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의 맹자 읽기
이우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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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배척당하기 쉬운 세상이다. 적당히 상황에 맞춰 옳지 못한 일에도 수긍해가며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오직 정도만을 고집하며 검은 물이 들지 않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는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당시 봉건  지주경제가 발전해 감에 따라 많은 농민들이 토지에서 추방되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맹자는 백성에게 먹고 살 방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맹자가 고위층의 눈에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이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굳은 심지로 옳은 일에는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던 맹자. 그런 맹자의 사상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전을 방불케하는 두께의 책을 매일 조금씩 읽어나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엄청난 분량에 놀랐으나 860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에는 무엇하나 버릴 게 없는 이야기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맹자읽기라고 해서 고리타분하다거나 딱딱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탈무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이는 저자의 쉽고 상세한 설명 덕분이었다.
 
혹자는 맹자의 사상이 지나치게 곧아 현실적이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 어떤 것보다 인의를 중시하며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임을 늘 강조했던 맹자의 사상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외면 받고 비웃은 당하기 십상인 세상을 살며 맹자같은 이상주의자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 선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맹자의 말을 믿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맹자는 복지를 중요시하는 왕도정치를 역설했고 나는 오히려 맹자의 답답하리만치 올곧은 사상이 좋았다. 조금 현실적이지 못하면 어떠랴.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맹자같은 사상가도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왕 앞에서도 할 말은 하며, 인의를 무엇보다 중시했던 맹자의 가르침은 오늘날 자신의 이익 앞에서만 목소리를 내는 현대인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리라 생각한다.
 
 
맹자가 말했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윗사람에게서 신임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벗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 신임을 얻지 못한다.
벗으로부터 믿음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쁘게 하지 못하면 벗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한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자기 자신을 돌이켜볼 때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나 자신을 성실하게 하는 데는 방법이 있으나, 선에 밝지 못하면 나 자신을 성실하게 할 수 없다.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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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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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밤과 한 권의 책 만큼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나는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는 밤이 되면 마침내 온전한 내 시간이 온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나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는 날이면 더욱 그러하다. 환한 대낮을 놔두고 왜 굳이 밤에 책을 읽어야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밤이 되면 활자가 눈에 쏙쏙 들어와 글도 잘 써지고 책도 잘 읽혀지는 것을 난들 어쩌겠는가.

잠자리에 들기 전 책 한권을 골라들고 침대로 들어가는 순간의 들뜨는 기분이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책 읽는 내 옆에는 그르릉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고양이도 있으니 이쯤되면 부러울게 없는 행복한 밤이구나 싶다.

 

첫장을 펼쳐드는 순간 저자의 책에 대한 고백이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책을 향한 허기와 갈증은 채울 도리가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며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가 터져라 담아댄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은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 중 꼭 읽고 싶은 책들을 선별해 주문하는데 그렇게 주문한 책을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거르고 걸렀는데도 읽고 싶은 책은 왜 그리 많은지..할 수 없이 책에 쏟은 지출을 만회하느라 갖고 싶었던 옷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구매하는 것이 옷을 사는 것 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이정도면 중증은 아니더라도 책 중독의 초기 증상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저자는 나보다 훨씬 심한 책 중독자였다. 그래서 더 그의 이야기에 끌렸다. '밤은 거대한 책이다' 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있는 책 세계와 코드가 맞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총 77권의 책이 담긴 이 한 권의 작은 서재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득 담고 있다. 마치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이야기 창고처럼 문학 예술 인문 할 것 없이 장르를 넘나들며 기꺼이 한밤의 독서를 즐기게 만든다. 영화평론가이자 라디오진행자인 작가의 부드럽게 읊조리는 듯한 글을 읽고 있자니 매일 밤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건네는 라디오프로의 청취자가 된 기분이었다.  루시드폴의 가사가 적힌 페이지를 읽은 밤에는 컴퓨터를 켜 그의 음악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두사람이 해변가에서 춤을 추는 대목에서는 아직 보지 못한 옛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편독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저자의 다양한 독서 취향에 놀라는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새해에는 편독하는 습관을 고쳐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재미 위주의 책으로 손이 가는 나와 달리 흥미와 지식의 범위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구나 싶다.

 

틀에 박힌 독서를 하는 사람들 혹은 마음이 아닌 눈으로 책을 쫓아가기 바쁜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처럼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씩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밤은 말합니다.

한낮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우리가 우리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밤입니다.

낮에는 수다스럽던 당신도 밤에는 기꺼이 듣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는 밤의 거울에 문득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여는 당신 내면의 또다른 목소리도 있겠지요.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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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양이 씨 - 세다리스의 뻔뻔한 동물우화집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조동섭 옮김, 이언 포크너 그림 / 학고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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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약점을 날것으로 풍자하는 새로운 동물우화!

  

 

세다리스의 뻔뻔한 동물우화집이란 머릿말답게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동물들의 행동을 비웃거나 꾸짖을 수는 없다. 그동물들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현실 속 우리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편견과 위선으로 타인을 대하기도 한다. 양심불량에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오만을 발견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헛헛한 웃음이 나는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면 치부를 들켜버린 인간의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독특하다. 그리고 신랄하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현실을 풍자하고 꼬집는 작가의 능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애완동물로 뱀을 키우는 쥐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예상된 결말이었음에도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집 고양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고 있는 내 모습이 쥐에게 겹쳐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뱀을 기르는 쥐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로서는 그 대상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은 쥐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처럼 사랑하는 뱀을 위해 다른 동물들의 새끼를 유인해 뱀의 먹이로 제공하는 모습에서는 자신의 아이만을 최고라 생각하고 아이를 위해서는 잘못된 행동도 서슴치않으며 그릇된 방식의 사랑을 쏟는 이기적인 모정의 단면을 보는 듯해 섬?했다. 누구나 자기자식은 한없이 사랑스럽고 예뻐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엄마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리만치 맹목적인 사랑을 쏟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식에 대한 애정에 눈이 멀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저자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결말을 통해 맹목적인 모정으로 결국에는 자신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어버리고만 어머니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가하면 마치 스릴러 소설을 방불케하는 경계심많은 토끼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지키는 굴 앞을 지키며 찾아오는 동물들을 몽둥이로 내리쳐 죽이는 토끼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정치인의 모습이기도 했고 이유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패스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토끼는 담장없이 문만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웃는 뱀을 죽인 후 웃음 금지 표지판을 달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개구리를 죽인 후에는 악담 금지 표지판을 추가한다. 그밖에도 찾아오는 동물마다 목숨을 잃고 난 자리에는 모욕 금지, 멍청한 질문 금지 등의 표지판이 세워진다.

 

이쯤되면 우화라기 보다 다큐에 가깝다. 어느 누가 이런 이솝우화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뻔뻔하게 불륜을 저지르고서도 오히려 당당하기만한 개의 이야기는 한편의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오만한데다 사악하기까지 한 이 동물들이 저마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이책은 어쩌면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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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이것 -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60편의 짧은 이야기
존 그레고리 외 엮음, 홍승원 옮김 / 동네스케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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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사람은 과연 몇명이나 될까?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책은 큰 의미가 있었다. 책 속에는 60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각기 다른 이들이 가슴에 품은 진솔한 추억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자 ' 책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전하는 행복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권의 책과의 만남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CBS의 라디오프로그램인 <내가 믿는 이것>은 60년 넘게 이어져오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선사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의미있었던 일들을 사연의 당사자가 직접 라디오에 출연해 들려주는 이 프로그램은 오랜시간동안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그 사연들을 엮은 에세이집인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밝다. 그 밝은 기운이 전해지는 듯해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된다. 잠자리에 들기전 침대에 앉아서 이 책을 읽다가 불현듯 내 인생의 에세이를 4페이지로 담아낸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궁금해졌다.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기억과 뜻깊은 추억이 있는 삶이라면 충분히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우체국을 알려 주시겠어요?

길을 건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당황하거나 심지어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이를 야박하다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펠리페 모랄레스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어느날 길을 걷다 한 시각장애인이 그에게 말을 걸자 쳐다보지도 않고 시각 장애인의 손 위에 동전 몇개를 올려줬는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전 단지 우체국에 가고 싶은 것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어린시절 받았던 차별은 까맣게 잊은 채 어느새 똑같은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겸손이란 신념을 되찾은 그는 언제나 눈과 마음을 열고 살아야한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펠리페가 겪었던 일처럼 나 역시 편견으로 사람을 대했던 적은 없었나 돌아보며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포함된다.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파티를 열어달라고 조르자 그녀의 엄마는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해야만 파티를 허락하겠노라 말한다. 그녀는 50명가량 되는 친구들에게 모두 초대장을 전한 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머린에게도 마지막으로 초대장을 건넨다. 그 순간 쑥스럽게 미소짓던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는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엄마가 왜 모든 아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셨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후 딸 소피를 키우며 모두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문과도 같은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이 신념은 검사라는 직업에 깊은 영향을 끼친 듯 하다.

P.207

검사가 언제나 상기해야 할 것은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포드를 훔치든 캐딜락을 훔치든 같은벌을 받아야 한다.매춘부를 강간하는 것과교외에 사는 주부를강간하는 것은 같은 관심을받아야한다. 마약 중개인을 살해하는 것 역시 촉망받는 유명인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파티에 초대되어 행복해 했던 머린의 생생한 기억은 내가 신념을 실천하기 어려울 때도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해준다.

이것은 내가 믿는 것이며 오늘날까지 나를 이끌어준 것이다 : 모두가 포함된다

 

책 속에 담긴 짤막한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교훈을 전하며 가슴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이들이 겪었던 일들은 어쩌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들은 평생의 신념을 발견했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삶에 있어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는지 그 의미를 분명하게 꺠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그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안의 신념을 깨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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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권력의 역사 - 인간 문명 그리고 시간의 문화사
외르크 뤼프케 지음, 김용현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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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까지 지나온 수많은 사건을 거쳐 비로소 시작점에 도달하게 된다. 시간과 달력이 지닌 의미 역시 그러했다. 우리가 숨쉬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시간과 달력. 일상의 한 부분인 시간과 달력이란 존재는 마치 공기처럼 익숙하고 편안해 별다른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을 보자 문득 하루에도 몇번씩 시간을 확인하고, 매일매일을 달력 속에 갇힌 마냥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또 왜 이런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다. 

 

달력에 관한 뒷 이야기를 통해 그간 미쳐 알지 못했던 달력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자 그저 숫자에 불과해보였던 달력이 어떤 의미에서는 힘의 표현이자 권력의 수단이란 사실에 새삼놀라웠다. 과거에는 권력을 쥔 자가 바뀌면 달력도 바뀌었다. 달력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거쳐야했던 변화의 과정 속에는 힘 있는 자들의 권력이 자리했던 것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듯 앞다투어 축제일을 바꾸고 공휴일을 공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달력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 역시 완벽하게 공평한 달력은 아니었다. 지금껏 자연에 근거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달력에 맞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달력안에 생각보다 훨씬 복잡미묘한 권력욕이 개입되어있었던 것이다.

달력의 변화에 있어 정치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지만 종교나 사회적인 부분 역시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역사를 통털어 달력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던 동시에 사회적 도구이기도 했다. 과거의 통치자들은 달력으로 권력을 통제하고자 했고, 자신의 통치권 강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시간과 달력을 앞세웠다.

마치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듯, 시대의 권력자들은 달력을 절대권력의 상징처럼 여겼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만만히 볼 책이 아니다. 호기심으로 집어들기엔 다소 어려운 내용이라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 할 각오를 한 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대충 흘려 읽다가는 이해는 커녕 페이지조차 제대로 넘기기 힘들테니 말이다. 나 역시 소설을 읽을 때처럼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며칠에 걸쳐서야 겨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사실 나름 온 신경을 집중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평을 쓰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할 정도로 어려운 책이었다.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님은 분명하나 여유를 갖고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면에서 몰랐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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