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독서예찬
책읽는 여자가 왜 위험한 걸까?
<인더 풀>이라는 책의 한 대목. 주인공인 유타는 휴대폰 중독자인데, 불량배들에게 그만 휴대폰을 빼앗기고 만다. 그 바람에 며칠간 휴대폰을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니 “어, 그러니?”라는, 매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유타 자신은 남들이 연락을 했을까봐 걱정했지만, 그 기간 중 그에게 문자라도 보낸 사람조차 없었던 것.
자칭 인기를 먹고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휴대폰을 분실한 후 일주일 있다가 개통을 하면서 “휴대폰 다시 만들었어!”라고 여러 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자주 연락하는 애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었다. 인기 속에 살고, 끊임없이 남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술을 먹고 휴대폰을 분실해도 별반 초조해하지 않는다.
유타에게 글래머 간호사 마유미가 묻는다.
“너, 진짜 친구, 없지?”
“아네요!”
유타는 반발한다.
“얼마나 많은데요. 이번 토요일에도 벌써 약속이 되어 있다구요.”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인 그 토요일 오후, “유타는 혼자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집에 있다가 혹시 전화라도 걸려 오면, 실제로는 아무 예정도 없었다는 것이 들통나고 만다.”
중학교 때까지, 난 거의 친구가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고교야구를 보러가고 싶었지만,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그냥 라디오로 들어야 했다. 어쩌다가 친구들이 모임에 끼워주는 날이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어영부영 껴서 이소룡이 나온 <사망유희>를 보러 갔고, 야구장에 한번 갔다. 그게 아마, 내 나들이의 전부였을 거다.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도 한번도 없다.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난 유타의 처지에 공감이 간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유타는 고백을 한다.
“내게도 친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외톨이라는 게 들통난 것 같습니다....중학교 때,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었습니다. 등교거부도 했습니다. 고교생이 되어 성격을 바꾸고 친구를 사귀려고 입학한 후부터 밝게 행동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내가 유머를 시작한 것도 친구를 사귀기 위함이었다. 그 효과는 고교 때부터 나타났고, 지금 난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약속도 예약만 받으며, 나랑 당일 약속을 한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주머니에 돈이 많은 사람이 밥을 안먹어도 배가 안고픈 것처럼, 거대한 조직의 보스가 된 나는 전화가 한통도 걸려오지 않는 날에도 전혀 외롭지 않다. 그 옛날의 크리스마스 날처럼, 약속이 있는 척 밖에 나가서 전자오락을 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나도 깨닫는다. 친구란 존재도 영원함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인간은 결국 혼자며, 아무리 주위에 친구가 많더라도 혼자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책은 술보다 훨씬 좋은 친구이며, 내가 뒤늦게나마 책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