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안에 귀국이 결정되었다. 첫 해에는 힘들었지만,두번째 해에는 어느정도 적응이란 걸 했는지 견딜만 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해도 처음처럼 무조건 당황하지 않게 되었고,소통 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았다. 언어에대한 자신감은 없었지만,부담감을 놓아버리니 살만했다. 살만하니까 귀국. 또 다시 한국생활의 적응기간을 지나야할 터. 이곳에서의 시간이 삼 개월여 남았다. 넌덜머리나던 곳이었지만 떠난다고 생각하니 탁 트인 스카인 라인이나 야생의 고목들이 남달라 보인다. 그리울 것 같다.
그날이 마냥 그날이었던 미국에서의 생활에 내게 변화란, 주변의 지인들을 만나는 것 뿐이었다. 주변이라고는 하나 2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다. 그래도 가끔 만나 서너 시간씩 수다를 나누다보면 며칠간은 가볍게 지낸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전혀 이런 만남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내게 그들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도 날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ㄱ 엄마와는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낀다. 난 많이 의지가 되고 그녀를 만나면 즐겁다. 자신의 허물을 옆집 여자 뒷담화하듯,남의 일인듯 깔깔대는 모습이 첨엔 생소하고 당황스러웠다. 모두 남편들이 회사 동료라서 조심스러운 만남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점점 그것이 그녀의 털털한 성격에서 나오는 담백함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녀가 내게 꾸준히 전화하고 안부를 물어 주면서 그녀는 내 생활에 스며들었다. 집에서 꼼짝하기 싫어하는 내겐 우리집을, 지나가다 들르는 이가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라는 걸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그녀로 인해 이상한 긴장감을 느낀다.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누가 써준 대사를 읽고 있는 것같은. 내가 짐작했던 그녀의 기준보다 냉정한 판단을 하는 그녀를 볼 때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늘해진다. 그녀의 느닷없는 칼이 언제 또 날 무안하게 할지 모르니.
그래도 여전히 그녀와 나의 단단한 인연엔 변함이 없다. 그 넓고 넓은 미국,어느 헌책방 모퉁이에서 그녀와 부딪힌 순간. 그 장면이 그냥 스치듯 잊혀지지 않고 특별한 인연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신기해 한 적이 있었다. 귀국해서 이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지만,회사 동료 가족이라는 연보다는 막역한 친구로 마지막까지 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