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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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형사콤비와 뻔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탐정이 다시 만났다.
전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통해 본인만의 독특한 유머본격추리소설이란 장르를 구축한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가감없이 펼치며 독자를 그의 추리 세계로 끌어들인다.
 
초반부터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게 흐른다. 상해 및 기물파손이라는 다소 가벼운 죄목의 범인을 검거하러 간 현장에서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이 자신이 권총을 밀수한 혐의가 발각된 것으로 오해하고 반항하다 4층 창밖으로 떨어져 어이없게 죽고만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범인과 함께 떨어진 권총이 사건 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연이어 총기사건이 발생한다. 권총이 사라진지 2주만에 해안가에서 노숙자 한명이 시신으로 발되는데 시신에 박힌 총알이 사라진 권총의 총알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연히 권총을 손에 넣은 범인이 연고가 없는 노숙자에게  시험삼아 발포를 한게 아닐까 추측한 두 형사는 남아있는 총알을 세어 본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한 대저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권총에 의한 사건으로 한명이 목숨을 잃고  한명이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밀실과 같은 구조의 저택에서 피할 곳이 없었던 범인은 범행 후 도주하다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는 두 형사가 잃어버렸던 권총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코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작위적인 현장상황이 오히려 자살을 위장한 범인의 술수라 판단한 형사콤비와 탐정은 각각 나름의 추리를 선보이며 범인을 잡고자한다. 그리고 마침내 긴장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헐랭이 형사와 4차원 탐정의 추리로 범인이 밝혀진다.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 이어 동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마디로 허당 형사콤비와 뻔뻔 탐정이 그들이다. 그러나등장인물만 같을 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책은 전작과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유머가 한층 강화되었다. 본인의 개그코드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작가는 사건과 유머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종일관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인물들은 도대체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무거운 사건현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시신을 앞에 놓고도 부검의와 티격태격하는 형사의 정신세계가 참 독특하다 혀를 차면서도 픽픽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다. 인물들간의 말장난을 지켜보다보면 내가 지금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코메디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의아함이 싫지 않다. 곳곳에서 터지는 유쾌한 웃음이 바로 히가시가와 도큐야라는 작가만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툭툭 내뱉는 엉뚱한 대사는 물론이고 시시때떄로 작가가 직접 등장해 전지적 작가시점을 능가하는 유머를 선보인다. 일반 소설이었다면 엄청나게 웃긴 유머코드는 아니었을 테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 묘하게 어울려 기대 이상의 효과가 발휘된 듯 독특한 웃음을 유발한다.

 

밀실이라고 하면 흔히들 연상하는 밖에서 잠긴 실내가 배경이 아니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대저택의 구조와 지리적 상황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는 독자 스스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보통의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과 대단하고 복잡한 트릭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말이었다는 점에서 살짝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아니면 누가 이런 '웃긴'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싶다.  저자의 개성이 듬뿍 담긴 또 한편의 재미난 추리소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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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in에덴1-미치광이화가 in에덴 1
김선도 지음 / 돌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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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화가라는 제목과 표지의 그림을 보고 고흐가 등장하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런 식의 설정은 생각하지 못했다.

고흐의 불안한 정신 세계를 악마 루시퍼가 고흐의 내면을 지배했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상상은 기발해 보이는 동시에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쉽게 말에 고흐에게 악마가 씌였다는 설정인데 고흐의 삶을 빙의현상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자체는 다소 무리가 있어보이지만 장르문학 그것도 판타지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흐가 자신의 그림을 피로 채우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고, 절대선과 절대악을 동시에 지닌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완성하기 전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림을 둘로 나누고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조선여인과 고흐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각각 절대악을 대표하는 인물과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후세를 이어나가게 된다는 개념도 흥미로웠다.

 

에덴동산을 지키려는 천사장 라파엘과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차지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탄과의 전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초반부터 헷갈릴 정도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며 몇번씩 장면이 바뀌어 나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아무래도 에덴동산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고흐의 쌍둥이 아들과 그의 후손까지 몇대에 걸져 진행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때까지는 숱한 내용의 전환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의 이야기가 어느정도까지는 매듭이 지어질 기미가 보이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야 읽는 이도 쉽게 다음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법인데 이 책의 경우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열되어 과해보인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문학일 수록 서사구조가 탄탄해야 독자들이 쉽게 몰입하고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나는대로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서술방식과 문체가 조금 산만하고 복잡하게 느껴져서 마냥 즐기며 읽을 수 만은 없는 소설이었다. 전반적으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하고 색다른 상상의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얽혀있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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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에덴 3 - 무저갱의 사자
김선도 지음 / 돌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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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과 2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저갱의 사자와 키메리안의 마을에서 역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악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인물들간의 대결이 주를 이룬다. 고흐의 후손이자 순수한 선의 영혼을 지닌 어린 민우와 지우가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위험을 헤쳐나가며 활약하는 가운데 시공을 넘나드는 본격적인 판타지가 어김없이 펼쳐진다.

 

in에덴이 여느 판타지 소설보다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유는 백두산과 조선인 등 한국형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가 근무하고 있는 백병원이 등장하는 것도 재치있는 발상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진지하고 긴장감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게는 백병원이란 설정이 그리 와닿지는 못했다. 판타지 소설에서 시시콜콜 인과관계를 따지고 구성을 파악하려 드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지만 판타지 소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해리포터와 같은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게 in에덴은 다소 과장 된 커다란 스케일이 번잡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져 아쉬움이 컸다. 또하나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는 것도 아쉬움 중의 하나였는데 많은 판타지 소설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내세워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결국 그 관심은 인물을 넘어서 이야기 자체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in에덴 역시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없었다. 물론 민우와 지우처럼 사랑스런 아이들도 있었지만 극을 이끌어갈만큼 몰입도가 생기지는 않았다. 책 표지에 써있는 글을 통해 전한 저자의 의도가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책에 등장하는 민우와 지우가 저자의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자주 등장하는 성경구절과 기도문을 보며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이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성경을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진행될때마다 등장하는 성경구절을 곱씹다보니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세지가 이런 게 아닐까 어렴풋하게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핵폭탄과  백두산 의 등장이 단순한 판타지의 차원을 넘어 현실세계와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현실적 감각을 잃지않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라 표현하고 싶다. 다만 매력적인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을 아우르는 이야기 구성이 있었더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장르 문학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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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땐 내가 미안했어
소피 퐁타넬 지음, 이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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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늦둥이다. 느즈막히 아들을 보고자 힘들게 낳았건만 떡 하니 튀어나온게 바로 나였으니 그 실망감은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늘 어린마음에도 엄마가 나와 오래오래 함께 해야할텐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내색하지 못한 채 늘 투닥투닥 퉁명스런 말투로 엄마를 대한다. 아무리 편한 친구라도 엄마에게 대하듯 하면 아마 내 곁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도 집에서만 나오는 이 나쁜 말투는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그렇지않아도 애교없고 무뚝뚝한 성격이라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지금껏 엄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자식이란 존재는 왜이리 못나고 못되먹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나는 딸이니까 이래도 되는거야 하는 얼토당토 않은 합리화를 하면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꽝꽝 받았던 적도 있다. 자식이란 명함이 무슨 유세라도 되는 것 마냥 가끔은 모진 말을 내뱉고 며칠씩 말없이 방에 틀어박히기도 한다. 그야말로 불효녀가 따로 없다. 후회하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봐도 그때 뿐, 밖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엄마가 되어야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평생을 다 해도 은혜를 갚지 못할 텐데...매일 감사인사는 못드릴 망정 괜한 짜증을 툭툭 내뱉는 나를 보면 내가 봐도 정나미가 떨어질때가 있다. 그야말로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너같은 딸만 낳아보라는 엄마의 푸념에 무슨 그런 무서운 얘길 하냐며 펄쩍 뛰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을 따름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에 사로잡히는 걸 보면 자기파악 하나는 끝내주는데 알면서도 못고치는 이 말투가 참 원망스럽다. 요즘 TV 에서 안과 밖이 다른 가족이란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다. '밖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에서도 보여주세요 라고 말하는 이 광고를 볼때마다 내 얘긴가 싶어 숨을 곳을 찾고 싶은 심정이라 엄마, 끄땐 미안했어라는 제목의 책을 받아들고서도 쉽게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나는 또 얼마나 내 행동에 후회를 할까 그리고선 돌아서서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일기처럼 느껴졌다. 어느날 갑자기 너무도 약해져 자신의 도움없이는 생활조차 불가능해진 엄마를 돌보며 담담하게 써내려간 딸의 일기. 세상 모든 자식들이 범하는 실수를 저자 역시 겪었던 모양이다. 엄마란 존재는 늘 강하고 자식을 위해 해줄 것이 많다고 여기는 바보같은 생각을 벗어버려야 했던 그녀는 엄마를 돌보며 성숙해지고 있었다. 코스모폴리탄, 엘르 등 대표적인 잡지사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한 작가는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답게 바쁘고 화려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소피의 눈에 들어온 엄마의 약해진 모습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제 자신이 엄마를 돌보고 책임져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소피의 엄마는 딸에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우아하고 준비된 모습만 보여주길 원하는 그녀는 스스로 엄마이기 전에 여성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벽너머로 들리는 이웃집 커플의 다툼소리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야. 가슴 졸이게 하는 서스펜스는 그리 흔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립스틱은 디올을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유쾌하고 멋진 여성인 것이다. 그런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져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되자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내려놓고 엄마를 돌보고자 결심한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지만 벗은 몸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엄마를 다독이며 저자는 말한다.

 

P.104

"늙는 것이 싫어....늙는 것이 정말 싫어..."

특별히 큰 병은 없었지만 엄마는 늙어가는 것을 정말로 속상해했다. 엄마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도 나랑 오빠가 어렸을 때 목용기켜줬잖아.안 그래?"

침묵이 흘렀따.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엄마를 씻겨주었다. 잠시 후 엄마의 대답이 들렸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고맙구나..."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엄마 자신이었다. 언제나 자식을 돌보고 지켜주던 입장에서 어느덧 돌봄을 받아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자체가 빋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소피의 엄마 역시 아직은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많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침대에서 떨어진 것만으로 뼈가 부러질 만큼 신체가 약해져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헸다. 스스로의 몸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소피의 엄마는 휠체어를 타야한다는 사실에 난감해하고,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없어 당황한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소피는 엄마에게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고 대비해야했다. 차마 하기 힘든 말을 애써 가볍게 건네는 그녀를 보고 가슴에 쿵하고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어디로 가고 싶어?"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던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서 돌아오던 길, 나중에 할아버지 옆에 함께 하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너무도 화가 났었다. 믿고 싶지 않고 생각하기 조차 싫은 일을 태연하게 입에 올리는 엄마를 보니, 내가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일이 언젠가 닥칠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그런 나에 비해 소피는 현명하고 담담하고 엄마에게 다가올 날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코 소피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나보다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단지 소피는 자신이 받은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있었고, 나는 아직 이었다. 그 차이가 내게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우리 엄마에게 만큼은 누구나, 언젠가,나중이란 단서도 달고 싶지 않았다. 불사의 몸을 만들어주는 약이 정말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바람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지금 이순간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작은 일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너무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피의 이야기를 읽고 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책 속의 소피가 무던하게 엄마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소피는 사랑하는 엄마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최선을 다해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 노력했다. 딸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위해 저자는 비로소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다. 늘 당연한 듯 받기만을 바라는 딸의 모습을 버리고, 누군가의 책임을 바라는 대신 책임지기로 결심한 소피의 이야기. 엄마는 언제까지나 철의 여인일거라 믿고 싶어하는 나처럼 못난 딸들이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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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샘물의 시크릿 뷰티
정샘물 지음 / 비타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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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들 여자의 화장은 분장을 넘어 변장에 가깝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화장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여성들의 맨 얼굴을 비하하는 농담일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자신의 단점을 완벽히 커버하는 뛰어난 화장솜씨을 지녔다는 해석도 된다. 내 경우 워낙에 비루한 화장실력의 소유자라 화장하는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저 하는게 안한 것보단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의무감에 바탕 화장만 겨우 하는터라 이리저리 색상을 바꿔가며 그야말로 재미있게 화장을 하는 여성들을 보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한때는 화장에 꽂혀 좋다하는 화장품을 사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던 적도 있긴 했다. 연예인 누가 쓴다더라~이 제품만 바르면 반짝반짝 윤 나는 피부로 만들어 준다더라~귀 얇은 나는 이런저런 말에 혹해 내게 맞는 화장품을 찾기 보다는 그저 유명한 화장품을 사면 무조건 좋은 줄 아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했던 것 같다. 내가 화장에 있어 저질렀던 또 하나의 중대한 실수는 바로 내용물보다 예쁜 패키지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소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매했던 화장품 대부분이 내 비루한 화장술에 가려 빛도 못본 채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내 서랍 속 화장품들에 얽힌 슬픈 옛날 이야기라고나 할까. 국내 투명메이크업의 달인으로 불리는 저자 역시 여성들의 이런 화장품구매욕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P.19

메이크업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中

제품을 살때 텍스처를 본다 VS 컬러나 용기 디자인을 본다

아마추어는 컬러가 화려한 것, 패키지가 예쁜 것에 자주 현혹된다. 한눈에 보기에 컬러가 예쁘면 자신의 피부 톤이나 평소 메이크업 패턴과 어울리는 지 아닌지는 까맣게 잊은 채 지갑을 열거나, 그저 화려한 포장을 입힌 특별 상품 역시 '한정판' 이라는 말에 마음에 급해 한달음에 달려가 사곤 하지는 않는가> 결국 그렇게 산 제품들으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골동품처럼 묵히다가 남에게 주거나 처분하기 일쑤다. 주변을 보면 이런 실수들은 꽤 자주 일어난다. 사람은 망강의 동물인지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프로가 되는 법☞ 메이크업 제품을 살 때 눈에 보이는 컬러만 믿고 사는 건 특히 위험한 일이다. 제형에 따라, 펼의 양이나 굵기에 따라, 빛 반사에 따라 미묘하게 달리 보이기 때문에 꼭 손으로 만져보고 해당 부위에 테스트를 한 후 구매를 결정하자. 또한 옷을 살 떄와 마찬가지로 내가 갖고 있는 데품들과 어울리는지, 평소 메이크업 패턴과 잘 매치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P.33

메이크업 제품, 나 없이 사러 가지 마라

1. 매장에 가서 손등에 제품을 이것저것 발라 본 후 바로 지우지 말고 다른 매장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뒤 손등을 체크해 본다. 제품의 색감이 그대로 남아있는지 촉촉함에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지 갈라지거나 가루가 날리지 않는지 등을 체크하자. 

 

저자의 충고를 보고 한정판 화장품을 사지 못해 애태웠던 일, 바르지도 못 할거면서 그저 진열된 색상에 혹해서 산 민트색 아이섀도우가 일년 가까이 포장 채 서랍에 잠들어 있던 일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거렸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실수가 아닐까?

 

예전에 여자연예인들은 기본 바탕화장에만 3시간을 쏟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야말로 한 듯 안한 듯한 피부표현을 위해 3시간은 기본으로 팔이 빠져라 두들긴다는 말인데...실제로 그런가는 확인된 바 없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진짜 화장다운 화장이 완성되는 구나 싶어 혀를 내둘렀었다. 아침마다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5분만~!을 외치는 내게는 그야말로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색조화장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스스로를 냉정하게 판단해 볼때 나는 색조화장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타고났기에 (어지간하면 다 어울린다는 베모브랜드의 단모 블러셔도 내게는 소주 한병을 원샷한 듯한 홍조를 선사했다면 믿을까.) 내 실력이 모자란 탓일 수도 있지만 사람마다 어울리는 화장법이 따로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화려한 색조보다는 자랑하는 한 듯 안한 듯한 자연스러운 투명메이크업에 관심이 높은 내게 투명화장의 대가라는 정샘물원장의 뷰티북은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유진's 뷰티 시크릿이 출간되자마자 기대를 잔뜩 안고 구매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여성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대표적인 뷰티북인데 이 책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뷰티북이 될 줄 알았었다. 메이크업팁이라기 보다 배우 유진의 일상과 담고 있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메이크업 비법을 전수받고 싶었던 내게는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정샘물의 시크릿뷰티 역시 내 부족한 화장실력을 한단계 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까 우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시 투명메이크업의 대가라는 수식이 괜히 붙은게 아니구나 싶다. 각 챕터마다 메이크업 초보를 위한 꼼꼼한 팁은 물론이고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랄한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화장을 함에 있어 꼭 지켜야할 기본적인 테크닉부터 시작해서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고르는 노하우까지, 게다가 이해를 돕는 상세한 사진까지 곁들여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화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같은 독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꼭 못하는 사람들이 연장 탓 한다지만 연장도 바꿔보고 연습을 해봐도 썩 나아지지 않았던게 내 화장이다. 색조화장을 하면 엄마 화장품을 훔쳐바른 어린아이 처럼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다 보니 색조화장이라면 지례 포기부터 하고 기초화장에 선크림과 파우더 마스카라 정도로 만족하곤 했었다. 그러나 정샘물 원장 역시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비법을 터득했음을 알게 되자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기초화장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맞는 색을 찾기 위해 여러 제품을 섞어서 테스트를 해보고 보색을 활용해 어울리는 색을 찾아낸다면 나도 꿈꿔왔던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본다.

  

어떻게 하면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한 피부표현을 할 수 있을까? 바쁜 아침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화장이 쏙쏙 쓰며드는 비법은 없을까?

누구에게나 어울리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런 색조화장은 어떤게 있을까? 프로가 사용하는 메이크업 도구는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이처럼 일반 여성들이 품고 있을 화장에 관한 모든 궁금증의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이 책은 저자의 이름만큼 신뢰가 가는 책이었다.

한마디로 패키지와 내용물 모두 만족스러운 보기드문 한정판 화장품을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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