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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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스러운 세탁로봇에게,
어쩌면 인간보다 인간다운 은결에게
무한한 애정을 넘어 애착을 품게 되었음을 고백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앞에 두고 슬픔에 젖었다.
그의 이별에 관한 소회가 실은 독자인 내게도 해당하기에
푸른 세탁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저앉았던 은결의 절망 같은 무너짐에 눈물을 흘리지않을 심장이 있을까?
우주 속 별 것 아닌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의 삶 앞에서 불멸 아닌 불멸에 가까운 생를 다하는
은결의 헌신과 의리,
어쩌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헌신에
이 겨울, 12월의 날들이 따뜻해 졌다.

아이가 훗날 자라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대도, 그는괜찮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완전히 멈출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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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로봇, 소리>가 떠오르는 좋은 소설이죠.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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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작가의 이름만으로 고른 신작은 결국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추억이나 의리로 버틸 수 없는 경우다. 책이 귀하던 시절 짝에게 빌려 밤새 읽었던 ‘인간시장’은 그만큼 강렬했다. TV도 영화도 접하지 못했던, 가난하지만 가난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던 순박함 시골뜨기에게 김홍신의 소설은 신세계였다. 이제와 생각하면 웃픈게 좀 더 양질의 책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있지만 어쩌랴.

40년 전의 그리운 기억으로 노작가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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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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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 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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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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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은 2011년 작이지만 내게는 가장 최근 읽은 그녀의 작품이므로 신선한 채소의 풀향 가득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시적인 문장들이 그림과 같아서 느리게 읽기에도 적합하다. 숨겨진 보석을 늦게늦게 찾아낸 기분이다. 늘 보물찾기에 서툴러 허둥거리는데 드디어 찾았다. 뿌듯하다.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자신의 뺨에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따금 두 손으로얼굴을 닦아낸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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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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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아 부서졌던 부서진 사람의 치유와 회복을 은은하게 투명한 수채화 처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가슴 아프지만 견딜만하고 피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슬프다. 각자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희미하지만 웃을 수 있는… 멋진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작가님 사랑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웃었고
거기에는 이해와 담담한 응시가 있을 뿐,
회한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209)

슬픔으로 열고 그리움으로 닫는 문(303)

슬픔은 차고 분노는 뜨거워서 언제나 나를 몽롱한 상태로 몰아넣고는 했다. 그런 극단의 마음과 싸우다보면 아주 간단한 일상의 일도 할 수 없었다. 길을 못찾거나 버스 번호를 잃어버리거나 걸어다니거나 물건을 사는 평범한 동작에도 서툴러졌다. 그게 상처로 부스러진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기본적인 행위부터 부수며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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