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심어놓은 고추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냈다. 새끼손가락만한 푸른 고추가 두어 개씩 열린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같달까. 저녁마다 마른 땅에 물을 듬뿍 주어도 다음날 그 맘때가 되면 잎이 시들시들 해서 비소식을 고대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어찌나 반가운지 '비다!'라고 소리까지 쳤다.
전 날 저녁에는 시골에 계신 엄마가 전화를 했다. 다음 주 즈음에 마늘을 수확하는데 다들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동생들과 상의를 해서 가겠노라 했다. 그러자면 일단은 비가 내려야 하는데 마른 땅을 흠뻑 적셔줄 비를 고대했겄만 내리는 모양새가 어쩐지 시원찮다. 수확기가 된 그 마늘을 심는다고 가서 중노동을 한 것이 어끄제 같은데 벌써 알이 토실토실 여물었다니.. 땅이란 정말 정직하다. 심으면 심은대로 나고 가꾸면 가꾼대로 알찬 열매로 보답을 한다. 얼마전에 돌밭을 일구어 심어놓은 옥수수도 파랗게 싹이 돋았다고 한다.
이번에 집에 내려가면 옥수수와 콩을 얻어다 화단 한켠에 심어볼 생각이다. 장기간 방치했던 땅이라 척박한 곳에서도 생장이 가능한 작물이 적합하다. 고추가 열렸다고는 하나 크는 속도가 실한 토양에서 자란 고추와는 비교도 안된다. 할머니가 화분에 키우는 고추도 짙은 초록색을 띄우며 튼실하게 컸는데 땅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비좁은 화단에 심은 고추는 크기도 제각각이고 햇볕 강한 낮이면 잎을 떨구고 기절하기 일쑤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해마다 땅을 일궈 씨를 심고 가꾸는 농부의 마음은 위대하고 위대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