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시는 내게 꿈같은 시간이다. 밤늦도록 잠이 없어 고민은 하되 아침의 달콤한 늦잠의 유혹은 도무지 뿌리치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학교생활도 직장생활도 늘 괴롭기만 했었다. 이런 내가 내 의지로 새벽잠을 떨구고 벌떡 일어나게 된 계기는 산에 다니면서다. 아니면 서른 이후 호르몬의 변화가 새벽잠의 달콤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인가.
일요일에 마늘을 캐러 시골에 다녀왔다. 한낮의 불볕 더위를 피해 기상은 새벽 다섯시였고 동생과 나는 덜 깬 잠을 쫓으며 총총 밭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이미 부모님은 밭에서 일을 시작하셨을 터이라 오랜만에 일을 도우러 와서 지각을 하는 면구함은 피하고 싶었다.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캐기 시작해서 허리와 다리에서 쥐가 나도록 손발을 놀렸지만, 육십이 훌쩍 넘은 엄마의 속도를 따라집기란 하늘의 별따기. 밭일, 논일에 이골이 난 엄마와의 비교가 애초에 가당찮지만 마음으로는 겅중겅중 앞으로 나아가는데 몸은 점점 땅으로 가라앉았다. 매번 절감하지만 농사 일은 정말 힘겹다.
오전 8시, 새참은 컵라면과 커피. 역시 배가 부르니 기운이 솟구쳤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캔 마늘을 묶어서 경운기에 싣고 집으로 출발.
어느새 계절은 여름이다. 뽕나무에는 검붉은 오디가 탐스럽게 열렸고 보리똥나무에도 새빨간 열매가 촘촘히 꽃인 듯 피어 시선을 붙든다. 밤톨만한 복숭아가 어른 주먹보다 커질 즈음에 다시 와서 싱싱한 자두며 토마토랑 양껏 먹어야겠다 생각하니 군침이 돌았다. 시골 인심은 예전같지 않다지만 어린시절 뛰어놀던 장소들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축축히 젖어든다.
마늘은 캐는 일보다 그 후의 마무리가 더 힘들다. 마른 잎들을 떼내고 크기별로 반듯하게 정리하여 적당한 크기로 묶은 다음에 통풍이 잘드는 곳에 매달아야 하는데, 처마 밑 그늘진 곳에 철퍼덕 주저앉아 마른 먼지를 마시자니 재치기에 콧물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엄살과 불평을 늘어놓을 군번은 더구나 아니니 미련하더라도 꾹 참아가며 해야하는 게 농사 일이다.
오후 다섯시, 거의 마무리를 짓고 샤워를 하니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다. 일을 돕는다고 마당을 뛰어다니던 현이와 원이도 씻기고 빵과 음료수를 사다 먹으니 낙원이 여기다. 이제 대전으로 돌아가 끙끙 앓는 일만 남았나?
그리하여 월요일과 화요일까지 내내 근육통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