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게 그렇더라. 흔적을 찾아서 지나간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기억 하나가 새삼 잔인하게 다가오고, 며칠을 몸살을 앓듯이 갇혀 있었다.
지금도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차라리 죽었기를 바란다. 주변에 물어보면 되겠지만 알고 싶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늘 허술한 옷차림에 막자란 수염, 내 버려두라는 듯 휘젓는 걸음이 있고 그 뒤로는 무표정의 벙어리 소녀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닌 산골짜기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홀아비와 남매가 사는데, 마누라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도망갔다던가. 그들 가족이 동네에 나타나는 날이면 사람들은 두어 마디씩 품평을 하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 한 잔을 걸치고 딸내미의 손에는 과자 부스러기를 들려주고 휘적휘적 산으로 돌아가던 사람. 기인인지 야인인지 멋대로 살면서 어린 남매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일만 시킨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나쁜 아버지가 있구나 하면서도 결국은 남의 일로 치부하던 그런 시절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남자에게도 꽃 같은 아내가 있었다. 소복같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쪽을 진 머리를 한 여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참혹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여름, 술기운에 광폭해진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동네 어귀로 끌어내어 발로 차고 때리는데, 그것을 무슨 구경거리라고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섰었다. 진흙탕을 뒹구는 흰옷과 풀어헤쳐진 머리, 여자의 비명이 몇 살적의 나였는지 모르지만 슬프고도 무서운 사건으로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 그 일 이후, 여자가 도망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벙어리인 딸아이가 남자 손에 끌려 마을로 다니러 왔다. 소문에는 원래 벙어리가 아니었는데 남자에게 맞아서 말을 못한다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은 끊임없이 입방아를 짓찧었다.
남편이 마누라를 죽이거나 말거나 구경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해서 지금 이러쿵저러쿵 떠든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없는데, 아직도 나는 남자의 뒤에 혹은 옆에 서 있는 빗질도 안한 긴 머리를 한 벙어리 소녀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소녀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 소녀는 그 삶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그 소녀는 지금 어디의 무엇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