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말 단단하다. 너무 날을 세우고 내게 덤빈다. 유독 내게만 그런거 같으니 내가 매우 심약한 인간인걸 세상도 눈치 채고 더 업신여기는가보다.
난 서러운 감정이 격해지고 뭔가에 노여움을 느끼면 심장부터 방망이질을 한다. 맥박이 온 몸을 마구 흔들어 목소리를 떨리게 만들어 상대방에게도 나의 고요가 깨졌음을 눈치채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이런 현상엔 반드시 눈물이 선행되며 이런 망측한 꼴을 불러 내기까지 10초 이상의 시간은 불필요하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일상은 종종 나의 이런 꼴사나운 상태를 불러내니 죽을 맛이다.
며칠 전 부동산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난 전세를 살고 있는데, 매물로 나와 있던 우리집이 팔렸으니 집에 특별한 문제가 있으면 말을 해달란다. 그래서 난 화장실을 수리한 적이 있었고, 수리 당시 현집주인과 통화를 했으며 수리비용의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집에 살기 전에도 화장실 수리비용을 집주인이 처리해 준 적이 있었기에 난 당연히 집주인이 부담하는 걸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 중개인 왈 그 정도는 살고 있는 사람이 고쳐서 써야지 뭐 그런거까지 해달라고 하냐는 거다. 이 시점에서 김이 쏴악 올랐으니...
부동산의 그녀는 '그정도의 수리는 세입자가 부담하는게 관례다'라는 정보외에 그런 사소한것 까지 요구하냐는 비난과 날 몰염치한 인간으로 몰아대는 높은 언성을 섞어 전달했던 것이다. 난 단지 내 과거 경험에 비추어 수리 당시 잽싸게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했으며 영수증도 고이 간직했건만 내가 그런 추긍을 받는 것이 마땅한가 말이다. 만약 수리비용을 세입자가 처리하는게 관례였다면, (내 입장에서 생소하기만 한)관례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 마땅한게 아닌가. 날 비난할 게 아니라 말이다.
난 결국 우스운 꼬라석니를 그녀에게 들켜버리고 말았고 대화를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직접 부동산으로 내려가서 대면하여 서로의 입장을 풀어 놔서 어찌어찌 그냥 얼버무려졌다. 어떻게 결론이 났는가 혹시 궁금하신가? 수리영수증은 꼬깃꼬깃 접혀서 내 뒷호주머니 속에 쑤셔 박혀 있었다.
만약 부동산의 그녀가 상식이란게 있다거나 그도 아니면 상술이라도 있었다면 나한테 그런 식으로 대해선 안된다고 본다. 그녀의 입장에서 내가 그녀와 당장에 확실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매수자도 매도자도 아니기에 나한테 친철한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현시점의 고객인 매도자의 입장을 두둔한걸지도, 정말 그게 관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입자인 난 그저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떠넘겨지는 보따리같은 존재일테니까. 하지만 난 그녀가 관리하는 상권에 있는 잠정적인 고객이다. 그녀는 나로 인해 파생될 소문의 파급효과에 대해선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게다. 비록 난 아줌마들의 소문 사정권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난 금년 12월경에 이사예정이 있다. 전세 기간 만료전이다. 메롱. 난 그녀를 12월경에 본때나게 거부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 바로 옆 부동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