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부가 경직된 어르신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고 계신 걸 보고 제가 도와 드릴까요 했지만 거절하셨다. 생각해보니 그 분은 뭐라도 하시면서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계신 거였다.
중학교 때 병약한 친구가 있었다. 가끔 학교에 오곤 했는데 마침 그날은 운동장 대청소 날이었다.
낙엽을 쓸어 모으는 그 친구의 빗자루를 내가 빼앗아 대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또한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서 뺏은 것은 빗자루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 1루피 이상 구걸에 응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여행사의 철저한 교육을 받았던 젊은 시절 스승님은
배고픈 젖먹이를 안은 인도 여인이 60루피 짜리 분유를 구걸했을 때,
그 요구가 마치 전 재산을 달라는 것처럼 들려 놀라 도망친 후,
60루피가 겨우 2400원인 것을 뒤늦게 알고, 이에대한 자책과 속죄의 심정으로
남은 여행 경비를 털어 사탕과 학용품을 구입해 인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지만
구걸할 줄 모르는 시골 아이들에겐 연필 한 자루도 나눌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이처럼 나누고 싶은 마음과 상대의 필요가 충돌하는 경험을 종종 한다.
나의 선의가,관심이,나눔이,사랑이, 한낱 나의 욕망이 되지 않도록
도움의 필요 여부와 기준은 전적으로 상대가 갖고 있음을 명심하고
상대의 필요에 감각을 모아야겠다.
얼마 전 이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한
외국 관광객의 넘치는 자비심과 한국인 관광객의 넘치는 자부심이
어른 남녀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루피 거지를 마음에 심어 놓았단다.
지구마을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과 구조화된 악의 실체에 눈 감으면서
달콤한 풍요 속에 살아온 자들은 언제나 제 마음의 불편을 덜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랑을 자신이 해 온 방식대로 해대며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미래를 망친다.
<지붕 위의 두 여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