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굴에서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미소를 지으면 얼굴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자제하게 된다. 어쩌다 기자들이 와서 인터뷰를 할 때면 모두들 카메라를 보고 웃어달라고 부탁한다. 웃으려고 하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화난 표정이 된다. 그러면 다시 한번 활짝 웃어보라고 주문한다. 잠깐이면 된다고, 안되는데도 자꾸만 부탁한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도 안 되는게 웃음이다. 이제는 얼굴을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 (233페이지)

 

어쩌면 그는 천상을 엿볼 권리에 그 자신의 삶을 던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상에서만 가능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그의 사진이 과연 현실의 세계일까 의문을 품은 이가 나뿐일까. 사진 속의 세계를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은 이가 나뿐일까. 그의 사진 속 오묘한 색채와 사랑에 빠져 기꺼이 마음을 내어 주고 몸을 던지는 것이 놀랄 일도 아니리라. 그는 성자가 된 사진가였다.

 

김영갑의 삶과 예술은 열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이해되진 않는다. 마치 악마와의 거래인 냥, 말로도 이해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황홀한 작품이면의 고독, 굶주림, 난치병의 끝없는 고통에 대해 도대체 무어라 할까. 그것은 예술가의 생애니 어쩌니 하면서 우리는 오로지 그의 작품, 사진만을 보고 감동하고 느끼면 된다고 한다면 그 또한 그럴 것이다. 그가 사랑한 땅, 제주와 제주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 그럴 것이다.

 

경이로움. 작가가 헐벗고 굶주린 몸을 굴려 몇 날 며칠을 기다려 찍은 한 장의 사진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은 의미로 충분하다. 그를 알게 되어 행복했다. 슬펐지만 설렜고, 놀랐지만 많이 두근거렸다. 쉽지 않은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그의 치열한 삶과 사진을 기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언젠가 꼭 반드시 그의 갤러리를 찾아 여행하기. 기대와 희망 앞에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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