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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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그녀는 나와 비슷하다. 낮은 도덕성과 순진을 가장한 생각없음, 인생에 플랜 따윈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발이 떨어져있는 그녀. 게다가 초긍정. 버스가 안 오면 택시를 타고 회사까지 갈까말까 관자놀이가 얼얼하게 고민하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그녀는 스스로 자부심마저 느낀다. 스스로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부심. 자신에 대한 평가는 늘 초긍정이다. 김밥 집으로 나름 자수성가하신 어머니 덕분에 월급은 모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쓸 수 있는 나름의 여유가 (스타벅스 커피, 마일드 세븐 담배, 호가든 맥주...)그녀를 더 가볍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일은 거짓말이다. 각종 회사 상품의 리뷰를 진정성 있게 쓰는 일. 그녀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여긴다. 써보지 않은 물건에 대해 애정을 담은 간곡한 거짓 후기를 쓴다. 눈치챘겠지만 죄책감 따윈 없다. 그저 밥벌이 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일은 일일뿐 자신의 도덕성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거짓후기를 팔아 그녀는 스스럼없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마일드 세븐 담배를 피우고, 호가든 맥주를 마셨다.

어느 날 그녀의 아파트 윗층에서 쿵쿵쿵 소음이 들려오고 소음을 확인하러 윗층으로 올라갔을 때 선그라스를 쓰고 나온 할아버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분명 그분 같다. 누구나 아는 하지만 이미 죽은 (박정희 대통령). 이 어이없는 발상이 독자들에게 웃음과 황당함을 자아내지만 그녀는 위층 할아버지가 그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글은 계속 이어진다. 그분이 분명 그분임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소음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찾아간다. 할아버지는 소음이 없다는 리뷰를 보고 샀다며 운동기구를 보여주신다. 그녀가 동참했던 리뷰, 할아버지는 그녀의 정성을 다한 거짓리뷰의 피해자였다. 자신의 거짓말이 실제 누군가의 피해가되는 걸 비로소 체험한 그녀는 일을 그만둔다.

나도 그랬다. 가벼운 거짓말이나 사소한 비도덕적인 행동은 크게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 나의 비현실적 낙관성은 무슨 상황이든 합리화하기에 적합했다. 그녀도 그랬다. 가짜로 꾸며대는 리뷰정도야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나름 그 안에서 정성 다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녀와 나 뿐만 아니라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지 모른다. 내가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내가 꾸며대는 거짓은 그저 나의 밥벌이일 뿐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엔 관대한 편이다. 그녀도 자기중심적인 비윤리적 행동들이 세상에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지 눈곱만큼도 인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윗층 할아버지의 피해사례를 보며 그제서야 운동기구에 대한 솔직 후기를 남기고 일을 그만둔다. 그렇다, 가까운 대상에겐 피해를 덜 끼치려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금 먼 일들은 스스로 눈감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좀 더 깊이 사유하고 스스로에게 좀 더 높은 윤리적 잣대를 세워야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간접적으로라도 피해 받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한다. 이정도야, 누가 본다고, 어차피 그게 그거야 등 자신에게 관대한 마음의 외침을 막아야한다.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폐가 된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인식해야한다. 그래야 ‘나하나 정도야’ 하는 가벼운 마음을 붙잡아 누를 수 있다. 세계인 모두가 ‘나하나 정도야’ 라고 하면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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