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
제프 콕스·하워드 스티븐스 지음, 김영한·김형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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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만에 뚝딱 읽을 수 있는 마케팅 책.  

광고전략에 대해 정리하다가 머리가 아파져 머리나 식힐 겸 쉬워 보이는 책을 들었는데 의외로 꽤 재미있는 책이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쓰는 바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팔았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퀴 시장이 탄생하여 성장하고 파생 시장이 나오면서 상품을 팔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될지 고대 수메르의 맥스를 주인공으로 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앞표지에 있는 것처럼 '세일즈와 마케팅의 모든 것'이 있다거나 색다르고 대단한 전략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마케팅 까막눈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마케팅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사실 이 책에 있는 것만 제대로 이해해도 마케팅 천리길의 반은 갔다고 생각해도 될 듯 싶다. 초보자가 무턱대고 마케팅 개론을 읽는 것보다는 이런 책을 한 권 정도는 읽어보고 개론서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개론서에서 보는 마케팅 용어와 그 용어의 상황에 대해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실제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것인데 사실 초보자들은 실제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물건 한 번 팔아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개론서를 읽으면 그런 실제 상황을 떠올릴 생각도 하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제 마케팅이 이루어지는 가상 상황을 보여주어 개론서에서 배우고 여러 마케팅 책에서 보는 마케팅 전략이 실제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질지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단, 4시간만에 읽을 정도로 내용이 자세하게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막 목을 가누기 시작한 초보자들에게 결코 부족한 내용은 아니다. 각 장마다 간략하게 세일즈 포인트와 마케팅 포인트를 정리한 것도 있어서 쉽게 읽혀진다고 쉽게 쓴 책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족으로 제목인 '마케팅 천재가 된 맥스'는 좀 오버인 듯 싶다. 어떤 분도 서평에 쓰셨지만 맥스 자체가 마케팅 천재가 되었다고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라클 오지가 마케팅 천재 같아 보인다. 원 제목은 'SELLING THE WHEEL' - '바퀴 팔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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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책"과 "예술," 아니면 그냥 "예술"
키스 스미스의 북아트 - Structure of the Visual Book (2003)
키스 스미스 지음, 김나래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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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문득 머리가 복잡해진다. 언젠가 예술을 "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내게 있어 예술이란 가급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저 멀리 구름 속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예술"이요,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문득 나 자신이 늙은이 같단 생각이 든다. 흔히 "보수적"이라고 욕을 먹는 까닭도 이 때문이려나? 그렇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고 오히려 현상 유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나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서 "진보"가 항상 "보수"보다도 낫다는 법이 있을까?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내 취향을 "보수적"이라든 "고답적"이라든 그것은 이름붙이는 사람 마음대로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에 와 닿는 어떤 공통적인 요소가 (그것을 "감동"이라 하든, 혹은 무엇이라 하든 간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내가 배격하는 것은 "진보"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른바 "진보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지는 온갖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인 셈이다. 즉 나로선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현대음악보다는 차라리 훨씬 단순하고도 아름답게 들리는 바흐와 모차르트가 반갑고,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대회화보다는 차라리 렘브란트와 들라크루아가 즐겁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뒤바꿔 보면, 아마 이런 질문이 될 것이다. "어째서 20세기 현대 음악은 우리 귀에 그렇게 낯설은가? 그리고 어째서 20세기 현대 미술은 우리 눈에 그렇게 낯설은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에프라임 키숀이 이른바 "피카소"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에 대해 한 비판이다. 즉 피카소 자체는 엄숙함과 숭고함이라는 수천 년에 걸친 예술사의 이데올로기를 박살낸 위대한 혁명가일 수 있지만, 그 이후에 피카소의 정신이나 맥락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그 형식만을 따라한 아류들은 엉터리라는 것이다. 좀 가혹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는 언젠가 달리가 피카소에게 "우리를 따라하는 아류들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우리는 언제든지 원한다면 사물을 생긴 그대로 똑같이 묘사할 수 있는 그림 실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한 말과도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피카소는 결코 실력도 없으면서 되는 대로 찍찍 후려갈긴 그림을 "작품"이라고 주장한 인물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혼자서 그렇게 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파격"이고 "진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어느 누구도 "파격"이고 "진보" 아닌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진정한 "파격"이고 "진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다 현대음악이랍시고 12음계를 중심으로 해서 갖가지 "파격"과 "진보"적인 기법을 사용한 작곡을 하는 상황에서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파격"이고 "진보"일 수가 있을까? 여기까지가 내가 지닌 일종의 예술관이랄까, 내 "취향"인 셈이다. 각설하고, 이런 내가 보기에 이 <북 아트> 책은 어디까지나 <북 "아트" >였다고 생각된다. 즉 이 책은 어디까지나 책을 "오브제"로 삼은 이른바 "예술"에 대한 것일 뿐, 책 자체에 대한 배려는 없거나, 혹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 스스로 자기검열이 없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현존하는 "책"의 개념과 형태를 삽시간에 "절대적인" 위치로까지 격상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보는 양장본과 페이퍼백의 "코덱스" 형태의 역사라고 해야 기껏 1천 년을 전후했을 뿐이 아닌가. 게다가 인쇄본의 역사라면 거기서 또 반타작을 해야 하는 짧은 역사밖에 없다. 파피루스나 양피지, 혹은 죽간에 기록한 "책"에 익숙한 옛날 사람이었다면, 과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책"을 "책"이라고 인정해 줄 것인가? 결국 2천여 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이른바 "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상상해 보면, 키스 스미스의 책에서 제시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향해 "이것은 책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배짱은 내게 없다. 파피루스와 죽간에서 양피지 코덱스와 종이 인쇄물을 거쳐 현재의 전자책과 씨디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책"이라는, 즉 대중의 "소비"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상품"이라는 점에 비해, 키스 스미스가 제시하는 "책"들은 오히려 "예술"이고 "작품"의 한계에만 머물러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가 만드는 작품이 대개 한정본이거나 "유일본"인 것처럼, 결국 그는 "모색은 가능하지만, 생산은 불가능한" 책의 세계를 노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따라서 그가 상상하고, 또 우리 앞에 펼쳐보이는 "책"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만을 접기도 했다. 결국 그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건 간에, 결국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리고 우리 손에 들고 다닐 책은 어디까지나 종이로 된 신국판의 인쇄본 코덱스가 한동안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에.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바, "책을 사용한 파격적인 예술"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책등이 벌겋게 드러난 책도 있고, 아예 열어볼 수 없는 책도 있고, 책인지 앨범인지 걸레인지 구분이 안 가는 책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여기에 대해선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아니 못 하는게 아니라 판단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무엇 때문에? 위에서 장황하게 언급한 이야기 때문이라고 하자. 아니 이 책의 한 섹션에 드러난 충격적인 사진, 즉 잰슨의 <서양미술사>를 변형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완전 "난도질" 해 놓은 장면에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책 페티시즘이나, 책을 신성시한다는 태도로 생각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다만 언젠가 두툼한 문학전집의 속을 파낸 다음, 거기다 시계를 박아 넣는 이른바 "책 시계"가 한동안 유행하던 시절에 그걸 보면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몰취미함"과 "무의미함"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시계가 필요하면 시계를 하나 사면 그만이고, 책이 필요없으면 헌책방에 내다 팔거나 그냥 버리면 그만이다. 굳이 책을 훼손해 가면서 시계를 구겨 집어넣고, 그걸 보면서 만족한다는 것은 또 무슨 몰취미한 일인가.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상징하는 고답적인 미술사적 이데올로기나, 뭐 기존의 권위 같은 것에 도전한다는 저자의 설명을 못 알아들을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성경이라도 불태울 수도 있긴 하는 거다. 하지만 과연 그런 방법 밖에는 어떤 "예술적 표현"이 불가능했던가? 편협한 생각이고, 모자란 취향이라 비웃음을 받아도 그만이겠지만, 아무래도 북아트라는 것이 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겠다는, 그리고 예술이란 것, 혹은 이른바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지는 듯한 체험을 이 책 한 권을 통해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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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작가 12인의 초상
이상진 지음 / 옛오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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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의 '날개'를 좋아하고 채만식의 '왕치와 소새와 개미와'를 즐긴다. 둘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처음 읽은 작품들이다. 그런데 사실 근대문학은 문학을 즐기는 학생이 아니면 종종 수능을 위한 지문으로 전락해버려 안타깝다. 근대문학을 즐기기도 전에 시험을 위해 분석하고 달달 외워 결국 근대문학=수능지문이 되어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결코 수능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목표로 쓴 책은 아니지만 수능을 위해 꾸역꾸역 근대문학을 읽는 학생들에게 근대문학을 좀더 가깝게 와 닿게 하기 위해서 참 좋은 책이다. 시랍시고 이상한 이야기나 잔뜩 늘어놓는 것 같은 이상이 실제로도 기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애인과 떠나버린 여동생에게 오빠로서 섭섭한 마음과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기도 했고 대표적인 토속적 작품으로 공부하는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이 사실은 빠다냄새나는, 그 당시로 보면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는 것, 해학과 골계미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쓴 채만식은 한깔끔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며 교과서 속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작가와 작품들이 피가 돌고 살이 붙어 성큼 우리의 일상 생활에 들어오게 된다.

실제로 이 책을 중학생인 남동생에게 읽게 했는데 남동생의 반응은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열심히 외우던-_-;; 소설의 작가들이 실제로 이렇게 저렇게 생활하던 사람들이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를 틈타 얼른 김유정의 단편집을 주었더니 '동백꽃'을 읽고 와서는 작가가 짝사랑만 하더니 점순이가 달려들듯 자기도 달려들고 싶었던 거 아니냐며 킥킥 거렸다.

이 책은 각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그리 길지 않고 끝에는 그들이 쓴 잡문이 실려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각 작품이 작가에게서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기에 좋다. 작품을 읽는 것이 능사도 아니고 작품을 그 자체로서 음미할 줄도 알아야겠지만 사실 공부에 지쳐 근대문학을 읽는 재미를 놓쳐버린 학생들에게 그 재미로 이끌어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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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이상의 도서관 50
최정태 글.사진 / 한길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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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도서관'이라는 제목도 관심을 끌었지만 왠지 낯익은 제목이어서 손에 들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 서문을 읽는데 아하~ 이 책의 저자인 최정태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The Most Beautiful Libraries in the World)'란 화보집을 보고는 가 보고 싶은 도서관을 찜해 여행하고는 이 책을 쓰신 것이다. 나 또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다가 커다란 흰 색 책이었던 그 화보집을 우연히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읽다가 내가 여기를 다녀와서 책 한권 내야겠다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났다. 그런데 누군가 벌써 그 화보집을 읽고는 다녀와서 책을 냈구나 하고 생각하니 으음, 기회가 날라갔군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서관을 주제로한 책(문헌정보학과의 전공책말고)이 나왔다는 것이 참 반가웠다.

이 책은 도서관 기행을 주제로한 교양서로서 읽기 어렵지 않고 온갖 호화로운 사진들이 눈보신을 해 주어서 별 다섯개를 주었다. 도서관 내부의 구석구석과 운영시스템 등을 자세히 알고 싶은 나에게는 2% 부족한 것 같았지만 세상에 이런 도서관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충분하다. 도서관의 사진들은 대표적인 것들로 되어 있는데 주로 건물 밖을 찍은 것이 많다. 많은 도서관이 내부를 찍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는데 도서관이자 박물관, 그리고 그 자체로 지키고 가꾸어야 할 유산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했다.

저자는 단순히 도서관의 역사와 소장책 목록 등을 소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도서관이라는, 책을 담는 건물에 관한 책답게 때로는 건물의 도면도 곁들이며 도서관 건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 놓았다. 도서관이란 그 안에 담은 책의 양과 질, 운영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담는 건물도 그 자체로 중요하다. 나는 독서란 단순히 책에 있는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책 그 자체와 정신으로서의 책 내용이 독자의 몸과 마음에 함께 융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도서관은 이 책과 독자를 만나게 해 주고 그들이 융합하게 되는 환경이 되는만큼 그 건물은 단순히 읽기 쾌적하다던가 책보관에 좋다던가 하는 것을 떠나 독자와 책의 융합에 어울리는 의미와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모두 실패해버린 우리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어야 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름다운 도서관에 대해 절절한 마음이 되어 버렸으니 어찌보면 학교 도서관이 이 책의 독서에 한 몫 한 건지로 모르겠다.

내용 중에 특히 좋았던 것은 우리나라의 규장각과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을 넣은 것이다. 저자도 읽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화보집을 읽을 때 참 안타까웠던 것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았던 선비의 나라인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정신을 구현한 아름다운 형태인 도서관이 있을텐데 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규장각과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국사교과서에도 잠깐 나와서 모르진 않지만 도서관으로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아서 이 책에 그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 참 반가웠다. 또 도서관이란 것이 그것을 설립하고 이용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빼놓지 않고 설명을 해 주어서 단순히 특정 도서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는 도서관이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떤 의미가 되어야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좋았다. 예를 들어 베네딕트 수도원 도서관을 보여줄 때는 베네딕트 수도사들에게 책과 도서관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규장각을 보여줄 때는 그곳에서 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떠한 자부심으로 일했는지 말해준다. 글의 끝머리에는 그 도서관의 인터넷 주소를 넣어서 인터넷으로나마 특정 도서관의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책의 맨 뒤에는 참고 문헌도 있어서 이 책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어 또 뭔가 연결해 읽고 싶을 경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이 저자가 서문에서도 쓴 것같이 다른 여러 도서관도 다녀와서 후편도 꼭 나와 우리나라 사람이 쓴 도서관 기행서의 물꼬를 트길 바라며 아쉽게나마 참고문헌에 나온 책들을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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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의 장미 1 - 새로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이케다 리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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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처음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고 유리가면과 함께 나를 미치게 했던 만화광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 후로 프랑스에 대한 모든 이미지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그림체로 떠오르니... 고등학교 때 전공인 프랑스어에 대해 발표할 때 프랑스 혁명에 대해 발표하는 조가 발표자료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열심히 읽는 것을 보고 그 영향력에 새삼 경악했던 적이 있다. 오스칼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실제 인물이었던 왕과 마리 앙투아네뜨, 페르젠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성격 및 감정 묘사는 그들의 실제성격이 정말로 그랬다고 믿게 할 정도로 가슴에 파고들었다(물론 작가가 고증을 거쳐 묘사하긴 했으나 만화에서의 과장이라는게 있으니...)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보면 그렇게나 예뻤던 그림들이 다소 유치해 보이긴 하나 옛적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나를 다시 그 방대한 역사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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