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여러 가족들 모임에서 큰아이의 피아노 재능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큰아이에겐 청음 능력이 있는데. 어떤 멜로디건 들으면 건반으로 칠 수 있다. 가요는 물론 최근엔 모짜르트의 주피터도 주 멜로디를 딩동딩동 치곤한다.

주위 엄마들이 큰아이의 청음능력을 매우 놀라워하면서, 아이가 재능이 있는데 부모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난 작년에 사준 전자키보드면 지금 혼자 연습하는데 별 무리없다고 생각하는데,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날 참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 해서 맘이 불편하다.

피아노를 사줘야 하지 않느냐. 피아노가 있어야 제대로된 소리를 들을 거 아니냐,는 말은 매번 날 압박한다. 난 나중에 정말 아이의 능력이 재능으로 검증되면 그 때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말했다가 한 번 더 무안당했다. 하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뒷받침은 전자피아노 딱 거기까지다. 피아노를 사면 좀 더 좋은 피아노,레슨을 하면 좀더 좋은 선생님,그 끝이 없는 뒷받침을 하는 부모도 있는 가 하면,나 처럼 직무유기급 부모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큰아이는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피아노도 그렇고,원본과 똑같이 그려내는 그림 솜씨, 매일 쓰는 영어,한글 일기를 보면 글쓰기 능력도 있는지 이러다 작가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고,손재주도 있어 이것 저것 뚝딱뚝딱 잘 만들어 내곤 한다. 난 내 아이의 이런면들을 그저 기특하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엄마들이 보고는 음악영재라느니,미술 영재라느나,국어영재라느니 보는 것마다 영재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첨엔 부담스럽더니,이젠 웃음이 난다.

난 아이의 청음 능력이 피아노 학원등의 제도권 교육으로 밀어 넣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믿는다. 악보의 존재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가 연주를 하려면 오로지 듣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감각은 듣기 쪽으로 쏠린 것이 아니었을까. 피아노 학원에 본인이 원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한 달만에 그만 두었다. 음악으로의 접근 방법이 자신의 것과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큰아이는 지금까지 그 흔한 학습지 한 번 해보지 않았다. 한글도 플래쉬 카드 한 박스와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라는 큰아이가 무지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으로 터득했다. 집에 전집 한 권 들여놓지 않았고, 세트로 사는 기 십만원짜리 유아 놀잇감 책 세트등등도 구입한 적이 없다. 모두 한권 한권 내가 선택한 낱권 책들뿐이니 집에 있는 책도 100권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남들이 다 한다는 것 난 잘 안했었다. 어릴적 난 전집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책도 별로 많이 읽지 않았다. 매일 하는 일일공부는 지금 생각해도 속이 구져지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싫었던 경험들은 돌아서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책의 맛을 안 것은 성인이 되어서였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미술 학원에 보냈더니 (4세-5세 유아의 경우였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잘 그린 것 같은 정형적인 그림들을 그려내는데,이전의 창의적인 기발한 그림은 없어졌다고 아쉬워 하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우려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계이름으로 멜로디언을 치는 연습을 하는 딸 아이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곤 했었다.

부모가 무한대로 뒷받침해주고 닦아줘야만 생기고 자라는 것이 재능이던가. 재능이란 거 아무리 덮어도 빛처럼 뿜어나오는 거 그런거 아니던가. 너무나 안이한 태도 같지만,10살 딸아이에게  난 맘편한 지금정도의 뒷받침만 하련다. 미안하다 딸아. 넌 네가 하고싶은게 뭔지만 알면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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