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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무관심하고 냉정한 엄마,단절과 소외만 던지는 형제들,그 속에서 아홉살 먹은 여자아이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랑실종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이의 선택을 도덕으로 추긍하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쥔 칼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을터.
초반엔 아이의 영악함에 놀랐으나 자연의 힘에 맞먹는 지배력을 갖고 있는 엄마 밑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쉴라치면 어쩔수 없었겠다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기에 이르렀다. "당신 기분에 따라 은혜를 베풀었으며 당신의 괴팍한 논리가 어떤 작용을 할지에 대해선 아무런 통찰도 남기지 않았다." p13 이런 엄마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단 한가지. 아이는 이를 알뜰하게 이용해 먹는다.
프랑스 요리들.먹어보지 못했지만, 요리 재료의 열거만으로도 향이 연상된다. "음식은 그녀의 향수요,잔치였으며 음식을 준비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창조성을 발산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p15 엄마는 자신의 요리수첩을 아이에게 물려준다. 요리법말고도 엄마의 짤막한 일기와 수수께끼같은 메모들이 단서가 되어 훗날 어른이된 아이에게 엄마를 이해하고 동시에 자신을 이해하는 기회를 준다. 이 수첩이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진행되는 갈등상황도 흥미롭다.
"어머니처럼 비쩍 마르고 가무잡잡한데다가,길기만하고 품위 없이 생긴 손과 평발,쭉 찢어진 입매마저 어머니를 빼닮았으니" p14 자신을 닮아 더 밉기도 하고,가장 사랑하기도 하는 극단적인 감정이 어머니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사랑은 숨기고 미워하는 마음만 드러내 아이에게 많은 결핍을 떠안긴다. 아이 또한 나중에 딸을 낳아 이런 야릇한 감정을 경험한다.
나 또한 그렇다. 제발 이런 점만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건 어김없이 딸아이에게서 보게된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다. 최근들어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는 많이 개선되어 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내가 자란 환경 그대로 내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닌줄 알았는데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준비를 거의 마쳤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