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중고샵이 문을 열었을 때다. 한 번 읽은 뒤로 방치된 책들을 고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팔지 못했다. 그 책이 없는 책장의 빈자리가 쓸쓸해서. 이후로 다시 읽을 일이 없을지라도, 재미가 엄청나게 없어서 실망했던 책일지라도, 어느 귀퉁이에 보이지 않는 손때가 묻었을 나의(?) 책들에 대한 잊고 있던 애정이 솟구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과잉된 감상주의자라는 건 알고 있다. 알지만 그것도 나를 이루는 일부다. 어느날 정신이 홱 돌아서 맘에 차지 않던 책들을 불살라버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종종 누렇게 낡은 책들을 시골로 가져가 불쏘시개로 쓰는 건 오히려 통쾌하다. 낡고 바랜 책을 찢어 가면서 불꽃이 너울거리는 아궁이 속으로 던지는 행위는 무슨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즐겁고 설레면서도 엄숙한?  이상한 녀석인가?

책을 읽는 취미에 거창하게 목적이 뭐냐고 묻거나, 허영심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소설이나 시를 읽는데 무슨 목적이니 허영이니가 필요할까.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즐기기 위해서란 단순한 이유로는 부족한가. 물론 일정부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대학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자격지심을 책을 통해 해소한 일면은 있다. 있지만 그게 어때서. 좋아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는 행위나 좋아하는 책을 사는 행위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명품 옷에 연연해 하는 거나 모자란, 없는 지식에 목말라 이해가 딸리는 책이라도 읽으려 노력하는 거나 피장파장이다. 무겁고 거창한 책을 읽고 성인이 되거나 지식인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코메디다. 책상이 책상이듯 책은 그냥 책이다.  노예나 종에게 읽고 쓰기가 금지됐던 암흑시대라면 또 모를까. 비싼 옷이 신분을 결정짓지 않듯이 책을 읽거나 사는 것이 가치나 계급의 잣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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