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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기다렸던 책.
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현대의 지성 120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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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대형 테러가 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두 명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쳤다고,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TV를 켰다. CNN방송은 아무 설명도 없는 채로, 불타오르고 있는 무역센터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죄로 부랴부랴 선배들에게 연락을 하고 회사로 달려가 호외를 만들었다.
그 뒤로 두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신없이 외신을 들춰보고 기사를 '써제꼈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때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이는 아마 태중에서 '테러'와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 살아가야 할 '테러시대'라는 것에 대해 나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조지 W 부시가 선언한 대로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됐고, 결국 이라크전이라는 고전적 의미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파병논란, 김선일씨의 피살 등의 사건들을 '후일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테러시대'는 이제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9.11 사건 이후로 나의 의식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다. 중동에 대한 관심은 전부터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됐고 이라크를 방문하게 됐다. 이후 3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중동' '이슬람'이라는 단어들이 맴돌았다. 신경과민증 혹은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와 마음으로 중동을 찾아 헤맸다. 중동 내지는 이슬람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다소 안목이 생긴 것도 있지만 언제나 머리가 '고팠다'고 할까,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9.11 이 있은 직후에, 선배 한 분과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몇년 지나면 이 사건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인 분석들이 쏟아져나오겠지, 이 사건이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될지 궁금하다...
<테러시대의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런 책이었다. 미국 바싸르대학 교수라는 저자는 9.11 테러가 일어나고 두 달 뒤, 뉴욕에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만나 인터뷰했다. 책은 두 사람과의 개별 인터뷰와 함께, 두 '석학'의 이야기를 풀어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버마스, 데리다. 얼마나 저명한 '철학자들'인가!

하버마스의 이야기는 그닥 인상적이지 못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은 데리다와의 대화 부분이다. 두 사람의 인터뷰 스타일은 정반대였던 듯하다. 하버마스가 간결하게 '신사처럼' 얘기했다면, 데리다는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가운데에서 정곡을 찌르는 스타일이랄까. "9.11은 대사건이 되겠지요"라는 질문에, 데리다는 "무엇이 '대' '사건'인가"를 되묻는다. 9.11이라는 숫자들로 '명명'함으로써 이 사건을 반복해서 되뇌이게 만드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인 테러/테러시대/테러시대를 불러온 모순들을 마치 '종결된 사건'인 양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데리다,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뭐니뭐니 해도 '해체'다. (데리다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아무튼) 데리다는 우선 9.11 이라는 '이름'을 해체하고, '테러' 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무엇이 공포(terror)인가. 이 '공포'의 원인은, 그것이 미래에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 이런 일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냉전이라는 최소한의 균형조차 깨어진 뒤에 찾아온 '팍스 아메리카나'. 9.11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던 '미국'이라는 안전판을 강타하고 부숴버린 것이었고, 거기에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생겨난 것임을 지적한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보자면(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미국이 지목한 '테러리스트'들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생겨난 존재들이다. 데리다는 이를 특유의 '자가-면역' 논리로 해석한다.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부수면서, 안에서부터 생겨난 병리학적 존재들.

테러와의 전쟁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지금의 이라크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폭력적인 교조주의에서 근본주의자들 스스로가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데리다라고 해법을 알까. 철학자에게 '현실적 해법'을 내오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문제의식으로 족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이 유행을 했던 것 같은데, 재미난 것은 '관용'에 대한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정반대되는 평가다. 하버마스는 비록 '관용'이라는 말이 어떤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민주적인 사회'에서라면 그 한계가 다수의 뜻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면서 '관용'의 유효성을 높이 평가한다.
반면 데리다는 '관용'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기독교적 성격을 지적하는 동시에, 관용은 어디까지나 '문턱'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이러저러하지만, '너'의 행동도 이러저러한 수준까지는 봐줄 수 있다, 까놓고 말하면 관용은 그런 것 아니냐는 얘기다. '봐줄' 수 있는 한도, 그것이 관용이다. 관용이라는 개념에 반대하면서 데리다가 내놓는 것은 '환대'라는 개념이다. 네가 비록 이러저러할 지라도 나는 받아들인다- 보라도리는 데리다가 말한 '환대' 혹은 '초대'의 개념을 '용서'와 연결짓는다. 무조건적인 환대, 무조건적인 용서, 무조건적인 책임.
내 집에 누가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손님을 환대한다면-- 반가운 손님이 올 수도 있고,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와 나를 찌를 수도 있다. 환대는 나에게 엄청난 위험부담을 가져다주는 그런 개념이다. 관용을 넘어선 '완전한 환대'는 법적으로, 국제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데리다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기존의 논리를 해체하고 새롭게 상상하지 않는 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해체주의자의 지적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문제의식은 결국 '유럽' '계몽주의'의 문제를 향해 간다. 이성, 합리화, 이런 것들로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근대화의 프로젝트를 포기해야할 것인가.
타리크 알리 같은 사람은 "9.11 이후에 변한 것이 과연 있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9.11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평가절하한다. 과연 9.11은 어떤 사건이었나.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미-소 양극체제에 일격을 가한 사건이었다면, 냉전이 끝나고 10년만에 일어난 9.11은 미국 일극체제를 향해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었다. 빈 라덴같은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을 '적'으로 명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화에 반기를 들었다. 빈라덴의 선전포고를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계몽주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 반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데리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를 통칭해서 '아브라함적 종교'라 부른다. 하버마스는, 이 아브라함적 종교들 중에서 '구미'의 종교에 해당되는 기독교의 경우 근대에 이르러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일신교 특유의 배타성과 폐쇄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여러가지 역사적, 경제적 원인이 있겠지만) 이같은 세속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모순이 축적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지경(근본주의의 발흥)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을 찾는 것, 합리화와 근대화(표현이 좀 이상하군)는 더더욱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이 부분에서는 데리다 또한 문제의식이 일치한다. 미국에 맞서는 (척하고 있는) 지금의 유럽에 한정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의 이상'이라는 의미로 '유럽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해 두 사람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동시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이 실려있다.

9.11의 의미와 계몽주의의 문제-- 이것은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이기에,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던진 짤막한 이야기는 그저 '분석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분석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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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늦은 가을 리히터의 이야기에 귀가 기운다.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 / 정원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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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의 붉은 물마저 빠져가는 늦가을이다.리히터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다.지난 일본 여행에서 운좋게 얻은 음반이다.건반이 낙엽위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따랑 따 따 라'..올가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리히터의 음반이었다.비록 디지털화된 CD의 피아노 소리지만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리히터로 인해 행복한 가을이었다.그러던 즈음 그의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리흐테르>.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어떤 사람은 리히테르라고 읽고 어떤 사람은 리히터라고 쓴다.영어식 발음과 러시아 발음의 차이일 것이다.내게는 리히터가 편하다.그래서 그냥 계속 리히터라고 읽을 참이다.이 책은 리히터의 회고담과 음악수첩이다.유명한 아티스트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던 브루노 몽생종이 리히터의 다큐제작 후에 발표한 책이다.이 책은 생각보다 두툽하다.나의 읽기 스피드로는 올해 안에 다 보기 힘들겠다 싶었다.하지만 책장을 넘기자 책읽는 속도가 악상기호로 치면 '점점 빠르게'로 바뀌었다.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책이 아닐 수 없다.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평전'형태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서점에 가면 글렌 굴드를 비롯하여 몇 몇 음악가의 평전집을 볼 수 있다.그 책들 또한 나쁘진 않다.한 연주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곡 해석의 방향등을 이해하게 해 준다.또 기이한 행각들이나 주변 아티스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의 삶의 일부를 엿보는 즐거움도 준다.하지만 이 책 <리흐테르>는 그 이상이다.이유는 이 책이 리히터의 구술과 그의 메모에 의존한 책이기 때문이다.몽생종은 다큐멘터리 작가 답게 리히터와의 인터뷰와 수집했던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여 1인칭 시점의 회고담을 완성했다.그러므로 마치 20세기 피아노의 전설이 내 앞에서 담담하게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회고담의 생생한 나레이션은 평전이 갖는 현학성이난 인물에 대한 미화와는 다른 매력을 갖는다.그는 이 책에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과격하게 자신과 주변 상황들을 묘사한다.어떨 때는 극단적인 감정이나 언사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시작은 몽생종의 편저자 서문으로 문을 연다.몽생종이 리히터를 만나서 영화촬영을 허가 받는 과정이 재미있다.인위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리히터는 촬영이야기 자체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하지만 서로의 신뢰가 쌓이며 결국 암묵적인 촬영동의가 이루어진다.그럼에도 자연스러운 인터뷰와 앵글을 위해 몽생종은 카메라를 리히터의 시야에서 제거하는 지난한 촬영방법을 택한다.리히터는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침묵동의를 통해 촬영에 협조한다.정말 아쉬운 것은 리히터의 콘서트 촬영을 앞두고 서거한 일이다.감독의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왔을 것이고 남은 기록을 볼 수 없는 음악팬의 입장에서도 두고 두고 아쉬운 일이다.

책의 1부는 리히터와의 인터뷰를 제구성한 회고담이다.음악팬들이라면 리히터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97년 리히터가 사망했을 때 <객석>을 비롯해 많은 클래식 잡지들이 그의 삶을 다룬 특집 기사를 실었었던 기억이 난다.그는 어렸을 때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음악가였기때문에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였다.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사는 파란만장하다.아버지는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혼란의 시기에 총살당한다.그리고 어머니는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인물과 재혼을 한다.리히터는 거의 20년 가까이 어머니와 의절하고 살다가 1960년대 서방세계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다시 만나게된다.이 책의 6장<어두운페이지>에 이러한 가족사가 리히터의 시각으로 쓰여져있다.여기서 그는 의붓아버지뻘이되는 콘드라예프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는다.

리히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에 하나가 스승이었던 게리히 네이가우스였다.리히터를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시켜주고 퇴학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것도 네이가우스의 공이다.네이가우스의 집안은 대대로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자자하다.할아버지 게리히 네이가우스는  골든베이저와 더불어 러시아피아노학파의 기둥이었다.그의 아들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역시 피아노교육자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다.또한 그의 손자 스타니슬라프 부닌은 쇼팽콩쿠르 우승자로 현재도 쇼팽연주자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리히터는 스승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그래서 그의 레퍼토리에 그 곡은 빠져있다.

"그는 슈만과 스크리야빈을 아주 멋지게 연주했다.또 쇼팽의 협주곡 E단조와 베토벤의 황제는 어떤가?이 두곡의 연주는 너무나 경이로워서 나는 언제나 이 곡들을 내 레퍼토리에 포함시키는 것을 스스로 삼갔다"

리히터의 인간적인 낭만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는 리히터와 주변 음악가들의 관계이다.리히터가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2부 음악수첩에는 짧은 메모 형태로 그 내용들이 들어있다.또 그의 회고담 속에도 여러 음악가들과의 관계가 사실적인 표현으로 수록되어있다.예를 들어 작곡가의 경우 리히터는 프로코피에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그래서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또한 벤자민 브리튼과는 평생의 좋은 인연을 맺기도 한다.반면 쇼스타코비치와의 관계는 좀 대면대면 했다고 기록한다.첫만남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이루어졌으며 몇번 그의 곡을 동료들과 연주했지만 인간 쇼스타코비치와는 가까와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연주가로서 리히터의 에밀 길레스에 대한 비난은 아주 사실적이다. 에밀 길레스는 네이가우스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하지만 리히터는 길레스를 시샘이 많아서 주변과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특히 길레스가 네이가우스와의 관계를 부정한데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빌어 크게 비난한다.네이가우스가 그일로 죽는 날까지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리히터는 말한다.그외에 카라얀 역시 리히터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명반으로 알려진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의 경우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오이스트라흐-리히터의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카라얀은 협연자들의 재녹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앨범사진 찍기나 강요한다.그 유명한 표지 사진에 대해서 리히터는

"그 사진을 보면 카라얀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바보들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얼마나 역겨운 사진인가!"라고 말한다.

로스트로포비치의 경우 그의 탁월한 능력과는 별개로 그가 과시적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 눈을 흘긴다.반면에 리히터가 최고로 인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대표적으로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므라빈스키, 카를로스 클라이버,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마리아 칼라스 등이 그들이다.특히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대한 리히터의 칭찬은 엄청나다.그의 음악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찬란하도록 완벽하다.이보다 나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먼저 클라이버를 칭찬하고 싶다.이 기적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의 행운을 부러워하리라. (클라이버가 지휘한 요한슈트라우스 <박쥐>를 본 후) 

마침내 제대로 된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다.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라트라비아타>를 있는 그대로 발견했다.이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기쁨을 느꼇다(클라이버 지휘 베르디<라트라비아타>를 본 후)

리히터는 기본적으로 자기연주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는 완벽주의자다.그래서 그가 스스로 한 녹음에 만족을 표한 것은 몇 장 되지 않는다.헨델키보드 녹음이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녹음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반면 불만족스러운 녹음은 부지기수다.특히 명반으로 알려진 드보르작의 <피아노 협주곡>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불만과 아쉬움을 토로한다.

정말이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카를로스는 너무나 세심했고 나는 경직되어 있었다.그 바람에 드보르자크 특유의 매력과 단순성을 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평론가들과 음악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리히터의 자기기준이 엄격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음악팬들의 부화뇌동 때문일 수 도 있다.비슷한 예를  언젠가 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명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유진 오먼디가 지휘한 이 곡의 명연중에 하나로 알려져있다.하지만 이 곡은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로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당시 호로비츠의 피아노조율사의 증언이다.그럼에도 최고의 명연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팬들의 부화뇌동인 듯 하다.

이 책의 가장 내밀한 부분은 2부에 해당하는 음악수첨이다.거장이 남긴 이런 종류의 메모는 여태까지 들어본적도 본적도 없다.그런 측면에서 이 메모는 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읽는 재미입장에서도 최고다.음악 수첩에서 리히터는 그가 참가했던 공연이나 들었던 녹음들에 대한 짧은 평가를 싣고 있다.이 메모를 보면 리히터가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또한 현대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이 메모에서는 현재 맹활약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또한 그가 반복구에 철저하지 못한 걸 배격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글렌 굴드의 바흐연주를 좋아하면서도 굴드가 반복구를 빼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한다.그가 특별히 관심을 보인 젊은 아티스트들은 졸탄 코치슈,안드레이 가브릴로프,올레그 카간,나타샤 구트만 등이다.(이제는 정상에 있는 아티스트들이다.)리히터는 이들 대부분과 협연하기도 한다.반면 부정적인 평가를 보낸 아티스트들도 있다.대표적으로 폴리니가 그렇다.

폴리니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프로코피예프나 20세기의 다른 작곡가들이 쓴 작품처럼 연주한다.

폴리니는 연주스타일이 힘차고 때로 영웅적이기까지 하며 더없이 정확하고 기교가 뛰어나다.하지만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최신 유행만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한마디로 '금속으로 주조된 쇼팽'이다.

라두루푸의 리사이틀에 대해서도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에는 모든 것이 미리 계산되고 계량되어 있어서 뜻밖의 기쁨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전혀없다.마치 커다란 쟁반에 한꺼번에 차려내온 식사와 같다"

또다른 거장인 미켈란젤리에 대해서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어쨋거나 악보를 광신적이다 싶을 만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은 분명하다.미켈란젤리는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다.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광신적 태도와 악기에 대한 극단적인 엄격함은 상상력의 비상을 가로막고 작품에 대한 진정한 애정의 표현을 방해한다.하지만.........누가 명인을 심판할 수 있으랴...  (드뷔시 전주곡집 1권 녹음을 듣고)

기돈 크레머와 마르타 아르헤리치에 대해서는 독설을 가한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회였다.하긴 놀랄 일도 아니다.이들은 리허설도 하지 않고 바로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니 말이다.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그저 수치스러울 따름이다.이런 태도로 예술에 임하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이들이 그렇게 행동해도...결과는 엄청난 성공이다.

리히터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다.특히 그의 방대한 레퍼토리와 음악의 성직자 같은 고결한 모습은 요즘 연주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그렇다고 그의 연주가 늘 최상은 아니다.그의 메모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는 즉물적인 연주를 싫어했다.그것 나름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리히터는 영적인 에네르기가 충만한 연주를 좋아했고 본인도 그런 연주를 최고로 쳤다.그의 연주를 실제로 볼 수 없었음이 너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리히터의 슈베르트 마지막 소나타..폴리니의 냉혈같은 연주도 때론 들을 만하다.브렌델의 소박하면서도 지적인 연주는 진지해서 좋다.머레이 페라이어의 낭만적이고 풍부한 음향을 머금은 연주 역시 즐거움을 준다.하지만 오늘은 리히터가 최고다.느리면서 강하고 굵은 울림이다.에너지와 충만한 감성. 슈베르트....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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