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원래 좀 쪼잔해서 말을 가려하는 편인데 오늘은 입을 좀 험하게 놀리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기분은 울쩍한데 한예슬이 선전하는 카스 레몬은 왜 이렇게 상큼한건지. 빠르게 몇 캔 구겼더니 취기가 알딸딸하게 오른다. 두서없이 팡팡 지껄이다 자야겠다.

이제 개새끼들이 주저없이 쏘고 내려찍고 짓밟는다.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최고통수권자의 직접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망설일 것이 없다. 꽁꽁 숨어있던 쥐새끼는 이제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까딱까딱 고개 몇 번 숙이고 가래끓는 목소리로 국민의 '눈높이'가 어쩌구저쩌구 두번 하더니 할만큼 했다 생각하는지 이제 거침없이 밀고 나온다.(그 지랄맞은 '눈높이' 회사 '재능교육'은 '이랜드'나 '기륭전자', '알리안츠' 만큼이나 노조탄압 기업으로 악명높다)

2008년 5.18쯤에는 6.10이 되면 좀 해결이 되나 싶었고 6.10이 지나고 나서는 6.15를 기대하게 되고 그날 이후 또 다시 6.29 때까지는 뭔가 큰 진전이 있을거라 여기며 희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참혹한 6.29 였다. 우석훈이 열받은 채 지껄인대로 말하자면 '블러디 선데이'.

한국 사회는 숫자로 호명된 기호에 너무 많은 맥락과 상징이 포함되어 숫자를 터뜨리는 입과 그것을 주워듣는 귀가 아주 빠르게 역사를 회집하고 더듬는다. 그렇게 만든 좆같은 놈들에게 이제 그것을 못하게 하려는게 지난 60일간 이어져온 '촛불집회'의 본질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놈들은 그 숫자를 잘근잘근 토막내어 자꾸만 우리에게 다시 쑤셔넣어주고 있다.

씨발, 비역질이 난다.

놈들은 너무 강하고 끈질기다. 멍청해서 오래가는 건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멍청해도 오래 버티는건지 모르겠다. 분명한건 멍청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멍청한데 또라이도 더러 몇 끼어 있다.

몇몇 사람들이 시청과 KBS 앞에 가스통과 쏘세지를 들고 나오자 꼴통 몇 명이 힘을 얻었는지 한손에는 무협지와 한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나와 지껄이기 시작한다. 찍소리도 못하던 조중동도 자기한테 욕하거나 개겼던 네티즌들을 본격적으로 응징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경찰과 검찰은 한통속이라는 게 분명한데 아직 사법부가 포지션을 정하지 않았다. 야비한 '전경련'은 촛불이 한참 거셀때는 입 다물고 있더니 타이밍 재고 정확하게 치고 들어온다. 촛불끄고 착취의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공개적으로 쳐 씨부리고 있다. 씨발 언제 일안하고 간적 있냐. 해떨어질때 나가서 하고 빨간 날에 나가서 하지.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심각한 말종이 이문열인데. 천정환 말대로 '문'자와 '열'자가 아깝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문열 책은 거의 다 읽어 왔고 심지어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선택>때나 '홍위병'때, 남들이 다 깔 때 그나마 옛 정분으로 혼자 닥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보고 넘어가 주기가 어렵다. 미련없이 밑씻개로 써버렸어야 할 책들을 계속 사모았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이문열 아들을 한다리 건너 알고 있는데 그 사람 지금 직장에서 너무 힘들게 일한단다. 직접 의사 표현을 하진 않지만 아버지를 우회하여 자신을 더듬는 정치적인 시선때문에 그는 몹시 고단하고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사실 이번 촛불 시위가 쇠고기 문제를 진작에 넘어섰고 아주 가시적인 정권박살 운동으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해왔다. 시민들의 과도한 폭력은 문제가 된다고 고상하게 말리는 척 했지만 어느정도의 물리력은 피하기 어렵다고 속으로 생각해온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위 현장에서 일부 드러나는 폭력도 거대한 시민들의 분명한 모습중 하나라고 여러사람들의 블로그에 욕먹어가면서 댓글을 달기도 했다.

나 역시 촛불집회에 몇 번 나가 닭장차도 잡아 끌어내보기도 했고, 어느때는 그냥 조용히 촛불만 들고 앉아 있거나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밤에는 너무 피곤해 이랜드 노조 천막에 몰래 기어들어가 스티로폴 쪽위에서 몇시간 눈을 붙인적도 있다. 맥주를 마시고, 다꼬야끼를 사먹고 사람들이 전해주는 김밥과 생수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찾기도 했다. 소라광장 옆 '탐앤탐스' 화장실과 서대문 '새문안교회' 화장실, '동아일보' 화장실 등을 주로 이용해가며 춥고 덥고 습하고 어두운 밤을 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자랑스런 촛불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술 먹느라, 피곤해서, 야구보러 가야하기때문에, 쿵푸팬더가 너무 재밌다고 하길래. 때론 일이 넘쳐서, 공부해야하므로 촛불집회에 못 간적이 더 많다.

그러나 그 순간들에도 야구장에 싸들고 갈 맥주와 과자를 사러 들어간 '이마트'에서, 쿵푸팬더를 보러간 'CGV'에서, 대학로와 신림동과 홍대앞의 술집들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과 광화문의 시민들의 얼굴이 너무나 닮아 있다는 사실에 흥분과 전율을 느끼며 이 싸움을 이길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언젠가는 지는 싸움이다. 우리는 지금 매일매일 이 싸움의 패배를 조금 뒤로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금요일 천정환과 술을 먹으며 나는 늘 져왔으며 이번에도 결국에는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그도 뚜렷한 반대의 근거나 희망의 좌표를 제시하진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그의 마음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였다. 관성화된 패배를 주억거리는 내게 그는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지난 역사의 모든 패배가 실로 거대하고 조용한 승리의 이름을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또 이미 이번 싸움에서 엄청나게 많은 환희와 희망을 얻어낸 수많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지난 5월과 6월이 얼마나 아름다운 승리의 시간이었는지를. 거리의 촛불을 이제 마음의 촛불로 이어가자고 하는 사람의 말 뒤에는 얼마나 큰 촛불의 감동이 놓여있는지를. '우리안의 이명박'을 지우는 일을 선행해야할 것이라는 말에 담긴 염려와 촛불에 대한 건강하고 탄탄한 믿음들을. 

그런데 이 그지같은 새끼들이 우리가 유일하게 첫번째 '승리'였다고 생각할뻔한 이 아름다운 기억들을 싸그리 소각하려 들고 있다. 승리했다고 혹은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번갈아 나와 맞고 끌려간다. 비폭력을 외치던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끌려가고 여학생은 또 군화발에 짓밟히고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을 카메라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모르고 넘어갈 수 도 있을뻔한 패배의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몸에 각인시켜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패배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낼 줄 안다. 실제로 규모의 최대치를 기록한 6.10 이후 사람들은 많이 지쳤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의 파업이 정리되는 과정은 정부가 얼마나 야비하고 교활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물연대의 컨테이너가 광화문의 명박산성을 위협하고 결국 노동자 총파업으로 연결되고 100만 촛불의 지지로 그 파업이 성공하여 유연하고 부드러운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완벽한 공세 포지션을 취한 정부는 사람들을 때리고 걷어차고 쏘아대더니 이제 법으로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구속된 사람들이 우리의 대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대표해서 그들을 구해내야한다. 텐트를 뜯어내고 대책회의 방송차량을 견인해가고 깃발을 단속하는 저들은 이제 우리에게 완벽한 패배의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하루하루 지나는 밤들이 너무 춥거나 아파 사람들은 더 많이 지쳐간다. 이명박은 우리에게 승리 혹은 패배의 기억 둘 중 하나를 심어놓으려는 게 아니라 모든 촛불의 기억을 우리에게서 지워내려고 한다. 권력은 개인의 내면에 조용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형태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완전히 뭉개지고 부서질때까지 싸우는 것. 승리했다고 믿었던 사람이나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두 패배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싸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거대한 진짜 승리의 시작일지 모른다.

우리는 결국 패배할 것이다.

저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기때문이다. 저들에게 우리는 한낱 벌레나 짐승이다. 법-폭력의 이름으로 우리를 밀어내고 때론 구속하는 저들은 반드시 괴물이다. 계속 밀려나고 붙들리며 벌거벗은 삶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이 상황을 공중에 매달고 있는 저 괴물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 괴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란 현실에 없다. 다만 괴물에게 모두가 패하는 일만이 가능하다. 다만 지고 또 져서 그들이 먼저 우리를 토해내게 되는 그날. 우리의 패배가 완성되는 날. 그날을 끊임없이 만들어가야하는, 우리의 패배를 우리가 직접 예비하는 이 순간이 앞에 놓여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패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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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08-06-30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더라도 침묵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요!

나비80 2008-06-3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더라도 침묵하지말자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