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플라이 대디 플라이' 중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겠지. 애석하게도 말이야. 고작 자신의 반경 1미터 정도만 생각하고 태평하게 살다가 죽으면 행복할 텐데 말이야"

"기초란 뭐라고 생각해?. 필요 없는 걸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거야. 지금 아저씨 머리와 몸에는 쓸데없는 게 가득 들었어. 그래서 우선 기초 다지기부터 시작해야 해. 알았어?"

"절대로 적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돼! 설령 인사를 할 때라도"

"드래곤 볼도 못 봤어? 정말 재미없군."

"어쨌든 기초를 만들어야해. 시작"

<85~87쪽>

 

 

"인간의 몸에는 세포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

"약 60조.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 세포를 얼마나 사용했을까? 사용하지 않은 세포를 얼마나 남겨두고 죽어갈까?"

"그만둬도 상관없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

<88~89쪽>

 

재일교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중 주인공 박순신이 샐러리맨 스즈키 하지메에게 한 말이다. 고삐리 박순신은 그랬다. 아저씨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겠다고.... 결국 그의 트레이닝으로 다시 태어난 스즈키를 보며 개봉한 영화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주인공 이문식이 오버랩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스즈키나 이문식이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기초가 필요하다. 내 삶의 집을 튼튼하게 지울 기초공사.... 박순신이 일깨워준 기초의 중요성을 새삼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2006. 8. 21 이용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아다니는 김C의 휴지통 비우기
김C 지음, 이외수 그림 / 해냄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잡서(?) 몇권을 주문했는데 그 중에 한 권이 <날아다니는 김C의 휴지통 비우기>였다. 아마도 엠비시 에프엠 밤 12시에 진행하던 <김C 스타일>의 홈페이지에 썼던 일기 형식의 글을 모은 듯한데 그 짧은 글들이 '구와바' 광고로 희화된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기꺼이 선입견을 버리게 만든다.

그의 글중 한 꼭지를 옮겨본다.

<충고>

아마도 반복될 것이다. 악습을 그대로 넘겨줘야 하는 우리도, 그걸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어린 친구들도.
어떤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발 아래 구르는 돌멩이도 이유가 있는데....."
제발 졸업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의 목적의식을 갖고 대학에 가서 공부했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추억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대학 말고도 젊은 날의 추억은 얼마든지 있는게 아닌가?
쩝..... 내가 고졸이라서 이러나?

-위의 책 중에서....

일반적으로 연예인들이 대필한 책이 아닌 스스로의 사색을 담은 작고 서툰 책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 그에 대해 선입견이 있거나 작은 궁금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는 솔직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되 신선하다. 가령 디제이 이종환이 에프엠 아침프로 음악살롱에서 갑자기 중도하차하자 누구도 이름을 몰랐던 젊은 가수 김C가 마이크를 이어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이종환 같은 내공의 소유자에게 비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음악적 시견을 바탕으로 아침 주부가 주로 청취하는 그 프로를 젊게 만들었다. 

음악살롱에서의 인기는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심야 젊은이 프로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 사건이라는 것이 바로 "제 방송에 대해서 좋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으실 것으로 압니다. 만약 그러신 분이 있다면 다른 프로를 들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라는 요지의 발언을 생방송 라디오에서 했다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 마침 방송개편을 맞아 심야로 자리이동을 했고 그것이 12시에 진행된 <김C 스타일>이었다.

아침프로와 마찬가지로 이 프로에서도 자신의 음악적 동료인 일본인 하세가와를 초대하여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 솔직한 애정상담을 청소년들에게 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성시경이 새로운 이름으로 꾸며가고 있지만 디제이 김C의 역량에 대해서는 누구도 더이상 돌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신선하다. 며칠전 박명수의 라디오 프로에 객원으로 나와서는 어떤 청취자의 출산장려에 대한 질문을 예리하게 분석해 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에게 출산 장려금 몇 푼을 더 주는 것보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김C를 시사프로 객원으로 등용시켜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너무 나갔나?)

'뜨거운 감자'다. 그가 보컬로 있는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 대중가요계에 김C는 뜨거운 감자다. 쇼 프로에 나와서 그의 황당해 하는 표정에 모두 즐기지만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이다.


책 이야기를 시작하고서 책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사람 이야기만 했다. 컴퓨터 화면상의 휴지통에 마우스 오른쪽을 살짝 클릭하고 비우기를 시도해보자. 그의 말대로 가끔은 우리가 살면서 그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김C의 솔직함은 바로 그런 시도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2006. 7. 3 밤 이용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태원의 소설은 일제시대 경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지식인들의 생활상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고 어느 기사에서 읽고는 그의 대표작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담겨있는 동명 소설집을 샀다.

그 소설집 첫번째 꼭지에는 구한말 일본에 유학했던 노인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꼭지가 바로 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사실 구보씨 이야기에서 책갈피는 꽂아져있다. 아마도 이 글에 대한 충격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어디 월급자리라도 구할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레 밤중까지 쏘다니고 하는 아들이, 보기에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일명 일제시대 전형적인 룸펜의 모습이다. 이 대목 뿐만 아니라 서두의 여러곳에서 지식인 룸펜의 삶을 목도할 수 있다. 세가지가 떠올랐다. 첫번째는 일본 근대의 대표적 작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에서도 이와 같은 신식 글쟁이들의 룸펜적 삶을 본적있다는 기억과 박태원의 소설에 앞서 춘원 이광수도 그와 같은 삶을 소설에 담았던 기억 말이다.(뭐 이광수가 나츠메 소세키를 본받아 글을 썼으니 비슷하기야 하겠지만....) 세번째는 지금의 내 삶이다. 룸펜,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땀흘려 일하지 않는 불한당(물론 어원은 다름)의 삶은 근 100년전의 구보씨의 삶과 다를바 없다. 반성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소설집 앞 꼭지에 나온 약팔이 노인네의 삶은 결국 신지식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은 자의 미래모습과 같은 것이겠지? 어쩌면 내 미래도 그렇게 초라한 노인네의 모습이 아닐까? 박태원의 소설 몇장을 읽으며 경성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보다 먼저 내 현실을 겹쳐보기하는게 행해지는 것은 순전히 '미필적 고의'다.

2006. 3. 20 새벽 이용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겨울 후배가 주고간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
속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었다.
"랍스터는 맛있을까요?
이 책이 용철이 형의 마음속에
따뜻한 '희망' 하나를 남겨두길 기도하며...."
이 책을 읽고 난후 결론은, 그래 내 안에 희망 하나를 남겨두게 ‰榮?
그것도 따뜻한 희망으로 말이다.

나로서는 방현석의 책이 이번이 세번째이다.
월간 [말]에 베트남 기행이 연재‰榮?산문 [하노이에 별이 뜨다],
그리고 영극이 형이 추천했던 [당신의 왼편] 1, 2편,
그리고 이번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
이 책은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으로,
<존재의형식><랍스터를먹는 시간><겨우살이><겨울미포만>등이
바로 그것인데, 운동권, 그리고 노동계 '학출'의 소설가 답게
이번 소설에도 주된 배경을 지난날의 시절에 배치하였고
현재 베트남에 대한 많은 문화적 교류를 추진하는 소설가답게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등장시키고 있다.

<존재의형식>은 이젠 운동권을 떠나 베트남에서 자리잡은 재우가
제도권 진출한 친구와의 베트남에서의 불편한 만남과
그 시절 그랬듯 언제나 노동의 현장에서 생활하는 다른 친구에 대한
작은 죄의식이랄까, 그런 것을 담고 있다.
여기에 함께 영화 관계일을 하던 레지투이, 즉 반레 시인이 등장한다.
그는 혁명의 전쟁에서 함께했던 벗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서 불편했던 친구 관계를 해소할수 있는 자극적인 말을 건넨다.
"어머니.... 큰 배움이 없었지만 우리 형제들에게 늘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중략)
뭐 별것 아냐.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어떻게 하면 이 친구와
즐겁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음, 함께 지낼 때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헤어질 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뭐 그런 마음가짐.....(중략)
바이 꼬 떰 롬(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랍스터를먹는시간>은 한국과 베트남의 현재형의 전형이다.
자본주의 기업으로 베트남을 다시 찾은 한국과
고용된 혁명전사 출신의 노동자를 중심으로한 당국과의 갈등은
베트남전 이후 우리의 인식의 진전이 전무했음을 보여준다.
그 회사측과 베트남 노동자(혹은 베트남 당국)간의 갈등 속에서
통역으로서 노력하는 이는 작가의 분신일 것이다.
물론 후반의 내용에서 참전 출신의 간부와 혁명전사였던 노동자의
술한잔이 화해의 메세지를 살짝 보여주기는 하지만
전쟁은 그들이 잃었던 청춘을, 죽어간 가족을 다시 불어올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재의 미래의 두 나라의 관계가 풀어야할 과제를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 첫 단계에 바로 베트남인의 베트남전은 무엇이었는지
가해자인 한국의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겨우살이>와 <겨울미포만>은 제목에 들어간 겨울의 단어처럼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전교조 출신이자만 각서쓰고 교단에 복귀한 교사의
겨울 어느날의 이야기는 고단함 그 자체이다.
그를 박해했던 교무주임을 교감으로 만나게 되면서 겪은 일들과
집안 형편으로 결국 대학에 원서도 못넣는 반장의 현실을
자신의 무능으로 받아들이는 교사 주인공,
누나를 사고낸 자가 법대로를 외치는 현실에 열받아하며 찾아간
주차장에서 목도한 가해자 차의 '내탓이요'스티커의 충격은
종교적 위선을 떠나서 우리 사회의 '겨울'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리고 <겨울미포만> 또한 90년대 중반 이후의 노동현장 이야기로
지금 2005년, 대기업 노조를 노동귀족으로 몰고
모든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기업의 악날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 안에서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잃지않으려는 노력들이
겨울 미포만에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닐게다.
그 말미가 궁금했지만 작가는 여운을 주고 맺었다.
그 결말은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비춰본다면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닌 그런 상황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방현석의 소설 4편을 읽어보았다.
'베트남' '노동운동' ..... 이 소설집의 키워드 두 단어에 덧붙여
나는 키워드 두개를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미래' '희망'이다.
베트남 인민들과의 희망의 미래,
우리 사회 구성원들과의 희망의 미래,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 이자리에서 무엇에 복무해야 하는가.

2005. 3. 22 새벽 이용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류상태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저는 류상태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
<종교문화와 종교의 자유>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는데
약 2시간정도 진행된 강의는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분의 신간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의 속에 씌여진 내용들이었지만
책 밖에서 저자의 목소리로 들은 교회개혁의 주장은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우선 강의를 시작하면서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석사과정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지만 이웃종교에 대해서 함부로 언급하기 어렵고 그 종교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훼손할 지 모르므로 종교라는 포괄적인 의미보다는 기독교(개신교)라는 단어로 바꿔서 이야기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더군요. 그러면서 종교도 인류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문화의 범주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고 했습니다.모든 종교는 인간문화의 총체적 산물이며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살리는 종교, 사람을 잡는 종교'라는 중간제목으로 이야기 하였는데, 자신의 신념체계만 절대진리인양 여기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생각을 가진 종교집단이 역사적으로 사람잡는 종교의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까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부시와 이슬람 원리주의자 빈라덴을 들고 멀게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벌인 유럽의 30년전쟁을 예로 들어 이야기 하였습니다. 여기에 강의석 사건의 대광고등학교를 또한 예로 들었습니다. 기독교 재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기관의 본연의 의무에 앞서 자신들의 신앙을 모든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만약 자신들의 학교운영에 반대한다면 떠나라는 식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비단 대광만의 문제는 아닌 우리나라 많은 미션스쿨이 갖고 있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종교'의 예와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종교'의 경우로서 슈바이처와 데레사 수녀를 들더군요. 인종과 종교를 떠나서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격체로서 대하고 섬긴 그들의 삶이 바로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인류사랑 정신으로 보았습니다.

아마도 류상태 선생에 대한 평가중 가장 혹독한 것이 그의 신앙관인 듯 합니다. 제가 책을 통해서 그리고 강연을 통해서 바라본 그는, 목사직을 반납하기는 하였지만 영원한 기독인이었습니다. 다만 종교적 다원주의를 받아들인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실제로 이슬람과 불교 안에는 매력을 느낄만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이슬람에 갖는 편견과 증오심, 더 나아가 과오를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전의 배타적인 교리에 집착하지 말고 포용주의와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자고 하였습니다. 이런 부분만 밑줄 그어 읽는다면 류상태 선생은 '사탄의 자식'이라고 표현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며 다원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떠나고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교회들의 닫혀지고 배타적인 것을 열어보자는 주장을 하며, 실제 그러한 표양을 보여주는 한신대와 기장(기독교장로회)계통의 교회들을 예로 들기도 합니다. 그의 책 뒷부분 쯤에 강의석군 사건이 일어난 후 학교 관계자가 찾아와 신앙의심하며 묻는 대목이 있더군요. 거기에서도 그는 밝혔습니다. 성서의 말씀을 믿고(다만 문자 그대로는 아님), 사도신경을 믿고(단 신앙고백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이고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을 믿고, 신앙고백적 사건으로서 성서의 기적(단 객관적  진술로는 여기지 않음)을 믿는다고 말입니다. 이정도면 그에게 던져진 '사탄의 자식' '이단'이라는 돌맹이는 무효하지 않을까요.  

그의 책이나 강연 속에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날선 것과 달리 타종파와 종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기독신자들의 반감을 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기독교의 소수 종파인 기독교장로회의 개혁적인 부분들을 좋게 평가한다든지, 가톨릭의 제2차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쇄신과 이웃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호의, 그리고 불교를 너그러움과 풍요로움을 잃지 않는 종교로 바라본다든지 하는 점은 기존 기독교문화에 익은 사람들이라면 철저한 신앙을 가진자가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저 또한 내심 "이사람 너무 좋은 점만 보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차이보다 같은 입장을 교리에서 찾아내서 공감하는 노력과 다른 종교와 정파의 좋은 점을 적극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독교를 만드는 것이겠죠.

예수교 장로회의 목사로서 학원선교하는 교목이였던 그는 현재 목사직과 교사직을 반납하고 호구지책으로 노점상을 하며 기독교 의식개혁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에서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기때문에 화풀이로 그런다는 일각의 평가는 솔직히 그에 대한 신앙적인 의심을 하는 분들보다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강의석 사건때 왜 철밥통 던지고 나섰겠습니까. 다만 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하서 이론이 있다면 토론과 대화로서 해결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강의석 사건의 조연으로 비춰진 그는 이제 주연으로 비로소 자리매김한 듯 합니다. 학원의 예배자율선택을 강의석이 문제제기 하였다면 류상태 선생은 그 본질적인 문제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그는 이것이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 극복운동의 시작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드문 한국 기독교회의 기형적인 현상들을 재고해보는 기회가 되길 진정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그 일에 뛰어들 것임을 자신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그의 신간 저서를 신학적인 저서로 바라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일련의 주장에 대해서는 꼭 그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류상태 선생이 운영하는 인터넷 공간이 있으니 그곳에서 토론하여도 좋을 듯합니다.
이미 그곳은 안티기독교인에서부터 철저한 기독신자, 게다가 이웃종교인들까지,
주장과 대안과 반론과 재반론과 건설적인 대화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불거토피아(http://cafe.daum.net/bgtopia)

2005. 7. 14 이용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