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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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장

최인훈

 

p12 사람은 초목이나 짐승과 달라서 이 짐작이라는 것을 나면서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서 태어나기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19 풍문을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35 허구한 나날 앉은 자리에서 뭉개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삶은 그저 살기 위하여 있다. 이 말이었다.

 

35 온누리가 덜그럭 소리를 내면서 움직임을 멈춘다. 조용하다. 있는 것마다 있을 데 놓여져서, 더 움직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다.

 

36 쉴새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

 

38 보람있는 일이라면 도깨비하고 흥정해도 좋다고 뽐내지만 도깨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44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 있다. 두툼한 책 마지막 장을 닫은 다음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눈에는 깊은 밤 괴괴한 풍경이 무언가 느긋한 이김의 빛깔로 색칠이 되곤 했다.

 

44 여자를 껴안고 뒹구는 건 사람의 여러 가지 몸부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자 말고 싸움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알렉산더가 되고 징지스칸이 된다. 어떤 사람은 물질 사이에 걸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갈릴레이가 되고 뉴턴이 된다.

 

48 지식을 다룬다면 어항 속 들여다보듯 뻔한 그녀들의 속이, 성이라는 자리에서 보면 보석처럼 단단한 벽으로 바꿔지고 말아, 관찰이라는 빛은 그 벽에 부딪혀 구부러져서는 그만 간데없이 되고 만다.

 

54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을 품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55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 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서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57 그는 밀실에만은 한 떨기 백합을 마려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마지막 숨을 구멍이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에겐 좋은 아버지였어요. 국고금을 덜컥한 정치인을 아버지로 가진 인텔리 따님의 말이 풍기는 수수께기는 여기 있는 겁니다. ,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추어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67 속에서 탈대로 타고 난 무서움의 잿더미에 미움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 남은 재를 고스란히 적시며 명준의 온몸에 스며간다. 부드득 이 가는 미움보다 더 차분하지만 사무치는 미움이다.

69 아버지는 그에게 튼튼히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옆방에 살고 있다. 옆방에 사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명준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그에게 대신 행패를 부린 것이었다.

71 와 웃음이 터진다. 명준은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내려다본다. 아버지 이름이 놀림받는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태어나는 것을 알았다.

 

74 이명준, 자 보람있는 삶이 끝내 자네 것이 된것야.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벅찬 불안에 살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루의 시간이 어두운 무서움으로 짙게 칠해진 알차게 익은 시간이란 말일세. 자네가 그렇게 조르던 바람이 아닌가. 이제 심심하단 말은 말게.

75 적어도 나의 방 자물쇠는 장난감이었던 모양이다.

 

76 이런저런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하였으나 어느덧 쉼 없이 밀려드는 잠의 물결 속에서 몇 번 꼴깍꼴깍 허덕이다가 끝내 깊은 밑바닥으로 푹, 가라앉아버린다.

 

77 자기 삶이 어떤 나무에서 익을 대로 익은 끝에 곱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가지에서 뚝 떨어지기 앞선 얼마 동안, 새로운 움직임을 마련하는 숨결이 아무래도 본인에게 새어나게 마련이다. 두터운 벽을 가진 방안에서 주고받은 말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안다까움을 주는게 사실이라면, 문득 귀찮아져서 엿듣기를 그만두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명준은 자기 밖에서 또 안에서 아끼던 물건이 흠짓흠짓 허물어져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78 조건을 쑥 뽑은 다음에 그 어떤 알맹이가 남는다는 건, 곧 아름다운 미신이다.

 

83 먹이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련만 떼어놓고 보기에는 날개를 기울이며 때로 내려꽂히고 때로 번듯 뒤채이며 스르르 미끄러지는 노곤한 그림 한 폭이다.

 

85 자기 품에서 숨을 할딱이던 바로 그 몸이라는 일은 그에게 자랑스러움을 준다.

 

109 윤애라는 사람 대신에 뜻이 통하지 않는 억센 한 마리 짐승을 보는 것이었다.

 

110 그의 말이 미치치 못하는 어두운 골짜기에 그녀는 뿌리를 가진 듯했다.

 

117 인민이란 그들에게 양떼들입니다. 그들은 인민의 그러한 부분만 써먹습니다.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137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따분한 매스게임에 파묻힌 운동장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내야 할 행동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참으로 그것은 밀림이었다. 그럴듯한 오솔길을 발견했다 싶어 따라가면 어느새 그야말로 일찍이 다져진 밀림속의 광장에 이르는가 하면 지금 자기가 가진 연장과 차림을 가지고는 타고 내리기가 어림없는 낭떠러지가 나서는 것이었다.

 

138 목숨에 대한 사랑과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할 모양이었다.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과 학생이었으며 아버지는 북한으로 월북해 버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지인인 은행장 집의 남매 영미와 태식과 함께 지내며 살아간다. 나름의 부유층과 한가롭게 어울리면서 살아가지만 마음 속은 밀실과 광장에 대한 꿈을 지닌다.

밀실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 광장은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온몸으로 뛰어들어 운명을 만나는 공간을 말한다.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을 품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p54)

 

쉴새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P36)

 

그의 막연한 이상과는 별개로 현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친다. 월북한 아버지가 북한 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명준은 갑자기 빨갱이로 몰리고 형사에게 이유없는 폭행을 당한다.

이명준의 밀실이 점점 무너짐을 느끼며 인천에 사는 윤애네 집에 머무른다. 윤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윤애를 가지려하지만 윤애의 몸과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명준은 광장의 꿈을 안고 월북한다.

 

하지만 북한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념은 없고 복사과 무한 반복만 존재했다. 그들의 말에는 색깔의 바뀜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월북한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 기자가 되지만 그는 어떤 표현의 자유도 얻을 수 없었다. 자아 비판장에 서서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알았다. 떤 그럴 수 없이 값진 요령을 깨달은 것을 알았다. 슬픈 깨달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은 슬기였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명준이 유일하게 자신의 밀실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은혜였다. 은혜만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리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벽을 더듬은 듯이 느꼈다. 그는 손을 뻗쳐 다리를 만져보았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진리다. 명준은 자신의 유일한 손에 잡히는 그녀에게 더욱더 매달린다. 하지만 그녀는 명준을 속이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고위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자신이 남한에서 고초를 치뤘던 곳에서 자신이 형사의 입장이 되어 김태식을 만난다. 김태식은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은행장의 아들,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이다. 김태식은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았던 윤애의 남편이 되어있었다. 명준은 악인이 되어 감태식을 고문하고 윤애를 농락하려하지만 결국은 둘다 풀어준다.

 

낙동강 인근 전쟁터에서 윤혜와 명준은 다시 만난다. 은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명준을 찾으려 간호병으로 자원해서 이곳에 왔다. 명준과 은혜는 다시 깊은 사랑을 나눈다. 광활한 전쟁터에서 둘은 서로의 밀실이 되어 위로와 쉼을 준다. 은혜는 아이를 임신하지만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만다. 이후 포로가 된 명준은 남한행과 북한행 모두를 포기하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중립국으로 행하는 타고르호에서 명준은 갈매기를 보며 은혜와 아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유로운 푸른 광장으로 떨어지며 바다 속으로 투신한다.

 

느낀점

명준은 우리와 닮아있다. 우리는 모두 밀실과 광장을 꿈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단단한 정체성을 찾고 마음껏 두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밀실과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의 소리를 내고 싶은 욕망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명준은 자신의 밀실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 상황에 의해 무너지고 흔들렸다. 광장에 나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때도 사회는 앵무새가 되길 강요했다. 밀실도 광장도 자신이 생각하는 짐작이나 예상과는 달랐다.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허무했고 괴로웠고 슬펐다. 유일한 연인만이 자신의 실체였고 진리였다. 하지만 그 여인마저 죽자 명준은 그 어디에도 존재할 곳이 없었다. 밀실은 허물어졌고 광장의 동상은 넘어졌다. 그는 자유를 향해 은혜와 아이를 떠올리며 깊은 바다로 향한다. 밀실만 풍성한 남한, 무늬만 화려한 북한의 광장.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곳에 나의 밀실과 광장을 들여다본다. 나에게 밀실과 광장이 존재하는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준비되는 시기, 자기다워지는 시기를 밀실에서 준비해 간다면 나의 밀실은 아직 허술하다. 또 광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고 용기내어 사람들과 함께 온몸으로 뛰어들어 운명을 맞이하고 싶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칰 큰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17)

 

최인훈 선생님은 명준이라는 주인공을 남한과 북한이라는 아주 다른 환경 속에 넣어서 각각의 장소의 낭만과 처절함을 보여준다. 각각의 곳에서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남한에서의 단단히 보장되리라 믿었던 명준의 밀실을 단숨에 어이없이 부숴버리는 형사의 모습과 북한의 아름다운 광장일거라 믿었던 환상은 색깔도 냄새도 없는 신명의 흉내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념으로 분열된 한나라에서 벌어지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참상의 모습들이 적나라하다. 남한에 살고 있는 나도 북한에 살고 있는 너도 각각의 형태로, 모습으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묻어있다. 명준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못하고 결국 흩어진다. 최인훈 선생님의 다각적인 관점과 시선들이 존경스럽다. 최인훈 선생님은 주인공의 내면의 깊은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나가고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이라는 내면의 수백개의 마음들을 쪼개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무진 기행의) 김승옥 선생님이 감각적인 문체로 마음의 겉을 쓸어 내렸다면

최인훈 선생님은 깊은 마음의 울림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 아래로 떨어졌다.

 

김승옥 선생님의 감각적인 표현과 문체들이 가벼운 바람에 날려 자유롭게 춤을 춘다면

최인훈 선생님의 묵직함은 땅으로 깊이 깊이 꺼져 어두운 지하실에 앉아 깊이 나를 사색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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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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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무진으로 가는 버스

무진에 대한 지역 설명 ( 버스에 탄 농사 관계 시찰원인 듯한 두 분의 대화를 통해)

지역에 대한 설명을 통해 무진이라는 곳이 항구로도 농촌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낮아 오륙만의 인구들이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P11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로 되어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 바람 때문에 잠이 온다는 이야기를 수면제로 풀어감 (바람= 햇볕+ 공기의 저온+ 소금기 => 수면제)

 

P13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 시간의 의인화

 

P14 하여튼 나는 무진에 대한 그 어두운 기억들이 그다지 실감 나게 되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른 아침,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역 구내를 빠져나올 때 내가 본 한 미친 여자가 그 어두운 기억들을 홱 잡아 끌어당겨서 내 앞에 던져 주었다.

---> 어두운 기억들의 소환 이유

 

P19“옛날에 손금이 나쁘다고 판단 받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기의 손톱으로 손바닥에 좋은 손금을 파가며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그 소년은 성공해서 잘 살았다.” 조는 이런 얘기에 감격하는 친구였다.

-->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사람? / 어떻게든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

 

P36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 그 안타까움, 그런 것들이 굴 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 사어: 과거에는 사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언어.

과거의 편지를 다시 읽어 볼 때 쓸쓸하다라는 단순한 감정표현의 유치함을 스스로 대변하고 있음

 

p38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 여자의 적극적인 들이댐? 묘사

 

P39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 버렸다. ---> 사랑한다란 말의 어색함 (공감)

 

P40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전보와의 주고받는 대화

 

P41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려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 주인공의 이중적인 마음을 잘 표현

 

p41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 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가는 주인공을 묘사. 스스로의 무책임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낌.

 

 차나 한 잔.

161 한 면 한 면을 천천히, 그러나 실상은 아무 기사도 보지 않은 채 넘겼다.

 

162 “화장지 좀 넣고 가세요.”

그가 방을 나설 때 아내는 둘둘 말린 휴지 뭉치에서 얼마간 찢어 내어 차곡차곡 접어서 그의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세심한 주의력을 가진 아내에게 감사와 귀여움이 섞인 느낌이 울컥 솟아나서 그는 손을 들어 아내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내의 볼 위에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침 식사 때 밥상 위에 기어 올라오는 작은 벌레를 그는 무심코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 버렸는데 그것이 아내를 울게 만든 이유였다. 아내가 더듬거리며 말하는 내용을 종합하면, 그가 요즘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뚜렷이 이상해진 증거를 댈 순 없지만 느낌으로써랄까, 말하자면 조금 전 벌레를 잔인하게 눌러 버릴 때의 그는 확실히 좀 변해버린 사람 같다는 것이었다. 그전 같았으면 에잇, 더러운 게 있군”,하고 중얼거리면서 종이를 달라고 하여 거기에 벌레를 싸서 밖으로 던졌을 거라는 것이었다. 묵과하려고 했지만, 요즘 좀 당황해하고 있는 당신을 보니까 자기마저 이상스레 불안하고 허둥겨려진다고 하고 나서 울어서 미안해요하며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던 것이다. ==> 아내의 세심한 성격과 사랑스러움

 

164 영감은 술 때문에 항상 핏발이 서 있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기어코 자기의 예상을 만족시키고 말겠다는 듯이 물어 대었다.

무슨 까닭이 있겠지. , 있구 말구. 틀림없이 있어.“ 영감은 자기 좋을대로 한마디 해 댔다.

=> 영감의 실감나게 우기는 표현

 

165 그것이 극히 잠깐 동안이었지만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던 그에게 모든 걸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계집애가 자기를 올려다보던 맑은 눈 속을 살짝 스치고 가던 게 어쩌면 연민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자 분노보다도 오히려 전신에서 맥이 빠져나가는 것을 그는 느끼면서 굳어진 얼굴로 문화부를 향하여 갔다.

===> 타인의 행동을 포착하여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인지하는 묘사

166 자기들의 데스크 앞에 앉아 있던 몇 명의 기자들이 여느 때와 달리 유별나게 반갑게 인사할 때는 그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자기도 덩달아서 지금 작별하듯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동안 그는 자기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흐르던 시간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공백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를 엄습했다. 그러고 있는 그를 문화부장이 구해줬다. ===>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묘사 그리고 다시 상황 속으로 연결

 

166 ”그려오지 않았는데요.“

말하고 나서 그는 금방 후회했다. 어쩌면 자기의 짐작이란 게 얼토당토않은 게 아닐까...... 자기의 신경과민으로 자기는 지금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나 문화부장의 다음 말은 그의 그러한 희망에 찬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 자신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빠져들다가 다시 상황 속으로 연결

 

168 ”, 듭시다.“ 문화부장이 말했다. 그들은 뜨거운 차를 홀짝거리면서 마셨다. 예의상 찻잔을 탁자 위에 잠시 놓았다가 다시 들어서 마시곤 했다 ===>형식적인 행위를 묘사

 

168 문화부장은 아마 그를 위로하느라 그런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노엽게 들리었다. 아마 저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연재 중단을 통고하러 가서는 이 만화가의 예를 들겠지. 그리고 역시 말하겠지. 우리 신문에 수난이 닥친 모양입니다. ====> 주인공의 예상들이 너무 공감됨

 

169 문화부장은 마치 아주 무식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문화부장이 지금 무식을 가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이쪽을 무식한 자로 취급하고 나서 자기가 이 무식한 자의 수준만큼 내려가 주겠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부장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문화부장의 피상적인 질문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 (공감)

 

169 문화부장은 그를 괘씸하게 여긴다는 말투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좀 전의 분노가 쑥 들어가 버리고 기가 죽어 버렸다. ”......사실 그렇죠.“ 그는 의미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는 이상스럽게도 이제야 자기가 그 신문사로부터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금 전까지도 그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생긴 혼미 속에 갇혀서 지나치게 당황했다가, 지나치게 부끄러워했다가, 기가 죽었다가 노여워했다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일련의 세밀한 자신의 감정들을 파악하고 있음

 

174 좀 걷다가 그는 신문사의 건물을 돌아보았다. 자기가 여기에 관계를 갖고 있던 그동안 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볼 때에 몇 점 더 놓고 보게 해 주던 그 회색빛 괴물을. 이 회색빛 괴물의 덕분으로 그는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긴 설명이 필요없이 자기를 신용해 버리게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괴물이 없었다면 평생을 두고 설명해도, 신용을 해 줄지 말지 모를 사람들로 하여금 말이다.==> 신문사를 괴물로 표현하지만 신문사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이 묻어있다.

 

175 그가 만일 친한 친구와 같이 들어왔더라면 그 친구에게 저 여자 굉장히 색이 강하겠는데.“라고 했을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 타인을 빌린 표현 (보다 객관적으로 느껴짐)

 

181 그는 돌아서서 나와 버릴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창피하다는 느낌보다도 더 큰 것이 그를 끌고 가서 그를 문화부장 앞에 세워 놓았다. ===> 더 큰 것 ( 체면보다 시급한 먹고 살아야 하는 일 )

 

182 다방에 들어가서도 그는 오랫동안 화제를 공전시키고 있었다. ===> 반복을 공전으로 표현

 

184 문화부장의 손에서 돈이 벌써 마담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 생생한 표현력

 

191 그는 두 팔로 아내의 상반신을 껴안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기도 아내를 때리게 될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앞으로 다가올,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무서워져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다. 그는 아내를 껴안고 자기의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를 불행에 대한 염려가 너무도 이해되고 공감되어 나도 함께 마음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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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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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건강을 위해 유기농 식단과 비타민을 챙기고 매해 좀 더 성장하고 나아지고 싶은 향상심에 생일마다 작은 계획을 세운다. 상대에게 행여 폐를 끼칠까 싶어 약속시간은 항상 5분전에 도착하고 바쁜 동생의 상황을 고려해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택한다. 자신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건진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혹시라도 오만함이 있었다면 반성했다. 그녀는 그렇게 겸손하고 사려 깊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만16세 여고생과 조건만남을 갖고 음주운전 사고로 그 여고생이 죽었지만 이 모든 사실을 눈감았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남편과 아들'은 그저 무용담 정도로 이 사건을 맞이했고 꽤나 품위 있고 사려 깊은 그녀도 결국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낸다. 검은 정장을 입고 그 여자아이의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만 그들의 슬픔을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결국 타인의 삶이다’라고 말한다. 인맥과 돈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듯 과거의 무용담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남편을 거들어 한우 꽃살과 와인을 꺼낸다.남편과 다정하게 잔을 부딪히며 남긴 그녀의 마지막 말,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자책과 고백의 말로 들리지 않았다. 가진 자의 자기합리화, 비겁한 윤리일 뿐이다. ‘나는 이런 인간이야, 어쩔 수 없지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그녀의 상황이면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큰? 죄책감을 가질 수는 있었겠지만 아들을 마땅히 벌받게 두진 못했을 것 같다. 결국 같다. 나도 똑같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고 비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녀처럼 품위를 갖고 싶었다. 좀 더 겸손하고 배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건강을 챙기며 보다 관리된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녀처럼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원하고 정체되기싫어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비일상적인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내 마음은 분명 말하고 있다. 옆집아이보다 내 아이가 더 소중하다 라고.

책장을 덮으며 지금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많은 것들(배려,겸손,예의..)이 그저 평화로운 내 삶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에 당혹스럽다.

“지난주 손님들하고 갔었는데 양식도미를 내놓더라고 품위없이 말이야.”

품위를 따지는 현우 아빠를 보며 진짜 품위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품위 : 사람이 갖추어야할 위엄이나 기품(고상한 품격;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정의를 보니 그들은 품위있는 척만 했지 진짜 품위는 없었다. 사람 된 바탕으로 기본적인 됨됨이가 부족했다. 적어도 죽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은 있어야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 듯 잔을 부딪히며 스스로 면죄부를 내리는 그들은 누구보다 천하다.

우연적인 인연의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비일상적인 날들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날, 내가 지키려고 했던 품위들이 '제대로' 발휘되길 바래본다. 그건 분명 외면적인 체면이나 격식이 아닌 내 안에서 뜨겁게 흐르는 것이어야 가능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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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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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그녀는 나와 비슷하다. 낮은 도덕성과 순진을 가장한 생각없음, 인생에 플랜 따윈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발이 떨어져있는 그녀. 게다가 초긍정. 버스가 안 오면 택시를 타고 회사까지 갈까말까 관자놀이가 얼얼하게 고민하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그녀는 스스로 자부심마저 느낀다. 스스로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부심. 자신에 대한 평가는 늘 초긍정이다. 김밥 집으로 나름 자수성가하신 어머니 덕분에 월급은 모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쓸 수 있는 나름의 여유가 (스타벅스 커피, 마일드 세븐 담배, 호가든 맥주...)그녀를 더 가볍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일은 거짓말이다. 각종 회사 상품의 리뷰를 진정성 있게 쓰는 일. 그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여긴다. 써보지 않은 물건에 대해 애정을 담은 간곡한 거짓 후기를 쓴다. 눈치챘겠지만 죄책감 따윈 없다. 그저 밥벌이 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일은 일일뿐 자신의 도덕성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거짓후기를 팔아 그녀는 스스럼없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마일드 세븐 담배를 피우고, 호가든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 그녀의 아파트 윗층에서 쿵쿵쿵 소음이 들려오고 소음을 확인하러 윗층으로 올라갔을 때 선그라스를 쓰고 나온 할아버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분명 그분 같다. 누구나 아는 하지만 이미 죽은 (박정희 대통령). 이 어이없는 발상이 독자들에게 웃음과 황당함을 자아내지만 그녀는 위층 할아버지가 그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글은 계속 이어진다. 그분이 분명 그분임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소음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찾아간다. 할아버지는 소음이 없다는 리뷰를 보고 샀다며 운동기구를 보여주신다. 그녀가 동참했던 리뷰, 할아버지는 그녀의 정성을 다한 거짓리뷰의 피해자였다. 자신의 거짓말이 실제 누군가의 피해가되는 걸 비로소 체험한 그녀는 일을 그만둔다.

나도 그랬다. 가벼운 거짓말이나 사소한 비도덕적인 행동은 크게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 나의 비현실적 낙관성은 무슨 상황이든 합리화하기에 적합했다. 그녀도 그랬다. 가짜로 꾸며대는 리뷰정도야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나름 그 안에서 정성 다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녀와 나 뿐만 아니라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지 모른다. 내가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내가 꾸며대는 거짓은 그저 나의 밥벌이일 뿐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엔 관대한 편이다. 그녀도 자기중심적인 비윤리적 행동들이 세상에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지 눈곱만큼도 인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윗층 할아버지의 피해사례를 보며 그제서야 운동기구에 대한 솔직 후기를 남기고 일을 그만둔다. 그렇다, 가까운 대상에겐 피해를 덜 끼치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금 먼 일들은 스스로 눈감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좀 더 깊이 사유하고 스스로에게 좀 더 높은 윤리적 잣대를 세워야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간접적으로라도 피해 받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한다. 이정도야, 누가 본다고, 어차피 그게 그거야 등 자신에게 관대한 마음의 외침을 막아야한다.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폐가 된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인식해야한다. 그래야 ‘나하나 정도야’ 하는 가벼운 마음을 붙잡아 누를 수 있다. 세계인 모두가 ‘나하나 정도야’ 라고 하면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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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최미양 옮김 / 율리시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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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훈육 (자기 훈육은 자기 확장의 과정)

a.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먼저 고통을 맞고 극복함으로 즐거움 증가시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자기절제(자기 돌봄)의 초석이다

부모의 일관된 사랑과 돌봄으로 획득

b.책임지는 것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수동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자녀에게 조차 기댄다.

·어른다움에 따르는 자유와 권력이 우리 것임을 알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과 자기 훈육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막중한 책임을 갈망하는 어른다운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어느 특정 부분만 어른이 될 뿐이고 완전한 성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c.진실에 헌신하는 삶 – 지속적으로 쉼 없이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 하는 삶

(자기 성찰과 사색의 과정)

d.균형 잡기 –철저히 정직/ 진실을 모두 밝히지 않는 능력

전적인 책임/ 책임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

즐거움을 미루고 미래 내다 보기/ 현재에 살고 즉흥적으로 행동

2.사랑 –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 시켜 나가려는 의지

사랑의 참된 목적( 영적 성장이나 인간의 발전)

사랑은 노력 없이는 안 된다. / 행위로 표현된 때 사랑이다.

노력과 용기가 가미 되지 않으면 사랑의 행동이 아니다./ 그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중요한 방법- 열심히 들어주는 것

온 정신을 기울려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두어 모든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 (사랑의 행동)

앞으로 나아가거나 성장하면 기쁨과 함께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누구나 사랑 받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며 사랑 받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을 잘 훈육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어감으로써 사랑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은총

영적 성장 과정은 힘겹고도 어렵다.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을 극복하고 습성을 유지하려는 자연의 저항을 이겨내야 이루어진다. 저항과 싸워야 한다.

영혼의 성숙을 방해하는 것 ; 게으름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현실을 변화 시키는 데 따른 두려움

현재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를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

힘들이지 않고도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비겁한 지름길은 없다.

악한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게으름의 자각은 영적 진보를 가늠한다)

영적 힘 – 인식의 최대치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좀 더 위대한 앎의 경지란 어둠 속에서 번쩍 불빛이 빛나는 것 같은 깨달음으로 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조금씩 오며 그 조금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다. 그들은 겸손한 학생이다. 영적 성장의 길은 평생 걸리는 배움의 길이다.

은총은 사랑으로 세상을 돌보고 수고하는 삶,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 에로의 부름

내 평화는 세상의 그것과 같지 않다. (평화에는 책임과 의무와 임무가 뒤따른다)

영적 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 생각과 행동에서의 독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길은 반드시 혼자 가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뛰어 넘어야 한다.

이 책은 삶의 지침과 방향을 제시한다. 자기 훈육은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 자기 확장 과정은 고통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자기 절제와 자기 책임 철저한 자기 성찰을 수반하며 이것들을 때에 따라 균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자기 확장의 의지는 사랑으로부터 온다.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삶은 고해다로 첫 문장을 시작해 삶은 그리 녹녹치 않으며 자기절제와 책임, 성찰로 의식 성장을 해나가라고 말한다. 이 책은 삶의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모든 일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평화를 누린다.’ ‘은총을 받는다.’ 나에게 이런 문장들은 이상적이고 아름답기 만한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오면 기쁘기보다는 “제기랄”이란 표현이 더 가까울 거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피식 웃었지만 늘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게만 생각하는 나로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 ‘제기랄’의 표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책임과 의무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어떤 일을, 책임진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해 주도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현실을 불평하며 고통을 회피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한다. 그래서 부름 받은 자는 많지만 선택 받은 자는 적다고 말한다. 자기절제, 자기책임, 자기성찰 그리고 사랑 어느 것 하나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들이다. 자신을 넘어선 영적성장 그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고된 길이었다. 또한 반드시 스스로 또 혼자 넘어야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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