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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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가볍고 무거움을 떠나 의사의 선고가 내려지고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은 고독하다. 외딴 섬에 갇힌 듯, 노 잃은 배처럼 표류하듯, 길 잃은 아이처럼 두렵다. 내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의사와 마주앉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고,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마음을 다잡아 피할 수 없다면 맞서라는 교훈을 되새길 때, 혼자여야 하는 사정은 더 아득하다. 가족이 없음은 다행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나눠서 반이 될지 배가 될지는 겪어봐야 안다.




-가족들 이외에는 암을 알리지 마십시오. 암환자라는 걸 주변에서 알게 되면 신변을 정리할 때 불이익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제가 워낙 많은 환자들을 봐서 하는 말입니다.
의사가 메모지를 꺼내서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술 담배 섹스를 끊고 잠을 많이 잘 것,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산책을 할 것, 청국장을 많이 먹을 것, 고등어 꽁치 방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을 것······· (318쪽)




어느 날 갑자기 간암을 선고 받으며 시한부 인생이 된 그 남자의 여정에 공감하는 건, 그 메마른 삶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질병이라는 벽 앞에 섰었던 기억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추어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먹어선 안 될 음식과 먹으면 좋은 음식을 따져 매끼마다 의무처럼 우걱우걱 먹어대는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진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는 뭐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니까.




장편소설을 선호해서 단편은 어지간해선 읽을 기회가 없다. 짧지만 강렬한 뭔가를 곱씹으며 그 여운을 붙들어 맬 능력도 없고. 그럼에도 가끔 경험이나 기억에 맞물린 이야기를 만나면 푹 빠져들어 단편이 이런 거구나 한다. 아마도 ‘화장’이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이었을 게다. 강렬하면서도 그 건조함에 질려했던 기억이 있는데, 두 번째 읽어보니 처음과는 또 달랐다. 평소 읽는 방식으로 후다닥 단편을 읽어선 안 된다는 걸 다시 새겼다.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습성은 무섭다. 정말 좋아한다면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쓰며 읽기도 좋다. ‘강산무진’도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갑갑하고 건조하고 출구가 없어 때때로 숨이 꽉 막히는 나날을 굳이 소설에서 찾아 읽고 감동했느니 하는 건 거짓일 런지도 모르지만. 그건 있다. 어려서는 단지 글자 이상도 아니었을 것들이 보인다는 거. 그 이면의 이면까지도 그려진다는 거. 부끄럽지만 연륜이다. 그럴 때가 되었음을 알겠다. 그래서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독자에게 들이대는지도 모른다. 읽힐 거라는 걸 알고, 어쩌면 반복해서 읽을 거라는 걸 알고. 대단한 힘이다. 소설을 읽는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결국 길은 하나로 통한다. 김훈이라는 이름. 그의 에세이 네 권을 읽은 다음에 만난 소설집이라는 것도 의미라면 의미다.




나는 몸의 안쪽에서부터, 감당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우울과 어둠이 안개처럼 배어 나와서 온몸의 모세혈관을 가득 채운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스펀지가 물을 떨구듯이, 게눈에 거품이 끓듯이 조금씩 조금씩, 겨우겨우 몸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그런 날 나는 대낮에도 커튼을 닫고 어두운 방 안에서 하루 종일 혼자 누워 있었다. (234쪽)




‘언니의 폐경’속 자매들은 무력하다. 그녀들의 나약과 순응과 고요는 불편하다. 남자는 인간으로서 납득하면서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여자여야 하는 한계와 현실은 피해망상일까. 미루다가 맨 마지막에 읽은 이유다. 그리고 숙제다. 인간으로서 공감할만한 응원하고 지양할 여자를 만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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