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위미경(만화칼럼니스트)

"난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생의 숙제 둘 중에 하난 해결할 줄 알았어. 결혼하거나 일에 성공하거나 근데 이게 뭐냐고, 서른이 코앞인데 당장 이달 카드값은 어떻게 할 지 그 걱정뿐이야."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싱글즈'를 보며 이 땅의 20대 후반, 30대 초반 미혼여성들은 거의 자신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았으리라. 직장에서의 좌천, 오랜 연인과의 이별, 결혼적령기를 이미 벗어난 나이에서 생기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과 관계의 지속에 대한 불안.... 나난의 옥탑방이나 새로운 연인의 설정은 여성의 환상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 조금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그 속에 담긴 고민은 스물여덟의 나에게 공감과 위로, 약간은 안이한 안심과 희망을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났다. 만화 '금지된 사랑'에서 지이가 읊조린 대사가.

"서른이 넘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쓸데없이 격정적이던 십대와 방향을 갈피 못잡는 이십대를 보내고 서른이 넘으면, 서른이 넘으면... 조금은 평화로울까?"

'싱글즈'에 앞서 1999년에 발표된 만화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 지이는 직장을 잃고, 5년간 사귄 애인에게서 이별 통지를 받는다. 작가 한혜연은 '그치는 것을 금한다'라고 해석하며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을 제목에서 얘기하는데, 만화는 박동을 멈추는 하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 사랑을 잃은 그녀의 마음의 흐름을 따라 조용히 흘러가는 만화는 작가의 현실적 감각이 살아있는 연출(그녀의 만화는 머리를 묶는 손가락 놀림의 묘사에서도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다)을 따라 십대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를 교차하고, 주변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에두르다가 강과 강이 만나듯 끊임없이 유입되는 새로운 사랑을 예고하며 끝을 맺는다.      그 사랑은 스물일곱의 지이에게는 부러운 대상이었던 삼십 대의 태경.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주는 태경을 보며 서른의 평화를 궁금해 하는 지이는 나와 별 다르지 않았다.  

위의 질문을 십대 때부터 읊조리던 나는 왜 그리 조급한 애늙이였을까. 십대의 격정 따위가 실질적인 소용을 낳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십대가 되어봤자 방황만 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이기에 스무 살의 성인식은 전쟁 전의 공포와 집단 환각이 뒤엉킨 축제, 전야제였다. 어디선가 책임과 의무가 슬금슬금 걸어 들어와 덮칠 것 같은 그 날 밤, 문을 꼭 잠그고 난생처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쓰러진 나는 서른을 기다리는 데 스물의 대부분을 바친 것 같다.

사랑을 처음 잃었을 때도, 그리고 불신감에 두 번째 사랑을 포기할 때도, 연애와도 같은 직장 생활을 아슬아슬 이어나갈 때도 서른이 넘으면 모든 것은 나름의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지이가 그랬듯이 나 역시 이제 알겠다. 자신의 힘겨운 상황을 고백하며 눈물짓는 태경을 안고 위로하는 그녀의 말처럼, 삼십대 역시 힘들게 사랑하고, 힘겹게 살아가긴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렇게 살아가면서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신도 상처입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러면서도 삭막하게 메말라가지 않으려 애쓰면서 산다는 것을 말이다. 삶은 그렇게 사랑과 이별, 상처와 회복을 반복하며 이어져가는 것이다.

'금지된 사랑'은 사랑을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아! 4년간 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련하게도 이제야 알았다. 왜 작가가 마지막에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틀어줬는가. 다시 또 사랑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왜 던지는가. 사랑이 그쳤던 시점에서 시작하여,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지이, 그 사랑을 떠나보낸 지이와 진정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던 친구 희성에게 이 음악은 쓸쓸함이 아니라 희망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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