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2일 


 이제야 답장을 쓰게 됐어.
지난 4일 느닷없이 여름휴가를 받아 왔더라구.
이번엔 운좋게 5일을 쓸 수 있게 되어서,3일간 자동차로 여행을 다녀왔어.
6,6,8시간씩 주로 차안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지루하고 힘들기만 하더라.
내가 고집을 부려서 나 혼자 내내 운전을 했거든.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메일 확인을 잠깐하고,

애들 아빠 퇴근하고 나서 이제야 몇 자 적는다.
 

보내준 사진 보니까 J이가 지난번 사진하고 많이 달라진 거 같아.
살도 많이 빠진 것 같고,지난번 봤을 땐 아빠 꼭 닮았던데 지금은 그 범위에서
약간 벗어난 거 같아 보이네. 

그나저나 무지하게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널 생각하니 저어엉말 안쓰럽다. 
그저 견뎌내는 수 밖에 다른 수도 없고,모든 게 끝 간데 없어 보이는 반복 반복.
H는 H대로 힘들 것이고...
힘든 얘기지만, H를 따뜻하게 다뤄줘야 앞길이 순탄해질거야.
난 J의 박탈감을 전혀 채워 주지 못했어.
그래서 지금도 힘든 시간통속에서 허우적대잖니.
그저 네가 체력이 있어야 애들 돌볼 수 있다는 거 명심하고,
맛있는 거 네가 먼저 먹고,쉴 수 있을 때 다 놔 버리고 쉬어 줘야해.
하여튼 화이팅 화이팅!! 

우리 J는 방학 2개월차를 맞이했는데...매일 매일이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하루가 가버려. 나랑 같이 수학공부 조금,영어책 읽기 조금하고,
혼자서 일기 쓰기,독서록 쓰기 정도를 매일 하고 있는데,
한꺼번에 몰아서 해버리기엔 집중력에 한계가 있어서,
조금씩 쪼개서 이 과제들을 하려니 애가 탄다.
더구나 "I"라는 복병이 잠복중이잖니. 

여긴 예년과 다르게 덥지 않은 편이래.
TEXAS가 이렇게 시원한적이 없었다는 거야.
비도 많이 오고. 덥지 않다고는 해도,
35도에서 40도 사이니까 우리한텐 그다지 시원한 날씨는 아니지? 

우리집 옆에 동네 수영장이 있어. 동네 주민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해가 반짝하는 날이면 수영장에가서 놀다 오곤해.
그래서 애들이 깜둥이가 됐어.
I는 처음에 물을 많이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J도 I도 겁을 덜 먹더라고. 

나는 그냥 저냥 살아. 여기서 눌러 살 것도 아니고 그냥 거처가는 곳이라서 그런지
선택에 제한을 주는 것들이 너무 많고,그래서 더욱 정도 안들어.
어차피 떠날 곳인데 하는 생각 말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 같았던 기대도 "역시나" 였어.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변화도 없는 거였어.

I를 9월 정도부터 시설에 맡기고 나도 날 좀 찾아 나서볼까 해. 


**야! 너무나 힘들텐데,잊지않고 편지 보내주고 정말 고맙다.
한 열흘 만인가, 이백여 개씩 쌓여 있는 메일들을 지우는데,
그 속에 파묻혀 있던  "언니" 라는 메일이 통통  통통... 
어찌나 반갑던지 무섭고 낯선 어딘가에서 너의 얼굴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번쩍임.
언니라는 말도 낯설만큼 그리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아니건만
순간 어색하기도 하고. 

벌써 여긴 새벽 한 시가 넘었네. 다음에 또 다시 연락할게.
부디 건강하길 바래.

기록이라는 것이 고맙다. 작년 여름을 이런 편지 한통으로  다시 훑어 내리니 저절로 입술 끝이 말려 올라 간다. 금년 여름도 마찬가지로 너무 덥다. 비는 없고 제대로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다운 여름이다. 몇 주째 쨍쨍한 날뿐이다.

금년엔 큰아이를 6주간 여름 캠프에 하루 6시간씩 보내고 있고, 작은 아이는 작년 말 부터 일주일에 3일 오전시간만 유치원에 보내고 있으니,작년에 비해 외적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오늘 J엄마의 깜짝 초대가 있었다.  네 가족. 간만에 8명의 아이들이 모였으니 우리들이 떠난 자리는 그야말로 난장. 잘먹고 놀다왔음에도 수요일 오후의 느닷없는 소집은 우리의 오후 스케줄을 헝클어 놨으니,오늘의 무장해제 뒤 분명 따라붙을 내일의 분주함을 해결하려면 아침부터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할 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좀 파렴치하다.

내게 전화는 좀 힘든 일이다. 시와 때를 구분못하고 띠리링 울리는 전화는,화장실에 노크없이 문을 여는 것 같은 당혹감을 주는 것 같아 좀처럼 전화를 잘 못하겠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특히 주부들은 직장인과 달리 자유로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 당혹감을 주는 변수를 피해 전화를 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적어도 내겐. 특히 낮잠이라도 잘려고 설픗 잠들었을 때 울리는 전화는 특히 그냥 용건이 없는 안부전화일 경우엔 더욱 면목 없고, 거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불편할 터. 때를 절묘하게 못맞추는 이런 경험으로 몇 번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더니 더욱 전화가 내겐 어려운 일거리가 되버렸다. 오늘같은 느닷없는 초대 또한 내겐 정적을 찢는 전화벨 소리만큼, 순간 가슴을 펄떡 뛰게 한다. 초대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이런 주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난 메일이 좋다. 그다지 급한 볼일이 아니라면,안부를 전하는 글 몇 문장이 난 너무 편하다. 상대도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열어 볼 수 있고,난 그저 나 편한 시간에 보내기만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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