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너무일나 무료하야 벗어나고 싶어 안달 하다가도,막상 아줌마들이 나를 불러내기라도하면 귀찮기부터 하니..참으로 내 맘 나도 잘모르겠다. 집에 한번 박혀 있으면 그것도 관성이 붙는지 주중에 한번도 바깥 걸음을 안하기도 하는 나. 분명 자폐 증후가 있나보다.

간만에 식사 초대를 했는데,3명 중 1명이 약속 시간 막바지에 전화를 했다. 못온다는 전화. 전날부터 머릿 속으로 식사 테이블을 몇 번 차려봤지? 뜨거울 때 음식을 바로 바로 서빙하려고 요리 스케줄을 얼마나 주물럭거렸지? - 난 음식을 뜨거울 때 서빙해야한다는 것에 거의 강박적이다 - 그 전화 한 마디. 무릎에서 기운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듯한 서늘한 언짢음. 이런 기분을 종전에도 한 번 경험하게 만들었던 그 1인이 또 내게 연타를 날렸으니, 나란 존재가 그 1인에겐 불필요한 존재구나라는 비약에서 어찌 자유로울 수 있으랴.... 하지만 곰곰히 되뇌어보니, 내 초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기억이 번뜩 나면서 잠시 위안.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을 주섬주섬 마무리해야할 때가 온 것 같은데,이곳에 오기전 뒤숭숭하게 몇 개월 산 것처럼 또 붕뜬 기분으로 몇개월을 지내겠지. 난 일박 이일 여행을 가더라도 내가 싸놓은 짐은 무지하게 크다. 하지만 여행가서 풀어놓은 짐 속엔 내가 이걸 왜 들고왔다 싶은 것들이 많다. 그리고 정작 필요한 것은 없는. 그래서 걱정이다. 여길 떠나면서 내가 또 빠뜨리고 가는 것들이 부지기수일 텐데.

...

우리집 초대에 왔던 이들 중에 하나가 내 책장에서 책 한권을 들고 갔다. 빌려달라고.  순간 찌리릿. 그 책은 내가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주려고 여분으로 구입해 놓은 책이었다. 책선물은 주인을 잘못 만나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내가 선물한 책에 냄비자국을 새기고, 방바닥에 뒹굴렸던 끔찍한 책주인을 목격했었기에 책선물은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1년 반 동안 그 책은 내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었다. 내가  몇 년의 텀을 주고 수 차례 읽고 또 읽으며 흐믓해 했던 그 책이 홀대 받는 꼴  '절대'  '다시는'  눈뜨고 못본다는...일념.  사실 그녀가 그 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옆에 있던 이가 그 책을 거론하면서 그녀가 잡게 되었지만, 어쩌면 그 책이 그녀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책을 준다고는 그녀에게 아직 말 안했지만, 그 책은 이미 그녀의 것이다.

오랜만에 글쓰기를 하려니 생전 안아프던 머리가 아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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