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커트된 머리라 조금만 길어도 성가지고 신경이 쓰여, 머리 자를 때가 됐느데,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미용실에 가서 잡지를 읽으며 느긋하게 기다릴 인내심도, 그렇다고 한가하게 수다를 떨 여력이 늘 딸리는지라, 이맘  때, 목덜미를 덮는 머리카락이 거슬리기 시작하면 괜히 조바심을 친다. 적당히 바쁜 때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피루다 결국에 목적하던 바를 이루면 그만이지만 조금, 아주 조금 한가한 시기가 되면 다른 날보다 더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고 머리 길이 살펴보고, 쇼윈도를 지나치다가도 내 머리가 어떤가 들여다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 자를 때 됐지?'하고 물어보고, 눈에 스치는 미용실이란 미용실은 한 번씩 다 들여다 보는 웃기는 기행이 이어진다.

'뵈뵈'라는 아주 기이한 이름의 미용실이 오가는 길 옆 이층에 있는데, 퇴근 길에 쳐들어가듯 들렀다. 늘 다니던 미용실이 확장 이전을 하는 바람에 새 미용실을 어디로 결정할지 몰라 방황하던 차였다. 짧게 쳐 주세요. 다짜고짜 하는 내 말에 웃는 예쁜 언니, 지금도 충분히 짧다고 난색을 표했다. 전에는 더 짧았다고 전체적으로 짧게라고 주문하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익었네요'라고 한다. 정수리가 빨갛게 익었다고 온종일 햇볕에 노출시켰냐고. 어, 진짜로 익었어요? 나는 전혀 몰랐다. 어쩐지 정수리 부근이 따끔거리고 정신이 멍한 상태가 계속된다 싶었는데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에 시골에 가서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퇴약볕에서 나가 밭일을 한 탓이다. 가벼운 선캡을 썼으니 머리 한 가운데가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거기까지 자외선차단제를 바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요즘 시골은 논일, 밭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틈을 내어 가도 주말에 비라도 내리면 헛탕을 치기 일쑤고, 다행히 이번 주에는 날이 좋아 몸이 부서져라 봉사를 했다. 몸살난다고 적당히 하라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죽을 때 죽더라도 일하다 죽겠다고 하면서 했다. 내가 어쩌다 가서하는 그 일이 엄마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적당히라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이다. 그 댓가를 치루듯, 지금 내 몸은 삐그덕 삐그덕 요상한 신호음을 보내면서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있다. 깔아져 잠을 자고, 스트레칭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기를 이틀째인 지금은 그래도 살만하다. 월요일 아침에는 죽다 살아났다.

그런데 볕에 탄 두피는 무엇으로 치료를 해야할 지 감이 안 잡힌다. 얼음찜질이라도 해야하나. 이로써 얻은 교훈 하나, 일하러 갈 때엔 꼭 벙거지 모자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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