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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학부때 세미나를 하거나, (당분간 '어쨌든' 공부를 직업으로 삼았으니) 이른바 ‘학문’을 하다 보면 세상을 필요 이상으로 심오하게 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나, 이른바 변혁/개혁 이론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즉자적인 반대보다는 근본을 파헤쳐야 하며, 경박한 행동주의 보다는 과학에서 비롯하는 참된 '실천'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의 압박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액티비즘을 낮게 평가하곤 한다. 머리는 빈 놈들이 목소리만 크다는 식일까?
<멍청한 백인들>이 북미에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을 때 무척이나 놀랐다. 이 넉넉하게 생긴 아저씨가 걸출한 다큐 작가인 것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책까지 쓸 줄이야! 그것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꽤 오래 지켰으니 말이다.
한번인가, 책을 사려고 집어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주제를 다루기에는 책이 경박스러워보였다고나 할까? 어쩔 수 없이 먹물티가 발동했는지,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책이 경박스럽다는 무의식에 책을 집지 못했다. 마이클 무어의 작품을, 그리고 그의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통렬하고 강렬한 메시지들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폐부를 논하는 책이라면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는 편견을 품고 있었을 게다.
어쨌든, 이렇게 한번 멀어져 간 책을 다시 찾게 된 계기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미국 사회의 “fiction/non-fiction의 역설'을 말하며 'Shame on you, Bush!'를 외치던 그의 당당함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역시! 책은 그의 다큐 작품들 만큼이나 예리한 비판의식과 블랙 유머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통렬한 책을 만난 것이 얼마만인가? 책의 주제는 산만한 듯해도 몇 가지로 정연하게 나눠져 있다.
우선, 미국 대선에서 고어의 승리를 무대포로 짓밟은 부시와 그 공화당 깡패사단들에 대한 고발로 시작된다. 미국 대선에 대해서 우리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주로 접한 나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운 내용들이었다. 현재 부시 행정부의 참여한 내각의 숨기고 싶은 악행들 및 부시 자신의 백수스러움과 무식을 꼬집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내 흑인에 대한 구조적인 인종차별, 여성차별, 빈부격차의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익히 알려진 문제들이지만, 꼼꼼한 통계수치와 통렬한 유머를 섞는 그의 입담이 새삼스럽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은 비단 이 땅의 일만은 아닌 듯 했다. 기업에 스폰서로 변해가면서도 변변히 가르치는 것이 없는 학교에 대해 무어는 10대들에게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적들을 약올리라고 권한다.
민주당 역시 그의 면죄부를 받지는 못한다. 클린턴이 되도 않는 '흑인대통령'을 자처하면서 뒤로 깐 무수한 호박씨를 무어는 일일히 센다. 클린턴이 저지른 은밀한 악행에 비하면 되려 솔직한 레이건 시절이 좋았다고 늘어 놓으며,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정액은 그가 민중들에게 저지른 몹쓸 짓에 비하면 무시할만한 정도라고 깐죽대기도 한다.
책의 뒷부분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 그리고 랠프 네이더가 이끈 녹색당의 선거운동에 참여한 계기(그와 네이더는 개인적으로 좋은 인연은 아님에도)와 부시의 당선을 도왔다는(역시, 비판적 지지나 대동단결론은 이땅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주는 미덕은 솔직한 통렬함이다. 그는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범 지배블럭이 아니라, 공화당의 누구, 민주당의 누구이다. 그들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고 그들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부시 일가에 대한 그의 공격을 읽노라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역시 무어는 얇팍하고 표면에 머무르기에 역시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경박한 인물이 아닌가? 어쩌면, 그 무거움 때문에 혹자는 너무 깊이 들어가버렸고, 또 누구는 굴레를 아예 버리고 권력의 치마폭에 의탁한 것이 아닐까. 카메라를 든 '투사' 마이클 무어라면 이들을 가볍게 비웃고 넘어갈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