕스런 감정에 매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감정의 변화에 순응하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일곱가지 이별이야기는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P. 360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시작한 사랑도 있다.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사랑도 있고 너무 달라서 좋아하게 된 사랑도 있다.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시작된 사랑도,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해서 시작된 사랑도 있다. 다들 그 때 자신에게 필요한 상대와 필요한 사랑을 했다. 지키려고 발버둥 치기도 하고 결국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계는 끝난다. 필요하던 것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