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민낯 - 잡동사니로 보는 유쾌한 사물들의 인류학
김지룡.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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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선 우리가 별 의미없이 대했던 사물들의 경력이 소개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이면을 갖고 있었던 후추. 인생역전을 꿈꿨던 콜럼버스의 살인 행각이었다.

미국은 콜럼버스의 이런 짐승같은 행적을 알면서도 영웅으로 추앙한단 말인가.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는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으려다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까지만 알고 있어야만 했던 걸까.

남들은 다 아는 얘기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역사의 배후었다.

 

가축은 10월에 도살되어 다음해 까지 저장해서 먹었기에 아무리 소금에 절여도 금세 노린내가 나고 부패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참고 먹기 위해서는 냄새와 맛을 위장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래서 유럽인들에겐 향신료란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서민들 대부분은 허브와 함께 고기를 먹었고 귀족들은 그보다 맛이 좋은 후추를 먹었다. 후추의 원산지는 아랍의 여러 지방과 인도였고, 귀족들은  비잔틴 제국을 통해 후추를 수입해 왔다. 후추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공급이 끊겨 가격이 올라 후추 한 주먹에 노예10명의 가격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후추는 전쟁의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을 포함한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의 중심에는 후추를 포함한 향신료가 있었다. 후추는 음심을 먹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지만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했기에 후추의 공급이 끊기는 것은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된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력은 만만하지 않았고 각국은 이슬람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후추를 사 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항해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아직 원거리 항해는 쉽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항해사 바스코가 이끄는 포르투칼 선단이 1498년 인도의 고아에 입항하는데 성공했고 향신료를 가득 싣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유럽인들은 이슬람의 횡포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가격으로 후추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칼이 독점하게 되고 전 유럽의 돈은 리스본으로 몰려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 출신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 항로를 찾겠다는 계획으로 협력을 요청하러 다녔지만, 허술한 계획과 도를 넘는 요구에 번번히 거절당하던 중,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3척의 함선과 120명(전부 죄수)의 선원을 지원 받아 인도로 향해 떠난다. 인도의 항로를 찾아 인생 역전을 꾀하고자. 하지만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니었고,대신 그곳 원주민들이 갖고 있던 금을 빼앗아 돌아 온다. 2차 3차 4차에 걸쳐 원주민 강간과 강탈 살육의 원정을 반복했다. 금을 찾아 내라는  콜럼버스의 요구에 더이상 찾을 방법이 없었던 원주민들의 손목을 죄다 잘라 버리고 과다 출혈로 죽어가게 했다. 3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던 아이티 섬은 2년만에 500명 밖에 남지 않은 땅이 되었다. 학살 당하고 노예로 팔려 가다보니 졸지에 무인도가 되어 버린 판이었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 와 금을 찾게 했다. (후추)편

 

엄청난 비극의 역사가 후추와 콜럼버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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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자 2015-05-2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나마 사실를 알게에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