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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밥과 같다고나 할까.
암리타의 제일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난 맛있는 한그릇의 밥을 먹은것만 같았다.
솔직히 처음과는 달리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언니 특유의 신비주의 소설이랄까.
도대체 이 언니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무엇을 이해하며 읽어야 하는건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썼는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요런것들을 저 땅바닥에 내팽겨쳐두고 읽기 시작했어야 했는데...
난 그런것들을 찾느라 이해는 커녕 주인공 이름조차 헤깔리고 있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보통 책 두께의 두배는 되는 이 책이 반을
넘어갈때즈음에 읽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깨끗한 그릇에, 하나하나 담아가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머리에 쏙쏙.
이 광대한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사쿠미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사촌 미키코, 어머니의 소꿉친구 준코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사쿠미가 머리를 다치기 전과 머리를 다친 후 변화를 겪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어린 남동생,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죽은 여동생 마유의 남자친구 였던
류이치로와 사귀게 되면서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 변화하는 사쿠미.
사쿠미의 필리핀 여행에 동참하면서 난 죽어라 필리핀을 그리워했다.
꼭 내가 가본 것 처럼, 그녀가 말하는 푸른 하늘과 바다 내음과,
그윽한 커피향기와 고소한 샌드위치 까지...
꼭 내가 겪어본 것처럼 그것들은 친숙했고, 당장이라도 가방을 메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책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신비하기 그지없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독특한 일상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건 뭐야? 라고 되물으면서도
마지막은 기분좋게 끝내게 해주신 바나나 언니의 놀라운 능력이랄까.
입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은근히 바나나 언니를 좋아하고 있는거
같다던 동환이 오빠의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난 또다른 바나나언니의 신비주의를 기대하면서,
어느새 이 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투명한 포장지로 책을 싸고 있었다.
인간은, 마음속에서 떨고 있는 조그맣고 연약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서,
가끔은 눈물로 보살펴주는 것이 좋으리라. (496)
우리들이 백만 권의 책을 읽고, 백만 편의 영화를 보고,
애인과 백만번의 키스를 하고서야 겨우, <오늘은 한 번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단 한 번에 깨닫게 하고 압도하다니, 자연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놔두면서 알게 한다. 누구에게든 구별 없이 보여준다.
구하여 아는 것보다 훨씬 명료하게. (176)
아아, 인간이란 참 바보스럽지. 살아간다는 것과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토록 괴로운 일인데,
애달프고 살은 에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일까, 도대체 뭐란 말인가.(355)
내년의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도 미리 알 수 없다. 그렇다는 걸 잘 알면서,
모두들 잘도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두들 요령 좋게 연막을 치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하고, 직면하여 대항하기도 하고, 울기도 웃기도 원망하기도
얼버무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죽는다.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를 너무 민감하게 느껴 부서지지 않도록.(470,471)
그립다 란 말에는 그 자체에 눈이 가늘게 조아려지는 눈부신 울림이 있다.
울고 싶은데 울수가 없어서 그런 계기를 찾거나 고르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만나면 처음에는 웃지만,술이 들어가고 잠시 시간이 흐르면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가 많다. 그런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있으면,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떤 작용을 가해와도 괜찮아.
지키는 힘쪽이 강하니까,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고싶다는 의지쪽이 강하니까.
이틀이고 사흘이고 같은 일행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남녀의 구별도 일거리도 점차 없어지고,
피로한 탓인지 묘하게 기분만 고조되잖아?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헤어지기가 싫어서,
필요 이상 명랑해지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재미있고 우스워서,
이렇게 사는 인생이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즐거워지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들의 존재감이
사방에 잔상처럼 머물러 있어서,
이튿날 아침 혼자 잠에서 깨어나, 아니? 그 사람들은?
하고 멍해 있다가,
아침햇살 속에서 괜스레 서글퍼지곤 하잖아.
여행이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