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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까만 밤과 한 권의 책 만큼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나는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는 밤이 되면 마침내 온전한 내 시간이 온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나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는 날이면 더욱 그러하다. 환한 대낮을 놔두고 왜 굳이 밤에 책을 읽어야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밤이 되면 활자가 눈에 쏙쏙 들어와 글도 잘 써지고 책도 잘 읽혀지는 것을 난들 어쩌겠는가.
잠자리에 들기 전 책 한권을 골라들고 침대로 들어가는 순간의 들뜨는 기분이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책 읽는 내 옆에는 그르릉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고양이도 있으니 이쯤되면 부러울게 없는 행복한 밤이구나 싶다.
첫장을 펼쳐드는 순간 저자의 책에 대한 고백이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책을 향한 허기와 갈증은 채울 도리가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며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가 터져라 담아댄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은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 중 꼭 읽고 싶은 책들을 선별해 주문하는데 그렇게 주문한 책을 기다리는 순간의 설렘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거르고 걸렀는데도 읽고 싶은 책은 왜 그리 많은지..할 수 없이 책에 쏟은 지출을 만회하느라 갖고 싶었던 옷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구매하는 것이 옷을 사는 것 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이정도면 중증은 아니더라도 책 중독의 초기 증상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저자는 나보다 훨씬 심한 책 중독자였다. 그래서 더 그의 이야기에 끌렸다. '밤은 거대한 책이다' 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있는 책 세계와 코드가 맞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총 77권의 책이 담긴 이 한 권의 작은 서재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득 담고 있다. 마치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이야기 창고처럼 문학 예술 인문 할 것 없이 장르를 넘나들며 기꺼이 한밤의 독서를 즐기게 만든다. 영화평론가이자 라디오진행자인 작가의 부드럽게 읊조리는 듯한 글을 읽고 있자니 매일 밤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건네는 라디오프로의 청취자가 된 기분이었다. 루시드폴의 가사가 적힌 페이지를 읽은 밤에는 컴퓨터를 켜 그의 음악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두사람이 해변가에서 춤을 추는 대목에서는 아직 보지 못한 옛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편독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저자의 다양한 독서 취향에 놀라는 동시에 부러움을 느꼈다. 새해에는 편독하는 습관을 고쳐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재미 위주의 책으로 손이 가는 나와 달리 흥미와 지식의 범위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구나 싶다.
틀에 박힌 독서를 하는 사람들 혹은 마음이 아닌 눈으로 책을 쫓아가기 바쁜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처럼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씩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밤은 말합니다.
한낮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우리가 우리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밤입니다.
낮에는 수다스럽던 당신도 밤에는 기꺼이 듣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는 밤의 거울에 문득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여는 당신 내면의 또다른 목소리도 있겠지요.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