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은 날마다 한 뼘씩 자란다. 아침마다 꽃밭에 쪼그리고 앉아 한 주먹씩 풀을 골라낸다. 얼른 크라고 물과 빛을 주는 꽃은 더디기도 하건만, 이름도 모를 풀이라는 녀석은 성큼성큼 자란다. 그래도 미안하다 말 한마디는 해야 한다. 꽃이 아니라 풀이라서 어여쁨 받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 뜨거운 시멘트 위로 던져지는 생의 가벼움 때문에라도.
초롱꽃이 피고 진다. 그 색은 화려하지 않아도 은근한 멋으로 벌과 나비를 부르고 있다. 작년에 서너 뿌리 얻어다 심을 때만 해도 이런 꽃을 피울 줄은 몰랐다.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넓은 잎만 키우고 있기에 어느 세월에 꽃을 피울까 싶어 잊고 있었다. 그러다 봄이 되어 줄기를 쑥쑥 키우더니, 가운데 줄기에서 곁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치더니, 종모양의 꽃망울이 주렁주렁 열리더니, 자줏빛과 흰빛의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의 피어남은 경이로우며 기적이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웃 분들이 꽃을 보더니 너도나도 한 뿌리씩 나눠 달라신다. 내년에나 꽃으로 변신한 미운오리 새끼 같은 여린 녀석들을 기꺼이 캐 드렸다. 그리고 분꽃과 백일홍과 봉선화 꽃을 선물로 받았다. 꽃은 이렇게 오고 가면서 씨를 퍼트리는 것일까. 덕분에 작년까지만 해도 황량하기만 했던 내 꽃밭이 올해는 풍성해 졌다. 씨를 받아 두었다가 심은 천사의 나팔꽃과 화초고추도 더디지만 잘 자라고 있다. 작년엔 민달팽이에게 모두 먹혀버렸던 메리골드도 아직까진 무탈하다. 징그럽게도 달라붙어 잎을 먹어치우던 민달팽이 놈들! 나타나기만 해라. 메리골드야 올 여름엔 부디 네 꽃을 보여 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