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포 콜럼바인 : 재출시(2disc)
마이클 무어 감독, 마이클 무어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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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미디어와 하나가 되어버린 (미국의) 문화풍경에 대해 '데이터 스피어'라는 표현을 썼다. 어찌보면, 섬뜩한 말이기도 하다. 즉,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프로세싱?) 자신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아웃풋팅?), 미디어의 공백을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유비쿼터스'다. 중세의 신이 어디에나 존재하듯이 이제는 미디어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러시코프는 이러한 상황에서 (주류) 미디어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고민했다. 역설적이지만 그의 전제는 누구도 미디어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는 것. 주류 미디어에 젖어서 살든, 아니면 이를 비판하든 모든 것은 '미디어를 거친 형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대단히 불쾌하고 우울한 묵시록적인 SF영화('너는 매트릭스를 벗어날 수 없다')를 보는 것 같지만, 러시코프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서 의외로 낙관적이다. 그는 데이터 스피어라는 실체가 탄생한 순간부터 주류 미디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순간 현실과의 연관을 지닌 강고한 통제 역시 흔들리게 된다(마치, 완벽을 추구한 매트릭스의 균열이 시온을 낳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주류 미디어의 의미와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내파될 가능성이 움트게 되고, 이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불온한 바이러스들이 생성된다. 그의 책 제목인 '미디어 바이러스'란 바로 이러한 작동원리를 일컫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화제의 다큐멘터리 '콜럼바인의 볼링'을 보노라면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명제가 떠오른다.

영화는 좁게 보면, 컬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것이지만, 중간 범위에서는 헌법에 총기 보유를 허용한 미국 사회의 딜레마를, 더 넓게는 세계 전체를 공포와 위험에 빠뜨리는 주범이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에 대해서는 과잉반응하는 집단 소아병에 빠진 미국의 역설을 말한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마이클 무어의 육성은 꽤나 진지할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의 주장은 명제로 추려놓고 보면 반미/반제의 구호에 가까울 정도로 앙상하고 까칠하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명제를 풀어놓는 수단은 다름 아닌 다큐멘터리이다.

마이클 무어는 역설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미국 사회의 풍경이 헐리웃, 네트워크 뉴스, 그리고 신문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현실' 보다 훨씬 희극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총기 사건이 발생한 도시에서 NRA(미국무기협회)는 반드시 후속 집회를 개최한다. 꼭두각시 회장인 찰튼 헤스턴은 주먹 높이 불끈 쥐며 외친다. '죽는 순간까지 놓치 않으리.'(생각해보면 참 골때리고 싸가지없는 짓거리다) 컬럼바인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미국은 코소보에 대해서 유래없는 폭격을 퍼부었다(인과응보?). 두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비극의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이걸 미국의 학부모들과 청교도적 정치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할 때, 그들이 청소년 범죄와 타락의 주범으로 꼽는 (컬럼바인 사건의 종범인) 마릴린 맨슨은 이 모든 사태를 명쾌하게 정리한다. '우리가 이 공포의 주범입니까?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구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흥미로운 건, 진실을 전하려는 그의 웅장한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펼치는 전략으로 데이터 스피어를 활용한다. 현실들의 조각을 이어붙이지만, 현실을 그리고 데이터 스피어를 자원 삼아서 이를 횡단하고 반성할 수 있는 유쾌한 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만드는 불손한 다큐멘터리들이 여느 극영화 못지 않게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그가 미디어들이 들어찬 '데이터 스피어'의 틈새에서 무기를 벼려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마이클 무어가 조합한 미디어 바이러스를 통해 자신들의 살고 있는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 적어도 <볼링 포 컬럼바인>에 비친 미국은 동경의 땅이라기 보다는 악몽의 땅이다.

다큐먼터리가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헤집고 들어가는 작가의 바이러스가 될 수 있될 수 있다니! 역시, 중요한 것은 전략과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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