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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을 향해 쏴라 ㅣ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어설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형사콤비와 뻔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탐정이 다시 만났다.
전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통해 본인만의 독특한 유머본격추리소설이란 장르를 구축한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가감없이 펼치며 독자를 그의 추리 세계로 끌어들인다.
초반부터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게 흐른다. 상해 및 기물파손이라는 다소 가벼운 죄목의 범인을 검거하러 간 현장에서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이 자신이 권총을 밀수한 혐의가 발각된 것으로 오해하고 반항하다 4층 창밖으로 떨어져 어이없게 죽고만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범인과 함께 떨어진 권총이 사건 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연이어 총기사건이 발생한다. 권총이 사라진지 2주만에 해안가에서 노숙자 한명이 시신으로 발되는데 시신에 박힌 총알이 사라진 권총의 총알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연히 권총을 손에 넣은 범인이 연고가 없는 노숙자에게 시험삼아 발포를 한게 아닐까 추측한 두 형사는 남아있는 총알을 세어 본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한 대저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권총에 의한 사건으로 한명이 목숨을 잃고 한명이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밀실과 같은 구조의 저택에서 피할 곳이 없었던 범인은 범행 후 도주하다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는 두 형사가 잃어버렸던 권총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코트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작위적인 현장상황이 오히려 자살을 위장한 범인의 술수라 판단한 형사콤비와 탐정은 각각 나름의 추리를 선보이며 범인을 잡고자한다. 그리고 마침내 긴장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헐랭이 형사와 4차원 탐정의 추리로 범인이 밝혀진다.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 이어 동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마디로 허당 형사콤비와 뻔뻔 탐정이 그들이다. 그러나등장인물만 같을 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전작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책은 전작과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유머가 한층 강화되었다. 본인의 개그코드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작가는 사건과 유머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종일관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인물들은 도대체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무거운 사건현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시신을 앞에 놓고도 부검의와 티격태격하는 형사의 정신세계가 참 독특하다 혀를 차면서도 픽픽 새어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다. 인물들간의 말장난을 지켜보다보면 내가 지금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코메디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의아함이 싫지 않다. 곳곳에서 터지는 유쾌한 웃음이 바로 히가시가와 도큐야라는 작가만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툭툭 내뱉는 엉뚱한 대사는 물론이고 시시때떄로 작가가 직접 등장해 전지적 작가시점을 능가하는 유머를 선보인다. 일반 소설이었다면 엄청나게 웃긴 유머코드는 아니었을 테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 묘하게 어울려 기대 이상의 효과가 발휘된 듯 독특한 웃음을 유발한다.
밀실이라고 하면 흔히들 연상하는 밖에서 잠긴 실내가 배경이 아니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대저택의 구조와 지리적 상황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는 독자 스스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보통의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과 대단하고 복잡한 트릭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말이었다는 점에서 살짝 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아니면 누가 이런 '웃긴'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싶다. 저자의 개성이 듬뿍 담긴 또 한편의 재미난 추리소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