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아주 오랫만에 새벽 다섯시에 잠이 들어 열시에 일어났다. 밤이 깊을수록 명료한 정신과 눈에 도저히 불을 끄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과는 좀 다른 자발적인 깨어있음이다. 간만의 밤샘은 정겹기도 하고, 깊은 밤의 정적은 아득한 그리움을 낳았으며, 서서히 밝아오는 창은 하도 반가워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다행히 나의 흘러 넘쳤던 감성은 적당히 메말라 버려 그런 불상사는 면했다. 까마득한 옛날 밤을 낮인듯 낮을 밤인듯 살았던 시절로 돌아가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더이상은 나이 때문에라도 밤새는 일이 불가능할 줄 알았으니까.

아, 정말, 나이라는 거. 순간이라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이의 이런저런 굴레와 제약에 놀랄 정도다. 원래 매사가 지나치게 진지하고 심각한 타입이라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병원을 드나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눈가에 깃드는 주름, 그늘을 드리우는 피부까지. 물론 삼십대에 미련 따위는 눈꼽만큼도 없다. 잘가라고 손도 흔들수 있다. 애초에 미련이나 집착 같은 거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므로.  

손바닥보다는 큰 화단에 이름을 아는 꽃에서 뭔지도 모르는 꽃들까지 지극정성으로 열심히 심고, 물주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보살피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분초를 다투며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한가로운 일상에 깊이 깊이 잠수하는 나날들 속,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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