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오늘날 우리의 상식은 투쟁과 타협의 결과다
100권의 금서 - 금지된 책의 문화사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마거릿 볼드.돈 B. 소바 지음, 손희승 옮김 / 예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 2006년 9월 즈음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인권평화전시회 - 안녕, 국가보안법"이라는 릴레이 전시회에서 "감옥에 간 금서들의 이야기전"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서 논문으로 준비 중인 주제 역시 "금서"와 관련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금서를 읽은 사람들의 의식 혹은 그것이 형성한 문화에 대한 연구를 논문 주제로 잡고 있다. 대학원 기간 2년 내내 지도교수를 제외한 다른 교수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설명해야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까지 금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직업상의 이유로 모두가 가을을 살고 있을 때, 홀로 겨울을 준비하고, 모두가 겨울을 살고 있을 때 홀로 봄을 예비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지금 우리는 자유라고 외치는데, 나는 홀로 지금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가를 묻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느 사회에서 특정한 관습이나 인식이 '상식(혹은 공식적인 지식)'으로 인정되기 까지는 꽤나 복잡한 절차와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늘날 회사 같은 공공 영역에서 또라이 취급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두둘겨줘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남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가 생긴 것은 불과 한 세대만의 일이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발생하기 까지는 수많은 조건들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이 싸워온 결과이기도 하다. 황사를 비롯해 많은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는데, 요새는 그 원인이 산업화의 결과로 초래된 지구온난화로 인한 문제라는 것을 동네 꼬마들도 알고 있다. 이같은 인식의 변화 역시 근래 20여년간 생태환경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 반대로 우리나라가 UN이 선정한 대표적 '물부족 국가'라는 잘못된(?) 인식은 좀체로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UN이 한국을 앞으로 10년 내에 물부족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낸 적은 있다. (내가 알기로는 딱 한 번이라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댐 건설론자들의 주장과 정부가 출자한 공사가 해마다 광고비를 지출하여 널리 알린 덕이다(물론 나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말할 수 있을 만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물부족 사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책이 댐 건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처럼 어느 사회의 상식이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과 타협의 결과이지 본래부터 상식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학교 교육을 통해 알게 된다. 교육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공지식(상식)을 재생산하는 가장 유력한 공간이자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언제나 교육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통제할 방법은 무엇인가 궁리한다. 그러나 교육은 학교라는 공간에서만 이루어지진 않는다. 때로 우리는 언론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라는 불특정한 집단의 의견을 여론이란 형태로 수렴하게 되는데, 이때의 오피니언 리더란 반드시 전문가집단, 지식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배계급에 충실한 언론일수록 오피니언 리더 그룹은 해당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이해관계가 관철되었을 때 이득을 보는 이들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전 모언론에서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100여명에게 물어본 결과 이들 중 대다수가 FTA에 찬성하더라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는데, 이 오피니언 리더들이 언론사의 행사에 초빙되어 온 이들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은 힘이 세다.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 마거릿 볼드, 돈 B. 소바. 세 사람의 공동저서인 "금지된 책의 문화사 - 100권의 금서"는 말그대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금서로 지정된 이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선정한 100권의 금서 이야기를 통해 조망하고 있는 책이다. 어느 사회의 공공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면 반대로 어느 사회에서 금기의 지식, 혹은 금지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데 가장 유력한 표본이 있다면 바로 금지된 책, 금서일 것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배제하는 형태로 스스로의 생존방식을 규정해왔다. 어느 사회가 무엇인가를 허용하고, 권장할 때, 그 이면에는 거의 반드시 그 공동체의 이해관계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만약 그 이유를 이 책의 구분법에 따르자면 그 이유는 크게 다음의 네 가지 이유, 정치, 종교, 성, 사회적 이유로 구분될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은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로부터 "카마수트라", "율리시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다. 우리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히 권장도서 목록에 수록되었을 법한 책들까지도 금지된 도서 목록에 올라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면엔 '다빈치 코드'와 같이 뭔가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를 다음의 인용문에서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로 주목받는 "태백산맥"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과 적에 대한 고무 찬양이라는 죄목으로 내사를 하여, 1992년 대검찰청은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읽으면 불온서적 소지, 탐독으로 위법조치할 것이며, 일반 독자들이 교양으로 읽는 경우는 무관하다"라고 알쏭달쏭한 발표문을 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그렇게 방종한 여대생이 우리나라에 있을 수 없다며 판매금지되었고, 저자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 옮긴이의 글 가운데

검찰청의 발표대로라면 학생과 노동자는 일반인이 아니란 말이고, 방종한 여대생이 우리나라에 있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은 그와 같이 방종한 여대생이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무죄라는 판결이 된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엔 수많은 금서가 존재해왔고, 금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양산되고 있다. 아니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회이든 금지시키고 싶은 지식은 존재할 것이고, 이에 대한 반항 역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해주는 것은 지배집단이 금지시키고 싶어 한 어떤 지식도 결국 금지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금지된 지식 혹은 금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라도 이 책은 읽어둘 만하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이나 저자들의 책들이 하나 같이 추천할 만한 명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서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책들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필두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조지 오웰의 "1984", 커트 보니컷 주니어의 "제5도살장", 로버트 코마이어의 "나는 치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나기브 마푸즈의 "골목길의 아이들",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 캐슬린 윈저의 "내 사랑 엠버",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눈", 휘트먼의 "풀잎", 안네 프랑크의 "일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허버트 셀비 주니어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등등이 모두 금서에 포함되어 있고,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지만, 또한 상당수는 정치적 이유보다는 자본과 시장의 검열로 인해 출판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되지 못했다. 오늘 나는 연세가 많으신 원폭피폭자 한 분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은 전쟁 중 일본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분으로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물론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 분이 최근 일본에 거주했던 다른 피록 교포들이 일본어로 기술한 회고록을 번역하여 출판하길 원했고, 내게 부탁을 하셔서 몇 군데 알아봤지만 아마도 이 책이 국내에서 일반 독자들 손에 단행본으로 전해지긴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출판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자본론이 번역출간된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자본론"이 아직도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겠지만 입맛이 씁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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