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랑인 줄 몰랐을까
바스 카스트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레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 주위에는 일명 ‘작업의 달인’들이 있다. 수시로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연애도 하고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리고 또 사랑에 빠지고... 한마디로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에 소질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 나에게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릴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좌절에 빠진 수백만 솔로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이 있다. 독일 《타게스슈피겔》지의 과학전문 기자 바스 카스트는 수십 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과학’에 대한 책인 《왜 사랑인 줄 몰랐을까》를 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은 누구나 연애를 잘 할 수 있도록 타고났으며, “본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남자/여자를 내 방식대로 꼬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문제는 그 ‘본능’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다. 《왜 사랑인 줄 몰랐을까》는 커플 심리학과 연애행동 연구의 핵심 성과들을 통해 ‘사랑의 본능’을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책에 소개된 과학 실험과 그 결과들 중에는 우리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뒤통수를 후려치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는 내용들이 많다.


 

 

실험 1.  남자는 쳐다보기만 해도 넘어온다

 

연애를 걸 때 칼자루를 쥐는 쪽은 누구일까? 많은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심리학자 데브라 윌시와 제이 휴이트는 매력적인 여성이 매일 저녁 8시에서 9시까지 칵테일 라운지에 앉아 있으면서 남자들에게 각기 다른 세 가지 태도를 취하도록 하고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1) 매우 도발적인 태도: 바에 있는 특정 남자를 반복해서 쳐다보고 그와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짓는다.

2) 도발적인 태도: 1과 같은 행동을 취하지만 미소는 짓지 않는다.

3) 새침한 태도: 남자에게 시선을 한 번도 주지 않는다.


결과는 매우 명백했다. 1)의 경우 60퍼센트의 남자가 실험 도우미의 테이블로 왔다. 2)의 경우는 다가오는 확률이 20퍼센트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여성에게 다다가는 남성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단 한 명도 없었다.

 

결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쳐다봐주어야만 다가온다.

 


 

실험 2.  눈길을 주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다 구체적으로 시선의 효과를 실험해보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행동학 연구소의 트라미츠 연구원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도우미 에스테르는 아름다운 여배우다. 뮌헨의 잘나가는 술집으로 가서, 연구자는 사전에 유혹하는 요령을 훈련받은 에스테르를 바에 앉히고 카메라로 그녀의 모습을 촬영했다. 에스테르는 정해진 시간 간격에 따라 카메라가 남자인 양 유혹했다.

 

연구자는 촬영한 필름을 가지고 연구소로 돌아와 일군의 남성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남자들은 화면 속에 있는 여배우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수록 준비된 레버를 세게 밀도록 했다. 레버 옆에는 버튼이 있는데, 이것은 미모의 여배우가 자기와 사귀고 싶어 한다고 100퍼센트 확신할 때 누르도록 했다. 그 결과는?



-미모의 여배우가 맨 처음으로 수줍은 듯한 시선을 한 번 보내는 것만으로도 8퍼센트의 남성이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확신하고 레버를 밀었다. 영상이 시작된 지 고작 29초만이었다.

 

-여배우가 두 번째로 잠깐 눈길을 주자 다시 11퍼센트의 남성들이 ‘이 여자는 나를 원해’라고 생각했다. 36초만이다.

 


-48초에 다시 한 번 시선을 주자 세 번째로 ‘누르기 물결’이 몰아쳤다. 그중 몇몇 남성들은 다른, 더 미묘한 유혹 신호에 반응했는데, 바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 행동이었다.

 

-77초째에 다시 네 번째 시선을 보내자 남자들의 50퍼센트가 화면 속의 낯선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2분이 지날 무렵, 다시 한 번 시선을 주자 남자들의 71퍼센트가 여배우가 자신을 사귀고 싶어 한다고 확신했다.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신중한 남성 한 명도 5분이 지나자 버튼을 눌렀다.


결론: 여자가 딱 한 번만 쳐다봐도 그녀에게 꿍꿍이가 있다고 믿는 남자들이 있지만, 대부분 몇 번의 도발이 필요하다.


이때 버튼을 빨리 누르는 남성과 늦게 누르는 남성의 차이는, 남성 본인이 이성 교제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감과, 상대 여성에 대한 그의 취향의 차이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적인 점은 남성들은 일단 어떤 여성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굳어지면 이런 확신을 절대로 버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여성 실험 도우미가 거절의 신호로 등을 돌렸을 때도, 남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험 3.   원하는 남자를 꼬시려면 위기 상황을 만들어라

 

두 명의 캐나다의 심리학자들은 유혹에서 장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캐나다 밴쿠버의 자연공원 캐필라노 캐니언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용 현수교가 있다. 이 다리는 폭이 1미터 남짓한데 비해 길이는 140미터나 된다. 거대한 삼나무들에 둘러싸인 채 좔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캐필라노 강 위로 70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다. 난간은 낮고 다리는 끊임없이 기우뚱거리고 흔들린다.

 

강 상류에는 다리가 하나 더 있다. 단단한 삼나무 목재로 되어 있고 강 위로 3미터 높이에 있으며 흔들거리거나 기우뚱하는 위험 요소는 없다.

 

연구자들이 고용한 예쁜 여성이 간단한 설문지를 들고 공원에 가서 각각 두 개의 다리 위에서 남자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다. 대부분의 남성은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실험 도우미는 자연 풍광이 창조적 표현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중이라고 하면서 연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면 ‘시간이 더 있을 때’ 전화하라며 설문지를 다 작성한 남자들에게 종이 한 귀퉁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실험 결과, 현수교 위에서 설문에 응한 남성 18명 가운데 절반인 9명이 다시 전화를 걸어온 반면, 나무다리에서 설문에 응한 남성 16명 중 단 2명만이 프로젝트가 궁금하다는 핑계로 수화기를 들었다. (참고로, 남성 도우미가 설문지를 나눠준 경우는, 단 한 통의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다.)


결론: 높고 흔들리는 현수교는 우리 뇌에 ‘조심해, 위험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위험을 감지한 뇌는 몸에게 경계 태세를 취하도록 신장 위에 위치한 부신에 신호를 보낸다. 부신은 아드레날린을 저장하고 있으며 신경계가 명령하면 이 흥분 호르몬을 분비해, 눈 깜짝할 사이에 신체의 힘이 활성화된다. 그러면 뇌는 이러한 각성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이유를 찾는데,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엉뚱한 원인을 선택하기 쉽다. “이 여자가 내 무릎이 후들거리고 배 속이 울렁거리게 만드는 걸 보면, 내가 이 여자를 아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게 분명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엉뚱한 결론이라고? 천만의 말씀. 이러한 생각을 확실히 입증해주는 또 다른 실험이 있다.


 

 

실험 4. 사랑에 빠져서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젊은 남자들에게 《플레이보이》지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슬라이드 속 여성의 매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때 연구자는 사전에 피실험자들의 가슴에 마이크를 부착하고 그것을 오디오 기기에 연결해서, 피실험자들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남자들은 자기 심장박동이 아니라 미리 녹음해둔 박동 소리를 듣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특정 슬라이드에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를 듣도록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남자들은 자신의 심장을 더 쿵쾅거리게 만들었다고 믿은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결론: 상대를 원해서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면 상대를 원하게 된다. 고로, 원하는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무조건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장소,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곳으로 가라! 시끌벅적한 바,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컴컴한 댄스클럽, 어스름한 조명의 술집, 시끄러운 음악이 있는 곳 등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실험 5. 여자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나?

 

남성에게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흥분했거나 화가 나거나 공격적이 되었을 때 분비되지만, 극도로 기쁠 때도 수치가 높아진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외모를 더욱 남성적으로 만들어준다. 즉 턱이 각지고 턱 끝이 두드러지며 눈썹 뼈가 커져서 눈이 작아 보이게 된다. 눈썹은 숱이 많아지고 입술은 얇아진다.

 

한편 테스토스테론은 면역 체계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신체 방어력이 높을수록 더 높은 농도의 테스토스테론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결국 근육질 외모의 남성이 신체적으로 더 강하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우위에 있는 “돌쇠형”이 여성들에게 훨씬 더 인기가 높아야 옳다.

 

그러나 피실험자 여성들에게 컴퓨터 모니터 속에 주어진 얼굴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라고 하자, 많은 여성들이 주어진 남성을 보다 여성적인 외모, 즉 “꽃미남형”으로 바꾸었다. 또한 다양한 “돌쇠형”과 “꽃미남형” 얼굴들을 보여주고 점수를 매기게 하자, 남성미 넘치는 얼굴형은 저조한 점수를 받았으며, 아버지로서의 평가에서도 매우 낮은 성적을 보였다.

 

결론: 여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근육질 과다형 남성에게 본능적인 혐오감이 있는 듯하다.

 

 

실험 6. 여자들은 다정한 남자를 원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건강하고 면역력이 강한 남성, 즉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은 남성을 선호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여성들은 근육질형 남성보다는 여성적인 꽃미남형을 더 좋아했다. 생물학적 우성이 적자생존(자연선택)에서 밀려나는 이러한 결과의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이 미국의 퇴역군인 4462명의 결혼생활을 관찰한 실험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상대적으로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은 군인들은

1) 결혼한 비율이 낮다.

2) 결혼을 했더라도 바람을 피우는 비율이 더 높다.

3)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4) 이혼율도 더 높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많은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인자를 갖고 있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위험의 소지가 높기 때문에 오히려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낮은 남성, 보다 다정다감하고 충실하며 자상한 남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실험 7. 여자의 마음은 오락가락한다


비엔나의 과학자 칼 그라머는 290명의 여성에게 안드로스테논의 냄새를 평가하게 하는 조사를 했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의 겨드랑이 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냄새 인자로 테스토스테론의 분해물이다.

 

실험 결과, 여자들은 평상시에는 이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배란 직전의 여자들은 관대한 점수를 주었다. 즉 테스토스테론은 가임기의 여성에게는 매력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악취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여자들도 유전적으로는 강한 남성, 우성 인자를 많이 가진 남성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서는 문화적 사회적 이득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적 본능이 영향력을 덜 발휘한다는 것이다. 

 

결론: 여자들은 평소에는 부드러운 남자를 원한다. 그러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강한 남자를 원한다. 즉 여자는 갈팡질팡한다. 그러니 여자들은 자기 마음을 잘 살펴본 다음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실험 8.  잘 싸우고 잘 사는 비결― 5 대 1을 지켜라

 

워싱턴 대학 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고트맨의 애정연구소는 커플들의 싸움의 유형을 분석했다. 고트맨과 그의 연구팀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결혼 햇수의 130쌍의 기혼자들에게 일상의 문제거리들을 주제로 15분간 의논하도록 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했다. 이때 싸움을 진정시키거나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 긍정적인 행동 유형에는 플러스 점수를, 상대의 화를 돋우고 자극적인 말을 하는 부정적인 행동 유형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다. 


관찰 결과, 행복한 커플과 불행한 커플의 싸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행복한 커플들은 갈등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행동 유형을 보여주는 반면, 불행한 커플들은 싸움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 행동 유형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고트맨은 부부 한 쌍이 대화하는 모습을 2분만 관찰하고서, 장차 그 부부가 이혼할지 안 할지를 예측할 수 있었는데, 그 정확도가 83퍼센트에 달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행동 유형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비율’이 더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긍정적 행동과 부정적 행동의 비율이 5 대 1일 때 가장 애정 어린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싸움만 잘 하면 행복한 커플이 될까? 싸우면서도 계속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진짜 사이좋은 커플이 되기 위한 다른 비결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줄 실험이 있다.

 

 

 

실험 9. 싸움의 쟁점에 충실하라

 

심리학자 실라스는 다양한 문제로 싸우는 커플들을 보다 자세하게 관찰했는데, 그 결과 행복한 커플들은 대부분 말다툼의 주제, 즉 본론에 훨씬 잘 집중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싸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우자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싸움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다.

 

반면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를 비난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레 포기하거나, 상대의 말을 아예 귀담아 듣지 않는 경우에는 결혼생활의 만족도가 매우 떨어졌다.

 

결론: 싸울 때는 항상 지금 왜 싸우고 있는지를 잊어버리지 말것.

 

 

 

실험 10. 남의 떡보다 내 떡이 최고

 

행복한 커플은 자신의 파트너가 이상형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어떻게 극복할까?

 

미국의 심리학자 샌드라 머레이는 여러 커플들에게 지성, 유머, 관용, 사회적 능력, 인내심, 개방성, 온정 등의 특성을 열거한 긴 목록을 주고 자기 자신과 배우자의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다. 그 결과 행복한 커플들은 자기 자신보다 배우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대로 불행한 커플은 파트너에게 친한 친구들이 매기는 점수보다 더 낮은 점수를 주었다.

 

결론: 행복한 커플은 자신의 파트너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두 사람이 서로를 더 미화할수록 더 금실이 좋았다.

 

 

출처: <왜 사랑인 줄 몰랐을까>   이레 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좀 본다는 사람치고 팀버튼을 모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팀버튼 감독의 영화는 한결같이

어디 한군데 장애를 겪거나 특이한 기능을 지닌 존재가

보통 사람들의 세계로 편입해 들어가려 애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천편일률적이라 해도 과언 아닌 그의 영화를

기를 쓰고 찾아보는 마니아가 적지 않은 이유는

살인과 폭행과 범죄와 음모가 판을 치는 역겨운 세상에서 펼쳐지는

정말 재수없이 인생에 금간 인물들의 역경이

그것이 애니든 실사든, 팀버튼이라는 감독과 만나면서는

동화처럼 환상적인 세계로 재구성되고

가슴 저미는 로맨스로 새롭게 피어난다는 데 있다.

거기에 더해 팀버튼이 창조해내는 인물들 또한 가만 보면

얘들 혹시 감독의 분신이 아닌가, 싶게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기괴하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장애를 지녔거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팀버튼적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은

따뜻한 감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동정의 여지가 차고 넘친다

특히 그들이 관객들로부터 공감의 지평을 확보하는 건

타자, 혹은 삶의 조건인 상황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그 때문에 정상적인 삶의 경계 밖으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축출하고 그들에게 다시 위해를 가할지 모르는

정상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하며

그로 인해 다시 상처를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 때문이다.

 





 

가슴 저미도록 애틋한,

그러나 결국 좌절되는 소망이 야기하는 존재론적 비극이

영화의 설정이 되면서

전편을 채우는 환상과 동화적 색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비극적인 세계가 그려질 수밖에 없는

팀버튼의 영화문법은 ‘유령신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거울을 경계로 대치해 놓은 듯 상반된 두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그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유령신부' 역시

눈알이 튀어나오고 뼈다귀와 텅빈 내장을 드러내는 해골의 꼴을 하고 있지만

솔직하고 거침없이 자유로운 감정을 발산하는 유령신부의 저승세계와

장사로 떼돈 번 부모의 재산과 귀족가문의 영예를 정략결혼으로 누리며 살 수 있으나

강압적인 권위와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겉치레의 형식속에 갇힌 빅토리아의 현실세계가

흑과 백처럼 대비되어 보여진다.

과연 빅터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빅토리아,라고 답했다면 팀버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리라.

물론 이 영화에서 빅터는 빅토리아와 결혼해 정상적인 삶의 경계안으로 들어가지만

애니 산업의 상업적 측면을 고려한 해피엔딩을 한꺼풀 벗겨보면

팀버튼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유령신부가 속한 세계임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거기다 인간적으로 건강한 욕구를 지니고서

지극히 정상적인 지적 활동과 감성표현을 하며 살고있다고 확고히 믿는 이들의

이른바 정상적인 삶이란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황당무계한지

또한 가공하리만큼 잔혹하고 기괴한 것인지를

팀버튼은 유령신부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빌려온 테이프로 영화를 다시 보니 새삼 알 거 같다.

팀버튼 하면 왜 자꾸 피터팬과 후크를 섞어놓은 인물이 연상되는지,

심술궂고 유머러스하고 기괴하고 독특하고 대책없이 늙어버린

어린아이의 슬픈 얼굴이 떠오르고 마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바람구두 > [다시 보는 필화사]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대한민국의 문화적 소양과 예술가의 운명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위지혜] 2005-12-26 오전 11:12:57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 /사진제공 <데일리서프라이즈>
▲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 /사진제공 <데일리서프라이즈>

안타깝게도 지금 내 손에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없다. 구입하려고 해도 구입할 수가 없고, 학교 도서관의 자료를 검색해도 도대체 나오지가 않는다. 공권력의 가공할 위력이다. 그러니 새롭게 읽지 못한 상태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글을 써 내려갈 도리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출판되었을 때 재빨리 책을 사서 읽었다는 사실이다. 『아담이 눈뜰 때』를 접한 직후부터 장정일은 관심이 많이 가는 작가였기에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넓게 펼쳐 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샀던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마 강준만 교수가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음란성 여부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이 재판을 받을 무렵 강준만 교수는 장정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강 교수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펼칠 수 없다고 적어 두었다. 책을 구할 수 없었던 까닭에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강준만 교수가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면 좋겠군. 法典과 예술의 거리를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렇다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내 수중에 있는 것보다 강준만 교수에게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우편으로 강 교수에게 부쳤던 이유다.

먼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재판 관련 일지를 보자. 이 일지는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행복한 책읽기, 2001)의 「변론기: 장정일을 위한 변론」이라는 글 뒤에 붙어 있다. 「변론기」를 쓴 사람은 훗날 법무부장관을 역임하게 된 강금실 변호사다. 당시 강금실 변호사가 장정일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를 끄는 바 있다.

1996. 10. 10 김영사에서 출간
1996. 10. 31.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관계당국에 제재권고 결정
1996. 11. 14. 김영사 상무이사 김영범 씨, 음란물판매죄로 구속
1996. 12. 30. 벌금 700만원 선고
1996. 12. 31. 장정일 씨, 프랑스에서 귀국하여 자진출두
1997. 1. 7. 검찰은 장정일 씨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신형근 판사는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
1997. 1. 13. 장정일 씨, 음란문서제조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
1997. 5.30. 서울지방법원 김형진 판사는 작가 장정일 씨의 1심 재판(97고단172호) 선고기일에 실형 10월을 선고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정구속
1997. 7. 23. 항소심재판부(97노4055호, 재판장 한정덕 부장판사)는 장정일 씨에 대한 보석결정하여 석방
1998. 2. 18.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선고를 받고 상고
2000. 7. 상고심(대법원 98도679호)에서 상고기각 확정

논란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외설을 형법에서 규정하는 ‘음란’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를 두고 벌어졌다. 38세의 유부남과 18세의 여고생이 벌이는 가학/피학적인 성행위라든가 폰섹스, 구강성교, 항문성교 따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기성논리를 통렬하게 넘어서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의 범주에서 이해해야 한다.”라거나 “성을 통한 자기모멸을 시도함으로써 경쟁사회로부터 면책과 휴식을 꿈꾸는 한 인간의 심리적 정황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예술 장르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라는 것이 당시 문학계의 입장이었다. 물론 완고한 법원이 이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나의 경우라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며 장정일 식의 강렬한 사회성을 느낄 수 있었다. 가부장적인 체제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가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면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의 면모를 장정일 식으로 드러내는 데 필요했던 방식이 포르노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적인 방법을 도입해서 접근한다면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이런 측면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라캉을 공부하면서 내내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던 까닭도 여기서 기인한다.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과도한 훈육(체벌)과 가학/피학적인 인간의 생산 관계에 대해 공부를 해 보시라. 그리고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으시라. 짚이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이 제대로 이야기되었더라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정일도 이런 측면을 의도했던 듯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하늘연못, 1997)의 187쪽부터 193쪽까지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바로 말함」이란 쓸데없는 글”인데, 거기에는 자신의 “소설이 끈질기게 천착했던 두 개의 사항”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는 이번 소설에서처럼 나라는 개체를 낳아 준 아버지를 씹새끼로 만드는 것으로 다른 또 하나는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서 시험된 ‘그는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탁자에 놓았다’ 식의 구문은 물론이고 이야기가 지탱해야 하는 최소한의 개연을 파괴함으로써 나의 실존과 호구의 근거가 되는 소설의 모든 형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는 작가의 이 말에 동의한다. 또한,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성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라면서 “소설 속에 가장 많이 언급된 묘사가 곧바로 그 소설의 주제를 이루지는 않는다”라는 발언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준엄하신 법관 나리들이 나와 같을 리 없다. 가부장의 자리에 올라서고 싶은 그들이 어떻게 가부장적인 사회를 부정하겠는가. 그들이 ‘체제/아버지/선생님’의 질서와 맞대면하여 그 질서를 균열시키는 데 동의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들이 어느 세월에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여 한 인간의 상처와 내면을 이해하려 들 것이며, 만에 하나 그러한 방법론을 공부했다고 한들 무리 없이 작품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저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고 ‘단죄’하면 간단할 것을!

우리 사회엔 문화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더 심각한 일은 이를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꼴사납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가끔 목도하곤 하는데, 『내게 거짓말을 해봐』 필화 사건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이 나라가 나름의 세련을 구가하려면 오랫동안 지긋지긋한 시간을 기다려야겠군. 이게 정신 박힌 예술가의 운명이군.’ 아마 운명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게 맞을 거다.   

홍기돈 (문학평론가)

출처 : 컬쳐뉴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마태우스 > 악의 평범성

 

 

 

 

얼마 전에 검거된 세칭 ‘발바리’의 행각은 무척 충격적이다. 8년 동안 DNA 검사를 통해 확인된 사건만 77건, 추가로 조사 중인 사건을 합친다면 100건을 훌쩍 넘을 것 같다. 그런 파렴치한 놈에게 왜 ‘발바리’라는 호칭을 붙여 줬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나쁜 놈이 평범한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놈이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얘기까지 듣고나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피고석에 있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보고 이렇게 신음했단다.

“악(惡)이 저렇게 평범하다니….”

그는 그 경험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그런 경우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잔인한 고문에 시달렸던 김근태의 법정 증언을 보자.

“그들은 고문을 하면서도,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오늘 체력장을 잘 치렀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자식을 걱정하는 그들이 고문도 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습니까?”


꼭 사람을 죽여야만 희대의 범죄인 것은 아니다. 임수경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죽었을 때, 거기 달린 댓글들은 과연 이들이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불쌍하다. 명복을 빈다고 말해야겠지만, 솔직히 쌤통이다" (id:okokha, 하**)

"인간적인 정리로, 또 나의 인격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서도 솔직한 소회는 왜 이 정신나간 년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나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id:beqqy, 이**)

"안댔지만 국민의 저주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 같다!!!"(id:bokean, 김**)

"거참 잘 죽엇다.. 빠알갱이뇬 아들이믄 죽어 싸지~" (id:baginni 박*)

"드디어 임수경이가 천벌을 받는구나!...드디어 천벌을 받았어.죽은 애한테는 안됐지만 에미에게 천벌을 주는 것은 그것 밖에 없다. 살아 생지옥을 봐야지....이 개만도 못한 년아. 십오년 묵은 체증이 이제야 가라 앉는구나."(id:777star 김**) ]

다행히 이 악플러들 중 몇 명은 처벌을 받았지만, 이들은 대개 40-50대의 고학력 인사이며, 그 중에는 대학교수까지 있다고 한다(참고로 이 일로 인해 기소된 사람 중 서모씨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희대의 범죄자일수록 “평소 우울하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파괴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진단을 받아야 안심을 하지만, 원래 악은 이렇듯 평범하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 속에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사회가 갑자기 소름 끼치는 곳으로 느껴지지만,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내 안에도 그런 악의 씨앗이 있는 건 아닌지 잘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마태우스 > 독서예찬

책읽는 여자가 왜 위험한 걸까?

 

 

 

<인더 풀>이라는 책의 한 대목. 주인공인 유타는 휴대폰 중독자인데, 불량배들에게 그만 휴대폰을 빼앗기고 만다. 그 바람에 며칠간 휴대폰을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니 “어, 그러니?”라는, 매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유타 자신은 남들이 연락을 했을까봐 걱정했지만, 그 기간 중 그에게 문자라도 보낸 사람조차 없었던 것.


자칭 인기를 먹고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휴대폰을 분실한 후 일주일 있다가 개통을 하면서 “휴대폰 다시 만들었어!”라고 여러 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자주 연락하는 애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었다. 인기 속에 살고, 끊임없이 남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술을 먹고 휴대폰을 분실해도 별반 초조해하지 않는다.


유타에게 글래머 간호사 마유미가 묻는다.

“너, 진짜 친구, 없지?”

“아네요!”

유타는 반발한다.

“얼마나 많은데요. 이번 토요일에도 벌써 약속이 되어 있다구요.”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인 그 토요일 오후, “유타는 혼자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집에 있다가 혹시 전화라도 걸려 오면, 실제로는 아무 예정도 없었다는 것이 들통나고 만다.”


중학교 때까지, 난 거의 친구가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고교야구를 보러가고 싶었지만,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그냥 라디오로 들어야 했다. 어쩌다가 친구들이 모임에 끼워주는 날이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어영부영 껴서 이소룡이 나온 <사망유희>를 보러 갔고, 야구장에 한번 갔다. 그게 아마, 내 나들이의 전부였을 거다.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도 한번도 없다.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난 유타의 처지에 공감이 간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유타는 고백을 한다.

“내게도 친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외톨이라는 게 들통난 것 같습니다....중학교 때,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었습니다. 등교거부도 했습니다. 고교생이 되어 성격을 바꾸고 친구를 사귀려고 입학한 후부터 밝게 행동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내가 유머를 시작한 것도 친구를 사귀기 위함이었다. 그 효과는 고교 때부터 나타났고, 지금 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약속도 예약만 받으며, 나랑 당일 약속을 한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주머니에 돈이 많은 사람이 밥을 안먹어도 배가 안고픈 것처럼, 거대한 조직의 보스가 된 나는 전화가 한통도 걸려오지 않는 날에도 전혀 외롭지 않다. 그 옛날의 크리스마스 날처럼, 약속이 있는 척 밖에 나가서 전자오락을 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나도 깨닫는다. 친구란 존재도 영원함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간은 결국 혼자며, 아무리 주위에 친구가 많더라도 혼자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책은 술보다 훨씬 좋은 친구이며, 내가 뒤늦게나마 책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