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비다. 장마다. 지하철 역에서 계단을 올라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에코백에서 얼른 우산을 꺼내 쓰는 준비성은 전에 없던 일이다. 집으로 가는 길 어디쯤에 석류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나이를 짐작할수 없는 오래된 나무에는 작은 아이 주먹만한 석류가 익어가는 중이다. 가을이 되면 발갛게 발갛게 영글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해 휘청거릴 테다. 석류는 여자의 과일이고 엄마의 과일이다. 만삭의 임부처럼 탐스럽게 영그는 늦은 가을 어느 날, 툭 소리나게 땅으로 떨어질 테다. 누군들 그 보석이 탐나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선홍빛의 구슬들이 쩍 벌러진 아구에서 쏟아질 듯 말 듯 위태로울 것이다. 

 

때로 맘씨 좋은 주인은 이웃들에게 잘 익은 석류 한 덩이를 선물하기도 한다. 오며가며 탐을 내고 보았을 천상의 열매는 그렇게 나누어 가질수록 가치를 더한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티고 돌아와 비에 흠뻑 젖은 화초들 사이로 오가며 생채기난 마음을 치유한다.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마음에도 상처는 남아있다. 나 아닌 타인과의 관계는 늘 숙제같다. 문을 닫은 마음은 또 깊은 동굴을 찾아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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