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ㅈ엄마. 잠깐 들른다는 전화를 띠링 날리더니, 손바닥만한 게 5마리가 든 지퍼백을 들고,문 열리자 마자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득달같이 우리 주방으로 달려들어,게를 꺼내 게손질법을 2회 실현한 후 '할 수 있죠?' 하고 물은 후 내 대답도 안듣고,뒤꿈치가 안보이게 휘리릭 가버렸다.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해도 바닷가를 다녀와 모래로 서벅거리는 차 안을 도저히 못봐주겠다며 빨리 가 세차를 해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런,갑작스럽기는 했지만,간만에 만나 차 마시며 오붓한 얘기나 좀 하려고 기다렸던 나는 무지 서운.

ㅈ엄마가 잠깐 들른다고 전화했을 때,난 '나 게요리 못하는데!' 하고 일단 주춤거렸더랬다. 뭐든 일단 멈칫멈칫하는 내 난치병에도 아랑곳 않고, 할 일을 뒤에 두고 와  맘 바쁜 와중에도 친정엄마처럼 다정하게 게 손질법까지 실현해 준 ㅈ엄마. 참 고마운 사람이다. 아무래도 내 모자란 귀퉁이를 그녀는 훤히 꿴 듯하다.

ㅈ엄마네 식구는,며칠 전 근처 바닷가에 게 잡으러 갔었다. 물론 우리 식구에게도 가자고 했는데,여행 다녀 온지 채 일주일도 안됐는데 또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을 일박이일로 다녀오자하기에,남편은 가고 싶어했지만 내가 시쿤둥하니까 거절했었더랬다. 당분간 장시간 운전은 피하고 싶은 나.

게 잡으러 다녀온 ㅈ엄마가 얼마 안되는 양이지만 갈라 준다고 우리집에 들렀던 것. 그녀에겐 활기가,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뭔가가 폴폴 날린다. 사람관계가 XXL쯤 되보이는 그녀는 갈등이라고는 만들지 않는,문제를 문제삼지 않는 영특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서 있는 그 곳의 모든 배경들은 그녀를 위한 소품처럼 그녀에게 포옥 안겨든다는 느낌도 든다. 동굴처럼 서늘하고 어둑신한 우리집에 그녀가 서 있으니 조명을 서너 개  더 켠 것보다 환해지더라는. 나만 이리 생각하는 걸까?

사람들 속에서 사람관계를 엮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이 밝은지,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등등 자신을 파악하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오늘 미장원에 들렀다가 정신과의사의 상담기를 읽어보니 

어릴때의 나는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노는 것만 좋아해서 엄마에게 핀잔 바가지를 예사로 들었던, 앞날이 심히 우려되는 어린이었는데,중학교때부터 나의 관심이 어찌 어찌 공부로 쏠리면서 친구들과의 교류는 자연히 줄어 들게 되었다. 공부도 잘하면서 친구관계의 폭도 넓은 애들도 많더만... 난 친한 단짝 친구를 제외하고는 살얼음처럼 얇은 관계들 뿐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가면서 관계들이 더욱 살팍해진 듯하다.

결혼후 겪은 예리한 상처들로 점점 난 내 세계속으로 기어들었다. 그러다, 나는 잡고 있는 시늉만 하고 있는 손을, 놓지 않고 잡아준 살뜰한 이들이 있어 난 다른 세계를 만들고 또 만들고 있다. 이젠 도톰한 사람관계 속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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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2008-04-0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계를 두텁게 만드는 힘! 그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와 상통하지 않을까 해요. 저는 매일 아침에 눈 뜨면 대충 이렇게 주절거립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들도 결국은 내가 필요해.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AppleGreen 2008-04-01 22:44   좋아요 0 | URL
혼자인줄로만 알고 있는 이 곳에서,종종 님의 깜짝 등장은 느닷없는 선물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