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시절 삼 사십대를 살고 있는 이들은 주변을 섭렵한 깊이를 가진 어른들이라고 짐작했었다. 어른들은 다양한 문제들 앞에 놀랄만한 해결 능력을 갖고 있었으며 별 힘들이지 않고 상황을 풀어 나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겁나는 건 없어 보였다. 짓눌렸으나 방통한 재주를 가진 연령.나로서는 한참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세월의 시점이라 생각했었다. 

헌데 내 나이 마흔 하나. 올려 보던 그 시간을 지나고 있으나 정작 나는 어렸을 때와 별 차이 없이 모든 문제들이  여전히 생소하고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겁없이 결단할 수 있는 배짱도, 긴장하지 않을 산전수전 능란한 경험도 없었고,문제들 앞에 부화뇌동 않을 단단한 철학을 소유하지도 못했다.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 불확실한 현실 앞에 허둥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세상 이치를 이해하는 해박함따윈 나이와 함께 딸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르는 그냥 심심한 나이였다.  하지만 우리 큰아이 일기장에서 난 보았다. 우리 아이는 날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집 대통령 엄마. 날 절대권력자라 판단한 것 같다. 내가 어릴적 나의 엄마에게 느꼈던 외경과 불합리를 내 아이도 내게 느끼고 있나 보다.

새벽녘에 들리던 마른 기침 속에 연탄 가는 소리. 찬바람만 불면 쩍쩍 터지던 엄마의 손끝. 부엌 부뚜막에 엎드려 새우깡을 만들어 튀기는 재주를 뽐내시던 엄마의 등판, 소란없이 이사짐을 싸고 풀던 엄마. 나는 이제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지만 나의 엄마처럼 난 듬직하지도 피곤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가장 빛나는 나이. 지금. 사십대. 언제나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대가 내게 가장 반짝이는 나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어디 일상이 항상 입이 찢어지게 행복한 날의 연속이겠는가. 사고 없이,무탈한 일상이 행복의 다른 이름이란 걸,그 엄청난 의미를 간과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