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때는 끝간데 없이 밀착된 느낌이다가,돌아서면 휭하고 씁쓸함. 그 사건 이후. 벌써 꽤 되었다. 시간으로도 물타기가 안되는 이 탁한 느낌은 뭘까.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큰아이의 여름캠프도 바로 시작되었다. ㅎ엄마의 큰아이가 내 아이와 같이 캠프를 다니게 되면서 매일 아침 저녁 ㅎ엄마와 만나지게 되었다. 잠깐의 짜투리 시간이라도 매일 얼굴을 보며 일상을 나누다 보니,지금까지 미국에서의 생활이 참 적막했었구나.자연스레 알 수 있었고, 아 그래서 교포들이 교회를 통해 소통을 하는거구나.하고 깨달을 정도로 ㅎ엄마와의 시간이 내겐 생활의 큰 변화였고 생기였다.

가끔 ㅎ엄마가 늦거나 하면 기다려서 꼭 얼굴을 보고 가곤 했었는데,지난 주 목요일은 9시가 지나도 그녀은 오지 않았다. 궁금해서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계속 캠프장소에서 기다리던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ㅎ엄마가 접촉사고를 냈으니 운전 조심하라는 당부전화였다.ㅎ엄마가 사고를 내고 그녀의 남편에게 연락을 한 거였고,남편들이 같은 회사에 근무하므로 사고 소식을 남편이 알았던 것이다. 너무나 걱정이 되었지만,사고 처리 문제로 정신 없을 것 같아 2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했는데 그녀는 역시 받지 않았다. 사고가 크게 난 걸까,걱정이 되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편도 사건 경위를 아직 알지 못했다. 다시 2시간 후 여러차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걱정이 점점 부풀었고,뭔가 사고가 크게 나서 외부 접촉까지 피하는 걸까,하는 상상까지 갔다. 아이들 캠프 끝날 시간이 되어서 데릴러 가면서,그녀 아이를 캠프에는 출석시켰다고 들었으니 그녀가 데릴러 올것이고, 그때 만나야겠다.하고 내심 큰 걱정을 하며 아이를 데릴러 갔는데,이미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간 후였다. 이쯤 되면 내 심정이 어떨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집에 돌아와서 그녀의 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큰아이가 받았다. 전화 뒤에서 "누구야? 아빠야?"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는 그녀에게로 넘어갔다. 그녀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맥이 빠졌다. 뭔가 슁 빠져나가는 허전함.

사고는 경미했으며,일방적인 그녀의 과실로 일어났었다고 한다. 사고는 다행히 빨리 수습되었고 그녀는 아이를 캠프에 데려다 놓고 집에 있었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ㅈ엄마와 ㅅ엄마와는 이미 오전 중에 통화를 했었던 것 같다. 좌불안석,안절부절하며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던 나는 맨 나중에야 겨우 그녀와 힘겹게 통화할 수 있었던 거였다. ㅎ엄마의 말로는 집에 들어와서 세차 등을 하느라고 바빠서 전화를 못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전화한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바빠서 전화를 해주지 못했노라고 했다. 그러나 ㅈ엄마와 ㅅ엄마는 이미  통화를 했다는 말을 들으니,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전화 한통에 밀려드는 그 섭섭함이 말도 못하게 컸고...나중엔 섭섭함에 황당함까지 더해지는 듯 했다.


말하자니 정말 별것도 아닌데,아무것도 아닌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말하고 나면 좁아터진 내 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아는데. 뭔가 선명치 못한 것이 맘에 남아 시간이 지나도 희석이 안되니. 괴롭다.  그녀의 사고 이후 내 맘에 이 그늘이 그녀 앞에서 이전처럼 활짝 갠 웃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구지 거울을 갖다 들이대지 않아도 나 스스로 안다. 그녀와의 틈은 시간이 지날 수록 견고해지는 듯 하다. 더이상 그녀 앞에서의 무장해제 시절을 더듬기보다는 그 틈을 그냥 그녀와 나의 간격이나 차이로 인정해야지 싶다.


내가 그녀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부분을 의지했었나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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