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의 말
아웃사이더 편집부 엮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성폭력의 기억, 자책과 분노 사이에서>


이 글을 읽는 지금도 사실 헷갈린다. 내가 가진 그 기억이 정말 성희롱이었을까. 기억의 저장 창고에서 퍼 올린 조각난 몇 개의 불쾌한 기억을 백지에 나열해 놓고 지그시 바라다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무지한 어린애였다. 성이 무엇인지도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다. 역시나 먹고 사는 일에 바빴던 부모님이나 시골학교의 선생님도 가난에 덜미를 잡히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다. 친절을 가장한 성인남자들의 사냥함에 속아선 안 된다는 사실도 어떤 행위와 말은 나쁜 것이라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때늦은 자각이 자책과 분노라는 이름으로 휘몰아쳐 오지만 지금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쫓아가 따질 대상도 없고 새삼 부모님을 붙들고 나 어릴 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들 원망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을 터. 그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거라는 위안 아닌 위안을 얻을 뿐이다. 아마도 어울려 털어놓기 게임을 한다면 어마어마한 비밀들을 접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구체적으로 성폭력이라고 부를 사건에 노출된 적이 없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하진 않는다. 당사자들의 고통이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태어난 곳의 울타리가 튼튼하여 나는 그런 세상은 몰라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가난도 차별도 더구나 성적인 폭력은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곤란에 처한 당사자더러 너의 어리석음과 무지, 약함 때문이라고 할 것인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장애 여성이라고 비장애 여성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이 글을 읽기 전까지 한번도 여성 장애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나는 놀랐고 부끄러웠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에 앞서 여자라는 이유로 수치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그녀들. 자원봉사자가 남자일 경우의 난감함, 장애인용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처우들, 또한 일상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을 때의 공포감 앞에는 굳이 장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같은 성이라는 절대적인 사실의 공유자로서 다르지 않다고 역설한다. 여자로서 살아가기에 좋은 세상은 장애를 가진 여성에게도 살만한 세상일 거라고 말한다. 사회의 약자, 소수로 살아가기 위해 투사가 되어야했던 사람, 그녀의 도전과 용기와 인내심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내가 만났던 장애인의 대부분은 남자라는 사실은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여성 장애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좁은 방을 배회하며 반자폐적 삶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밖으로의 한걸음을 겁내고 있는 그들이 어떤 불안이나 공포도 없이 자유롭게 바깥세상으로 나와 활보하기를, 어쩌다 운이 나빠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럭저럭 살만하더라는 말을 웃으며 들려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또 그들의 소원처럼 장애가 그들 자신이나 부모,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과 누구라도 원하면 언제라도 자립하여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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